미국 뉴욕에 있는 의과대학에 한 독지가가 1조 원 넘는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해 전체 의대생이 수업료 부담 없이 공부하게 됐다는 소식이다. 뉴욕 소재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학 학생들이 이 기부금으로 당장 한해 8천만원 드는 등록금을 면제받고 의대 전 과정을 마칠 수 있게 됐다고 하니 우리에겐 실로 부러운 얘기가 아닐 수 없다.

화제의 독지가는 이 대학 명예교수인 루스 가데스먼 박사. 그는 세상을 떠난 남편이 워런 버핏에게 초기에 투자해 번 돈 10억 달러(한화 1조3천억원)를 선뜻 의과대학생 전체 전액 장학금으로 기부함으로써 미국 사회에 큰 감동을 선사했다.

보도에 따르면 루스 박사의 남편 데이빗 가데스먼은 2년 전 9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면서 자신의 유산을 사회를 위해 옳은 일에 사용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이 유언에 따라 부인 루스 박사가 의대생 장학금으로 기부할 뜻을 밝히자 자녀들이 앞장서서 지지했다고 한다.

올해 93세로 이 대학에서 50년 넘게 학습장애를 겪는 어린아이들을 돕는 방법을 연구해 온 루스 박사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대학에 기부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학생들에게 의사가 되는 기회를 열어주고 싶었다”는 뜻을 전했다. 더불어 장학금에 자신의 이름이나 남편의 이름을 앞세우지 말아 달라는 조건까지 붙였다고 한다.

미국은 부자들이 대학이나 의료기관 등에 거액의 기부를 하는 문화가 오래전부터 뿌리를 내린 사회다. 평생을 힘들여 번 돈을 자녀와 친지에게 유산으로 대물림하지 않고 사회에 환원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오늘날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된 배경이다.

세계 최대 면세점 업체 DFS 창립자 찰스 프란시스 피니의 기부는 기부에 대한 미국 사회의 인식을 새롭게 심는 계기가 됐다. 그가 평생 모은 재산 10조 원을 모두 기부하고 자신은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9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을 때 전 미국인이 고개 숙여 애도를 표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큰 재단인 ‘아틀란틱 박애재단(The Atlantic Philanthropies)’을 세워 생전에 모든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자신의 전기에 기부의 즐거움을 언급하며 “여러분도 한번 해보면 마음에 들 것이다. 게다가 죽어서 기부하는 것보다 살아 있을 때 기부하는 것이 훨씬 더 즐겁다”라고 썼을 정도다.

그의 기부 원칙은 크게 세 가지였다고 한다. 하나는 ‘어떤 경우든 자신의 이름이 노출되지 않는다’, 둘째는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을 돕는다’, 그리고 셋째는 ‘빠르고 효과 있게 나눠준다’였다. 이런 그의 기부 행동은 남몰래 선행을 실천한 어머니의 삶에서 크게 영향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간호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루게릭병을 앓는 이웃을 돌보며 자신의 선행을 주위에 일체 드러내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미국의 대학교육과 연구에도 엄청난 금액의 기부를 했다. 모교인 코넬 대학에 익명으로 6억 달러 넘게 기부했고, 스탠퍼드대의 2건의 연구과제에도 6500만 달러를 남몰래 기부했다. 그런 그가 27억 달러(3조6000억원)를 지원해 세워진 1000여 개 건물 중 그의 이름을 딴 건물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은 그에게 왜 ‘기부 천사’라는 별명이 붙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미국 매체 포브스는 “부자 중 누구도 살아 있는 동안 재산을 그렇게 완전히 기부한 사람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워런 버핏과 빌 게이츠 같은 부자들이 “기부 집단의 영적인 지도자”라고 치켜세우며 무한 존경심을 표했을 정도다.​

미국의 기부문화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숙제를 던져준다. 우리나라도 자수성가해 가업을 일군 부자들과 유명 기업인 중에서 기부의 모범을 실천하는 이들이 없지 않으나 미국에 비하면 아직은 미미한 실정이다. 시장에서 좌판을 벌여 번 전 재산을 대학에 기부한 할머니의 사례가 화제로 그쳐선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기 어렵다.

기부에 있어 금액의 과소를 따지는 건 금기에 가깝다. 기부의 가치는 금액의 절대치로 매길 수 없는 사랑과 정성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내가 남아서가 아니라 나도 부족하지만, 더 부족한 이들과 나눈다는 정신이 기부문화의 본질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의사들이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서는 바람에 의료 대란이 일어나고 있다. 의사들이 이토록 반발하는 이유가 여러 가지겠지만 그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 의사가 됐는데 정부와 사회가 몰라주고 무한 희생만 강요하고 있다는 섭섭함이 깔려있을 수 있다.

의사란 단지 두뇌가 우수하다고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아니다. 의대에 진학한 학생은 예과 2년, 본과 4년을 거쳐 국가자격시험을 치른 후 수련의(인턴) 과정 1년과 전공의(레지던트) 과정 4년을 밟아야 비로소 의사가 된다. 이런 과정을 밟기까지 드는 비용 또한 천문학적이다. 그런 의사들에게 우리 사회가 무조건적인 헌신과 희생을 바라는 것 또한 온당한 도리가 아니다.

미국 뉴욕의 알버트 아인슈타인 의과대 기부 사례처럼 우리나라 의대에도 독지가의 기부가 줄을 잇게 되는 날을 상상해 본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이 환자를 대하는 자세나 사회적 책임감이 달라지지 않을까. 그런 기부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뿌리내려 좀 더 따뜻한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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