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인 목사(움직이는 교회)
김상인 목사(움직이는 교회) ©선한목자교회 영상 캡처

선한목자교회에서 지난 27일 열린 ‘워십 위드 지저스(Worship with Jesus)’ 집회에서 김상인 목사(움직이는 교회)가 ‘끝까지 사랑을 남기라!’(요13:34-35)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김 목사는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건 서로 사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사랑의 기준을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사랑하라가 기준이다. 첫 번째는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다. 서로 사랑하기 이전에 예수님이 나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구체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서로 사랑할 수 없다. 그 기준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마가복음 4장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길가 밭, 돌밭, 가시밭, 좋은 밭 네 종류의 밭이 나온다. 우리가 농부라면 씨를 당연히 좋은 밭에 뿌릴 것이다. 돌밭, 길가 밭, 가시밭은 씨가 심겨봐야 자라지 않는 게 예상이 된다. 그런데 ‘더러는’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우리의 사고 체계 안에선 이 씨를 여기에 심을 필요가 없는데 그 좋은 씨앗을 길가 밭, 가시밭, 돌밭에 뿌린다. 그런데 이 똑같은 씨가 어느 날 좋은 땅에 심어졌더니 30배, 60배, 100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 됐는데, 제가 예수님을 만난 사건을 기억해보니까 이해됐다”고 했다.

이어 “저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돌밭 중의 돌밭, 가시밭 중의 가시밭, 길가밭 중에 길가밭이었다. 이 말씀을 보니까 제가 돌밭일 때도 씨를 심어 주셨다. 씨는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 제가 못난 가시밭일 때도 길가 밭일 때도 주님은 저를 똑같이 사랑하셨다”고 했다.

이어 “요한복음에 예수님이 부활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사건이 있다. 제자들이 믿지 않자 직접 찾아오셔서 부활의 몸을 보여주시고, 도마에게는 부활의 몸에 손을 넣어보게 하신다.부활 후 40일 동안 계속 말씀하신다. 디베랴 바닷가에서 물고기 잡는 제자들을 찾아가셔서 아침을 차려 주시고,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질문하신다. 하나님이 능력이 없으신 게 아니다. 저의 측면에선 예수님이 하나님이신데 왜 이렇게까지 하셔야만 하는지 이해가 안 됐다. 제가 성경을 계속 찾다가 찾은 답은 하나밖에 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아무리 찾아보려 해도 그 답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당신이 누구인지 드러낼 수 있는 유일한 통로는 사랑이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사랑하셨다. 예수님이 인격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돌밭일 때도 가시밭일 때도 그렇게 사랑하신 이유는 그분이 사랑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두 번째는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다. 이 말은 사랑을 경험하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않았으면서 서로 사랑하는 건 종교 행위와 같다. 그건 내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경험하지 못한다면 서로 사랑할 수 없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이 경험은 다 똑같지 않지만,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그대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그런데 이 벽 하나를 넘어가기가 어렵다. 왜냐하면, 이 사랑이 계속 선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기준이 되어서 이 정도 했으면 됐다고 생각한다. 내가 아니라 예수님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는 게 어렵다. 그래서 기도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디베랴 바닷가에서 끝까지 자신들을 포기하지 않았던 예수님의 사랑을 경험한 제자들의 마음이 다시금 흥분되기 시작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고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을 너희가 경험했지만, 너희 힘으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예수님조차도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했다. 우리가 사랑할 수 없다. 그런데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성령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제자들이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자신들이 얼마나 죄인인지, 그러한 자신을 끝까지 사랑하신 그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이 믿음을 지키게 해 달라고, 그렇게 사랑하게 해 달라고 기도하며 그 능력을 구했을 것이다. 연약하다는 말에 속으면 안 된다. 우리 안에 성령님이 계시다. 그게 기도다. 그래서 기도의 첫마디는 ‘그러나’다. ‘그러나 내 안에 계신 주님은 하실 수 있잖아요’ 청년이 하는 건 저항하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 저항이 시작되면 좋겠다”고 했다.

