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최근 학교 현장에서 벌어진 잇단 ‘교권 침해’에 칼을 빼들었다. 지난 17일 교사의 수업권 보장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원의 학생생활지도에 관한 고시’를 발표했는데 교사의 학생생활지도 범위와 방식에 대한 기준을 정부 차원에서 처음 법으로 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9월부터 전국 초중고교에 적용되는 교육부 ‘고시’를 살펴보면 몇 가지 눈에 띄는 조항이 있다. 먼저 ‘수업 중 휴대전화 사용 원칙’을 명시한 조항이다. ‘학생은 수업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해선 안 된다’라고 돼 있다. 이 원칙을 어기면 교사가 두 번까지 ‘주의’를 주되, 그래도 계속 사용하면 휴대전화를 압수(분리 보관)할 수 있다.

학생이 수업 중에 휴대전화를 사용하는 문제는 그동안 숱한 논란이 있었다. 교사들이 교권 침해와 수업 방해의 가장 큰 사유로 꼽은 것도 이 문제였다. 그런 점에서 수업 중에 휴대전화 사용을 금지시킨 건 교사들의 요구를 상당 부분 반영한 조치로 풀이된다. 수업을 방해하는 학생을 교사가 복도로 나가게 하거나 반성문을 쓰도록 한 것도 전향적인 조치다.

사실 학교에서 이런 풍경은 예전 같으면 아주 흔했다. 교사의 수업 지도를 방해하고 다른 학생들의 면학 분위기를 해치는 문제 학생에게 교사는 의례히 복도에 나가 벌을 서거나 반성문을 써 제출하도록 했다.

그런데 교사의 이런 지도방식이 어느 때부턴가 학교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지난 2010년 서울시교육청을 시작으로 교실에서 그 어떤 체벌도 금지되면서부터다. 그릇된 행동을 한 학생을 벌세우는 일조차 학생의 인권을 침해하는 행위로 낙인찍은 건 논란의 소지가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가하는 체벌은 간혹 폭력과 혼동된다. 아무리 교육 목적이라도 감정 개입이 개입돼 힘이 센 자가 약한 자에게 일방적으로 가하는 위력은 분명 폭력이다. 그러나 잘못을 저지른 학생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불편을 감수하게 하는 벌은 전혀 다른 성질이다. 자신이 한 잘못된 행동을 돌아보고 반성할 기회를 주는 훈육은 엄격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

청소년기는 단순히 학교에서 지식을 전달받을 뿐 아니라 인격 함양과 자아 발달을 위해 교사의 정제된 교육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기다. 그런 학생들이 건강한 인격체로 성장하기까지 옆에서 지도하고 응원하는 이들이 바로 교사다. 그런데 지금 교사는 사실상 단순한 지식 전달자 역할 외엔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그나마 상급 학교 진학을 위한 입시 준비 기능마저 사설학원에 빼앗긴 현실에서 공교육을 담당하는 교사가 설 자리가 없는 게 오늘 학교의 현실이다.

이런 공교육의 붕괴 사태를 불러온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그 중에 ‘학생인권조례’는 주범 격이라 할 수 있다. 이 ‘학생인권조례’는 서울시를 비롯해 각 시도 교육수장을 진보진영의 교육감들이 장악하면서 유행처럼 번졌다. 학생이 아무리 수업을 방해하는 행동을 해도 문제 학생을 교실에서 분리할 수 없고, 휴대전화 사용도 제지할 수 없게 만든 공교육의 무력화는 바로 ‘학생인권 조례’에 나와 있는 학생 인권침해 규정에서 비롯됐다.

이번에 교육부가 발표한 고시의 상당 부분은 ‘학생인권조례’와 상충된다. 당장 ‘학생인권조례’의 관련조항에 대한 손질이 불가피하다.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이 문제와 관련해 “고시가 조례에 우선하므로 교육부가 교육감에게 상충되는 내용 정비를 권고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장관이 말한 정비란 학생인권조례의 전면적인 개정, 또는 폐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데 벌써부터 일각에서 ‘학생인권조례’를 그대로 두되 교권 회복을 위한 일부 조항만 개정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교육부와 국가교육위원회가 지난 10일 개최한 ‘교권 회복 및 보호를 위한 토론회’에선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해 불필요한 갈등을 야기하기보다는 문제되는 부분을 개정하는 게 낫다는 의견이 개진되기도 했다.

오늘 학교 교육이 무너진 모든 원인이 단순히 ‘교권 추락’ 그 하나에 있다면 ‘학생인권조례’에교사의 인권 조항을 추가하거나 그에 버금가는 ‘교사 인권조례’를 새로 만드는 게 더 쉬울지 모르겠다. 그러나 교사의 인권을 보장하는 게 당장 응급처치는 될 수 있을지언정 그것이 추락한 교권을 회복시키고 망가진 학교 공교육을 되살리는 데 어떤 기능을 할지 의문이다. 오히려 교사와 학생 간에 대결 구조를 조장함으로써 더 큰 수렁에 빠질 수도 있다.

‘학생인권조례’의 문제점은 이거다. 겉으론 학생의 인권을 신장하는 그럴듯한 목표를 내세우고 있으나 그 속을 들여다보면 불순하기 짝이 없다. 예컨대 성별정체성과 성적지향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만 봐도 성 소수자의 권리는 보호하고 동성애를 좋지 않게 여기는 학생의 권리는 제한하고 있다. 그야말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판박이다. 건강한 인격체로 자라야 할 청소년을 학교가 동성애에 빠지도록 등을 떠미는 격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정도다.

교육부가 ‘교권 추락’과 결부된 여러 사건사고의 원인이 ‘학생인권조례’에 있음을 인정하고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기로 한 건 매우 바람직한 결정이다. 그러나 적당히 땜질식으로 손보고 넘어갈 요량이면 곤란하다. 문제가 무엇인지 잘 알면서 그 원인을 도려내는 데 주저한다면 공교육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다.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렸다는 뜻이다. 교사와 학부모까지 폐지를 요구하고 있는 말도 많고 탈도 많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다음 세대의 밝은 미래를 위해 교육부가 반드시 용단을 내려야 할 때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