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와 은혜의 차이점은 뭘까? 공통점은 또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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⁸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
⁹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찌어다(갈라디아서 1:8-9)

루터는 그의 책 ‘노예의지론’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불확실성보다 더 불행한 것이 무엇이랴!” 이런 말로 그는 그의 강적 로테르담의 에라스무스의 반쯤 회의적인 태도에 대해 도전합니다.

루터는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문제와 관련해 “확신”을 요구합니다. 그는 회의적인 가능성이나 학문적 개연성이 아니라 “단언”을 요구합니다. “단언을 제거해 보라,” 그는 말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기독교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그는 단언을 피하는 것은 기독교적 정신의 특성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선진자들과 신약성경 기자들은 모두 루터의 태도에 찬동하고 에라스무스의 태도를 논박합니다. 예수님도 바울도 요한도 개연성이나 경험의 축적이라는 측면에서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전하는 메시지-그것은 현대인들로서는 견디기 힘들며 이해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의 진실성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갖고 단언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8)

-p134~135

그러나 여기에서 바울과 루터가 옹호했던 확신의 본질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살펴봅시다. 바울의 말은 그것이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8절). 바울이 전했던 복음의 진실성은 바울에게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 그가 갖고 있는 확신은 그의 개인적 경험에서 일어난 변화들에 달려 있지 않았습니다....(중략)...

바울은 자신을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사들의 비전까지도 확신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을 확신합니다. 너무나 확신하기에 그는 자신과 최고의 영적 능력을 지닌 자들이라도 복음을 왜곡한다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계속해서 말합니다. “내가 전하는 복음은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며, 어떤 사람이 내 머리에 넣어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아니며, 나의 복음은 나의 복음이 아니며, 나의 확신은 나의 확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경 전체와 기독교의 모든 위대한 증인들의 고백에서 나타나는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상황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갖고 있는 확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우리의 확신으로 간주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상실됩니다. 우리는 우리가 그런 확신을 얻게 된 합리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우리의 “경험”이 아니라 우리의 확신의 “내용”을 보는 한에서만 확신을 갖습니다.

p138

그러나 때로 지옥과도 같은 최악의 상황에서 그(루터)의 마음에 “나는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라는 첫 번째 계명이 떠올랐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한 가지 확실한 것이 자기를 떠나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필요한 유일하게 확실한 것이었습니다.

p140

우리가 자신의 실존의 근거와 접촉하고 자신 너머를 바라보도록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종교개혁가들과 사도들이 가졌던 확신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객관적 개연성과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모든 주관적 평가를 포기할 때, 그리고 모든 잠정적 확신이 사라질 때, 궁극적 확신이 우리에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확신의 능력을 힘입어, 비록 안전하거나 시험이 없지는 않겠으나, 확신에서 확신으로 걸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p141

신학자 폴 틸리히(Paul Tillich, 1886-1965)

1886년 8월 20일 독일에서 출생해 베를린, 할레, 브레슬라우대학 등에서 수학했다. 1911년 신학전문직학위를 취득해 대학에서 가르칠 자격을 얻었다. 제1차세계대전 기간 중 4년간 군목으로 참전하면서 ‘터전의 흔들림’으로 표현될 만한 사상적 변화를 겪었다. 1929년에는 프랑크푸르트대학의 정교수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쳤다. 나치는 그가 유대인 학생들을 도운 것을 문제 삼아 그의 교수직을 박탈했다. 위기에 처한 틸리히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친 것은 미국의 유니온신학교였다. 이미 40대 중반에 접어든 틸리히는 낯선 땅에서 영어를 익히면서 강의를 했다. 그의 강의에는 그에게 주어진 ‘20세기 최대의 신학자’라는 칭호에 걸맞는 내용이 있었던 것이다. 유니온신학교에서 퇴임한 후 그는 1955년부터 1962년까지 하버드대학의 특별교수로 초빙되어 신학부 박사과정 학생들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하여 집필 활동을 했다. 1965년 10월 11일 시카고대학 신학부 주관 초청 강연 도중 심장에 고통을 느껴 병원에 이송됐다. 이후 10월 22일 투병 중 숨을 거뒀다. 그가 남긴 저서로는 ‘조직신학’, ‘존재에의 용기’ 등 다수가 있다.

출처 : 새로운 존재(폴 틸리히 지음, 김광남 옮김, 뉴라이프 출판사)

1955년에 미국에서 출판된 본 책은 폴 틸리히가 뉴욕 유니온신학교, 코네티컷 주 뉴런던에 있는 코네티컷 대학 등지에서 했던 설교 모음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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