김 목사는 “제가 교회를 시작할 때 열정이 있었다. 다 잘될 줄 알았다. 복음을 전하면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역사가 일어날 줄 알았다. 믿음으로 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뭔가 제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았다. 그렇게 힘들게 내 마음을 다스리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누가복음 10장 1~3절 말씀을 주셨다. 우리가 예수님이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고 싶은데 그것이 거절당하고 지칠 때가 있다. 저에겐 이 말씀이 없었다면 조금 과장하자면 움직이는 교회가 계속될 수 있었을까 생각할 만큼 중요한 말씀이 되었다. 이 말씀이 여러분 삶에 선물이 되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3절에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는 말씀이 저에게 응답이 되었다. 제 마음이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 같았다. 선한 목자 되신 예수님이 추수할 일꾼이 필요해서 보낸다고 하셨다. 대부분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 시대 가운데 우리를 보내셨는데 어린 양들을 이리 가운데 보냈다고 말씀하신다. 내가 능력이 없고 잘못됐다고 생각하고 좌절 가운데 있을 때 주님이 명확히 말씀하셨다. 잘못된 환경이 아니라, 내가 능력이 없어서도 아니다. 주님이 우리를 그렇게 보내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 상황이 잘못된 환경이 아니라는 것에 대해선 응답이 왔는데 ‘왜’가 해석되지 않아서 성경을 찾았다. 요한복음 1장에 세상 짐을 지고 가는 어린 양을 보라는 표현이 있다. 예수님이 어린 양으로 오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다. 능력이 없지 않았다. 그런데 능력을 행사하시지 않았다.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그 어떤 능력으로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리들의 밥이 되셨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내가 그 이리들 중 하나였다. 예수님이 이리들 사이에서 어린 양으로 존재해주시지 않았다면 저는 예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내게 힘으로서 다가오시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것 하나는 끝까지 하셨다. 저에게 끝까지 사랑을 남기셨다”고 했다.

김 목사는 “사복음서를 다 읽어보면 예수님이 하신 건 끝까지 사랑을 남기시는 거다. 그러면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보냄 받은 곳에서 서로 사랑해야 한다. 서로 사랑한다는 건 힘과 능력이 아니다. 어떠한 탁월함이 아니다. 예수님이 끝까지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으로 존재하시면서 사랑을 남기셨던 것처럼 끝까지 우리도 사랑을 남기는 일이라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그러다 보면 어려울 때도 있고 지칠 때도 있다. 사도행전 1장 8절에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말씀하신다. 증인의 사명은 증명해내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힘으로 안 된다. 끝까지 사랑을 남길 능력이 우리에게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권능은 위로부터 주어지는 능력이다. 지금 우리 안에 그 성령님이 함께 하신다. 그럴 때 증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정신질환을 앓던 노숙인 청년을 사역했던 경험을 전하며 “저에게 그 노숙인 청년은 땅끝이었다. 저도 사역하다 보니까 예루살렘이 편했다. 유대 OK, 사마리아 선택, 땅끝 나중에 이런 암묵적 계산이 있다. 그런데 주님은 완전히 땅끝일 때도 저를 사랑하셨다. 제 측면에 땅끝을 품어보니까 다른 게 문제가 안 된다. 우리가 온전하게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온전함은 무엇일까? 예수님이 나를 끝까지 사랑하신 것처럼 그렇게 끝까지 사랑을 남겨보는 것이다. 그 남겨진 사랑이 우리의 가정, 직장을 변화시키고 공동체 안에 놀라운 역사를 일으킬 줄 믿는다”고 했다.

또 “마지막 세 번째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다.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더 구체화하키고, 그렇게 끝까지 사랑해보길 바란다”이라고 했다.

아울러 “이리들 사이에 어린양으로 존재하는 게 잘못된 건 아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보내셨다. 그 안에 하나님의 신비가 있다. 그때 예수님을 이해하게 되고 그 신비를 경험할 때 또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 같다. 하나님의 나라가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다. 사랑을 남길 환경은 이리들 사이에 어린 양이다. 우리는 할 수 없지만, 우리 안에 성령을 의지하면서 끝까지 사랑을 남기길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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