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민주화시대와 조용기목사: 팀 사역과 민주적 후계자 인선

박명수 교수
박명수 교수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조용기목사와 민주화시대이다. 조용기목사는 한국전쟁,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 세계화에 잘 적응하였고, 여기에는 그가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아는 역사적인 안목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는 항상 원칙을 생각하지 보다는 새로운 상황을 생각했고, 그때 그때 마다 새로운 결단을 하였다. 그러면 조용기목사와 민주화의 관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가장 중요한 두가지 요소는 산업화와 민주화이다. 한국교회는 산업화에는 성공했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는 동안에 한국교회는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60년대에서 80년대 말까지 한국교회는 성장하였다. 하지만 90년대에 들어서면서 민주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고, 이런 상황에서 한국교회는 민주화와는 별 관계가 없이 발전해 왔다. 한국교회는 산업화, 도시화, 정보화에 쏟는 관심만큼 민주화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면 조용기목사는 민주화와 어떤 관계를 갖고 있는가? 필자는 조용기목사와 지근거리에서 활동하지 못했다. 따라서 그가 얼마나 민주주의를 이해했는지, 그리고 교회에서 민주적인 리더쉽을 발휘했는지 객관적으로 판단할 위치에 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은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는 반민주적인 지도자라고 생각하고, 조용기를 그런 계열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조용기목사의 삶 가운데 민주주의적인 요소가 있다고 본다.

필자는 무엇보다도 조용기목사는 팀사역을 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그의 첫 번째 목회는 최자실목사와의 공동목회였다. 조용기목사의 설교와 최자실목사의 심방은 한쌍을 이루어 목회를 했다, 이런 두분의 팀 사역은 나중에 여의도순복음교회와 오산리기도원이라는 두 중심 기관을 통해서 잘 이루어졌다. 이런 팀사역은 선교사와도 이루어진다. 조용기는 처음에는 헐스톤선교사의 통역이었으나 나중에는 헐스톤선교사가 조용기의 국제사역을 도왔다. 이것은 평신도와의 공동사역으로 이어진다. 서울시부시장을 한 차일석장로와 함께 여의도순복음교회를 건축하였으며, 교회의 조직을 현대화했다. 차일석장로는 행정학을 전공하였다. 조용기목사는 신학자와도 함께 사역하였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장로교에 의해서 신학적으로 공격을 받을 때, 이것을 신학적으로 해명한 사람이 이영훈목사이다. 신학자와의 공동사역은 순복음교회를 한국교회의 중심에 서게 하는데 중요한 기여를 했다.

조용기목사의 또 다른 민주적인 모습은 제자들을 성장시켜서 하나의 독립된 목회자와지도자로 만드는 일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단지 여의도에 있는 교회만이 아니다. 전국에 수많은 교회들이 있다. 이런 교회들은 지성전, 지교회, 독립교회의 형태로 발전하게 된다. 조용기목사는 자신의 제자들과 부교역자들을 이런 교회에 파송하여 결국 독립된 교회의 목사로 만든다. 오순절운동이 조용기목사 한사람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건재할 수 있는 이유는 사역자 양성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그의 제자들은 영목회라는 이름으로 조용기목사의 사역을 계승하고 있다.

한국의 대형교회가 맞이한 가장 큰 위기는 자신이 은퇴하고, 후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조용기목사 사역의 정점은 그가 민주적인 방식에 의해서 후임을 경정랬다는 사실에 있다. 조용기목사는 후임자 선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았고, 교회의 공식적인 기구에 맡겼다. 이것은 그가 교회의 공식적인 기구를 신뢰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최종 3인이 결정되었을 때에도 당회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언급하였다. 그 결과 오늘의 이영훈목사가 제 2대 담임목사로 취임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많은 교회들이 후임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생겨서 교회가 큰 위기를 맞이하는데 비하여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런 시련을 겪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영훈목사는 조용기목사가 양육한 인물이다. 이영훈목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다같이 순복음의 중요한 멤버였으며, 자신이 오순절신학에 정통한 신학자일뿐만이 아니라 여러 지교회를 담임하는 과정에서 목사로서 진실한 모습을 보여주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의 지지를 받아서 조용기목사의 후임목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과정은 다같이 조용기목사가 차세대의 지도자를 세우기 위해서 계획한 것의 일환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조용기목사는 민주적인 절차에 의해서 후계자를 선정했지만 그 민주적인 절차는 조용기의 사역고 여의도순복음교회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적합한 인물을 선출하였다. 조용기목사의 사역의 정점은 민주적인 방법에 의해서 여의도순복음교회에 적합한 지도자를 선출했다는 것이다. (계속)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명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