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백석대 채영삼 교수

'코로나의 고난을 지나온 교회'에 대하여, 그리고 이번에 나온 묵상집인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뿌리내리기>의 출간에 부쳐, 몇 마디 남기고 싶다. 이 책의 목차를 살펴보면, 대부분이 공동서신이 제시하는 복음과 교회론 그리고 윤리적 비전에 관련된 주제들이다: 제 1장/ 우리가 잃어버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 제 2장/ 성도가 성전이고, 코이노니아가 교회인 시대; 제 3장/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로 소통하는 그리스도인; 제 4장/ 거짓 가르침을 분별하며, 신적 성품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 제 5장/ 세상에서, 자신을 지키는 그리스도인, 그리고 <성구색인>이 있다.

그러니까 이 묵상집은, 주로 공동서신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구체적으로 뿌리내릴 때, 어떤 신앙, 어떤 생각, 어떤 실천으로 나타날지를 보여주는 예들로 채워져 있는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공동서신의 복음과 교회론 그리고 윤리적 비전이, 최근에 교회가 맞닥뜨린 ‘코로나 재난’의 도전에 대한 매우 적실한 응답이 될 가능성이다. 교회사가 보여주듯이, 교회가 부딪히는 새로운 도전에는 새로운 ‘정경적 전환’이 필요하다. 성령께서 교회에게 주신 신약성경이 단지 한 두 권이 아니라, 27권이나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런 것이다. 코로나의 재난은, 개신교의 언저리에서 신천지 이단이 얼마나 크게 퍼졌는지를 보여주었는데, 이는 뒤집어서 말하면, 교회가 그동안 얼마나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을 외면하고 ‘세속적 복음’에 몰두해왔는지를 반증한다. 그러니, 교회가 다시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종말론적 복음을 선포하는 과업을 회복하지 않는 한, 신천지 이단 즉 ‘가짜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거짓가르침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코로나 재난은 교회에게, ‘복음의 왜곡과 축소를 바로잡아야 할 숙제’를 남긴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의 축소와 왜곡이라는 이 숙제를 풀기까지, 교회는 ‘신천지 출입금지’라는 스티커를 붙여도, ‘마스크를 벗어도’ 결코 코로나의 고난을 이겼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또 하나, 코로나의 재난은, 예배당에 모일 수 없을 때 과연 ‘성전’은 무엇이며, ‘교회’는 무엇인지를 묻게 했다. ‘다시 예배당으로’ 모일 수 있게 된 지금,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지 않은 채로 과거를 반복하는 것은 무의미할 뿐 아니라, 어리석기까지 하지 않을까. 그것이 ‘고난을 낭비’하는 일인 것이다. 코로나의 재난은 또한, 교회 안에 ‘광신(狂信)적 신념’으로 인해 ‘상식도 사랑’도 잊은 거짓가르침 그리고 ‘이념의 광기(狂氣)’에 휘둘리는 ‘거짓가르침’이라는 심각한 병적 증상을 폭로했다. 또한, 이런 잘못된 관행들로 인해 교회가 세상 속에서 ‘악행(惡行) 한다는 비난’을 받으며, 그 결과로 복음의 길이 막혀버리는 뼈아픈 문제도 확인시켜 주었다.

코로나가 창궐한 기간 동안, 교회 안에 잠재되어 있던 이런 치부들은 병적 증상으로 표출되었고, 명확한 문제들로 확인되었다. 코로나의 고난의 원인은 확정하기 어렵고, 그 목적은 더더욱 불분명하다. 하지만, 교회 앞에 던져진 이런 숙제들은 명확하다. 이런 숙제들을 ‘숙고(熟考)하고, 그 해법을 찾지 못한 채’ 고난이 지나갔다고 기뻐할 일이 결코 아닌 것이다. 숙고되지 않은 고난은 반복될 것이다. 앞으로 유사한 재난이 닥쳐온다면, 교회는 또 다시 ‘답이 없는 채로’ 똑같은 문제들에 직면하여 방황과 혼돈을 반복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는가.

공동서신이 제시하는 복음과 교회론, 윤리적 비전에 따라 코로나 재난이 제기한 문제들에 답을 한다면, 교회는 무엇보다 대대적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독교 신앙은 원래부터 종말론적이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회복하지 못하면, 세상을 이길 수도, 세상에 빛과 소금이 될 수도 없다. 70년대 이후 한국교회를 지배했던 세속적인 복음으로는 더욱 더 세상과 같아질 뿐이다. 더구나 건물의 크기에 매달리는 교회론에서, ‘성도가 성전이고 코이노니아가 본질로 회복되는 교회’로 확실히 변화되어야 한다. 더 이상 ‘건물이 크고 성도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큰 교회, 큰 목사’라는 타이틀이나 명예를 얻는 시대는 지나갔다. 그런 어리석고 비성경적인 관행을 버릴 때가 되었다.

코로나가 모두의 눈앞에 명확히 보여주지 않았는가? 큰 예배당에 아무도 모이지 못했을 때, 교회란 정말 무엇이었는가? 교회는 성도이다. 그것도,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임재를 통해 이끌리는 사람들이다. 교회의 본질을 명확히 해야, 앞으로 또 닥칠지 모르는 팬데믹의 재난을 견디는 교회가 될 것이다. 교회는 세속적으로 성공해 보이는 교회가 아니라, 진정으로 새 하늘과 새 땅에 참여하는 신적 성품에서 성장하며, 이방인들 가운데서 선한 행실로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코로나가 지나간 폐허 위에, 삼위하나님께서 지금도 건축해나가시는 ‘살아 있는 성전’이다.

이론서는 아니지만 이 묵상집 <흔들리지 않는 나라에 뿌리내리기>는, 코로나의 재난을 통해 드러난 교회인 우리 자신의 취약점들을 극복하며, 이를 위해 공동서신의 복음과 교회론 그리고 윤리적 비전을 활용할 때, 우리의 신앙, 생각, 실천이 어떻게 나타날지를 가늠하는, 부족하나마 실제적인 작은 예시들이다. 그 세세한 방식은, 이 세상과는 다른 새 하늘과 새 땅을 지향하는 세계관과 가치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독자들에 의해 더욱 더 구체화되고 풍성해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신약성경이 선포하는 바의 그 ‘종말론적 복음’이 회복되어야 한다. 만일 이 땅의 교회가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을 적극적으로 회복한다면, 지구환경이 종말론적 국면에 이르고 있는 이 시대에, 교회가 더 이상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오히려 고통 받는 세상과 많은 사람들을 위해 참으로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교회가 세상의 과거에 대한 의미 있는 재해석을 통해, 다시금 창조적인 미래를 상상하고 불투명한 현재를 이끌어 나아가는데 다시금 지도력과 섬김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한 것이다. 이렇게 보면, 코로나 재난의 기간은 사실, 그 동안 침체되었던 이 땅의 교회가 새 출발할 수도 있는 의미 있는 계기였다는 생각이 든다. 진짜 문제는, 그 고난을 해석하는 우리의 겸손, 참회, 지혜에 달려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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