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원 교수(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이상원 교수(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 ©성광교회 영상 캡처

성광교회(담임 최종순 목사)에서 지난 2일 드려진 교사헌신예배에서 이상원 교수(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대표)가 ‘교사에게 주어진 세 가지 직무’(살전 1:6, 2:7, 2:11~12)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이 교수는 “하나님께서 교사에게 주시는 세 가지 직무는 교사뿐만 아니라 선배 성도들 모두가 유념해야 할 교훈들이다. 첫 번째 권고는 데살로니가전서 1장 6절에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바울은 의도적으로 주와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주 앞에 두고 있다. 이 순서는 성도들, 초신자들, 또 신앙이 어린 자녀들이 성숙해가는 과정을 정확하게 간파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예수님에 대해 잘 모르는 어린 신자들의 눈에 확실하게 들어오는 것은 교회 지도자나 선배 신앙인의 신앙생활이다. 먼저 그들의 아름다운 신앙생활을 따라 하다가 이것이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예수님을 본받는 생활로 나중에 갈아타는 것이다. 그러므로 올바른 순서는 우리를 먼저 본받고 다음에 주님을 본받는 것이다. 즉 교회의 지도자나 선배 신앙인은 어린 신자들의 주님께로 나아가는 것을 견인해주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만약 어린 신자들이 교회 지도자나 선배 신앙인의 아름답지 못한 신앙생활을 보고 실망하면 예수님을 본받는 자리에 나아가는 길이 끊어진다. 그러나 나중에 어린 신자들이 예수님을 본받는 자리로 갈아타면 그다음엔 교회 지도자나 선배 신앙인을 이해하는 안목이 생겨서 어지간해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된다. 바울은 이 사실을 잘 알았기에 데살로니가에서 사역할 때 성도에게 본을 보여주는 생활을 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한다. 만약 바울이 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어린 초신자들이 주님께 나아가는 길이 막혀버리는 것”이라고 했다.

이 교수는 “두 번째 권고는 데살로니가 2장 7절에 ‘도리어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라는 구절이다. 유순한 자는 어린아이를 뜻한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낮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바르게 보고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 바울은 어린아이처럼 낮아지는 태도로만 일관하지 않았다. 다른 한편으로 젖을 먹이는 유모처럼 어머니처럼 따뜻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이들의 믿음을 키우기 위해서 말씀의 젖을 먹이는 일에 심혈을 기울였다. 바울은 겸손하게 낮아지는 가운데서도 말씀을 가르치는 지도자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지도자는 이 두 가지 태도를 동시에 갖춰야 한다. 성도들 사이에서 어린아이처럼 겸손하게 낮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어린 성도들과 똑같이 되면 안 된다. 지도자는 낮아진 태도로 성도에게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서 성도들을 젖 먹는 어린아이 상태로부터 굳은 음식까지도 소화할 수 있는 성인의 자리로 끌어올려야 한다. 따라서 지도자는 믿음에 있어서나 신앙생활에 있어서나 말씀을 깨닫는 차원에 있어서나 어린 성도들보다 한 차원 높은 단계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세 번째 권고는 11절과 12절에 있다. 11절에 ‘아버지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바울은 아버지 역할을 예로 든다. 유모는 자식을 따뜻하게 감싸는 역할이라면, 아버지는 자식을 그저 감싸기만 하지 않는다. 자식을 향한 동일한 애정을 엄격한 책망으로 표현할 때도 있다. 따라서 바울이 아버지의 역할에 사역을 비유할 때는 경계한다는 표현이 첨가돼 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때로는 경계하고 책망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 교수는 “바울이 훈계한 내용은 12절에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는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것이었다. 바울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높은 차원의 가르침을 베푸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하나님 앞에서 합당히 행하는 삶은 완전한 실천이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렵다고 해서 적당히 수준을 낮춰서 가르치고 자족하면 다 같이 망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삶의 차원이 높다고 하더라도 항상 그것을 새롭게 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수준에 나의 삶을 비추어 보면서 그 목표를 향해서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성도들의 삶의 여정”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나의 삶을 하나님이 주신 높은 삶의 표준에 비추어 평가할 때 우리는 두 가지 결론에 이르게 된다. 하나는 과거의 삶에 대한 평가다. 지난날 내가 이룩한 삶의 업적이 하나님이 주신 표준에 비교해 보면 보잘 것 없다는 게 드러난다. 그러면서 자신이 여전히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회개하게 되고 겸손해진다. 또 하나는 성도들의 미래를 향한 것이다. 이 높은 표준은 성도들이 추구해야 할 삶의 목표가 무엇인지 제시해주는 지침으로 작용한다. 그리고 이 표준만 따라가면 결코 인생 항로에서 길을 잃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밤바다를 항해하는 항해자에게 북극성은 도달할 수 없지만 항해를 안전하고 바른길로 안내하는 지침으로 작용한다. 하나님의 율법이 성도의 미래에 삶에 대해서 이와 비슷한 역할을 한다. 하나님이 주시는 삶의 표준에 100% 합당하게 살ㅊ수 없지만 이 표준을 항상 바라볼 때 성도들의 삶의 항해가 길을 잃지 않고 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 말씀의 표준이 너무 높다는 이유로 적당히 표준을 낮춰서 가르치는 인간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시점부터 종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게 된다. 이 길은 쉬운 것 같지만 사실은 멸망으로 향하는 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높은 수준의 말씀을 듣는 것이 중요하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높은 수준의 말씀을 가르쳐야 성도들이 제 길로 간다. 높은 수준을 담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과거의 행위를 반성할 때 우리는 죄인으로서의 참모습을 정확히 깨닫고 그 말씀 앞에서 미래의 삶을 설계할 때 바르고 안전한 길로 나아갈 수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교사들과 선배 신앙인들은 어린 신자들이 본받고 싶어 하는 신앙생활의 모범을 보여줌으로써 어린 신자들이 본받을 대상을 예수님으로 갈아탈 때까지 징검다리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주시길 바란다. 또 어린 신자들과 함께 교회 생활할 때 솔직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어울리되 유모와 같은 따뜻한 마음으로 기도와 말씀의 젖을 먹여서 양육에 힘쓰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어린 신자들이 이탈된 길을 갈 때는 아버지와 같은 심정으로 경계하고 훈계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이 원하시는 높은 표준을 확실하게 가르쳐서 어린 신자들이 항상 겸손하게 더 나은 신자로 성장해 가도록, 인생 항로에서 길을 잃지 않고 바르게 항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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