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수교140주년한국기독교기념사업회
25일 한미수교140주년한국기독교기념 학술대회에 참석한 주요인사들이 단체촬영을 하고 있다. ©장지동 기자

한미수교140주년한국기독교기념사업회가 25일 오후 한국교회백주년기념관 신관 4층에서 ‘한미수교 140주년 회고와 미래방향’이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날 행사 제1부에서는 ‘한미조약 역사와 기독교’라는 전체 주제를 가지고 먼저, 박명수 교수(서울신대 명예교수)가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배경에 대한 재고-로버트 윌슨 슈펠트를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박 교수는 “1866년 제너럴 셔만호 사건부터 1880년 타이건도르가의 귀항에 이르는 기간 동안의 슈펠트(1822~1895, 미국 해군 제독·외교관)의 활동을 통하여 조미조약의 배경을 살펴보면 먼저, 슈펠트는 미국의 외교활동을 문명사적인 행동으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라며 “그는 19세기의 미국을 기독교문명의 총체로서 생각하고 있다. 이것은 유럽 문명 가운데 가톨릭문명과도 다르고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개신교문명과도 다르다고 생각했다. 슈펠트는 여러 곳에 근무하면서 그곳의 유럽문명이 그 지역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 살펴보았다. 슈펠트는 가톨릭문명의 독재적인 성격과 비상업적인 성격을 비판했다. 그리고 슈펠트는 세계 여러 나라들이 이런 유럽의 식민지들이 미국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들은 미국의 자유종교와 자유정부가 기존 유럽의 속박에서 자유를 가져다 줄 것을 기대했다”고 했다.

이어 “특별히 태평양을 미국의 주도권 아래 들어가게 하는 것이 그의 가장 중요하고, 구체적인 것이었지만 이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19세기까지 형성된 기독교문명의 총화인 미국사회가 세계문화를 이끌어 가야 한다는 역사적인 사명도 갖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점에서 기독교와 민주주의를 온 세계에 전하는 것, 곧 하나님이 미국에 주신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을 슈펠트도 공유하고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둘째로 슈펠트의 대 조선 활동에 있어서 1867년 와츄세트호를 타고 조선에 왔던 사건과 1880년 조선을 개항시키기 위해서 조선에서 활동한 내용을 서로 연관지어 설명해야 한다”며 “슈펠트는 자신을 조미관계에서 매우 특별한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인식했다. 그는 나중에 그에게 전달된 서신(박규수가 작성한 의답조회)에서 조선이 자신을 제대로 접대하지 못한 것을 사과하면서 극진한 언어로 사과한 내용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따라서 슈펠트는 1880년 조선 왕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사실을 길게 설명하면서 조선과의 조약을 맺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슈펠트는 조선과의 조약을 맺기 전에 조선이 조선과 미국 사이의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먼저는 제너럴 셔만호 사건의 책임문제이며, 둘째는 조선이 가장 염려하는 종교문제”라며 “슈펠트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박규수의 의답조회를 수용했고, 미국은 조선의 종교에 간여하지 않을 것을 말함으로 조선이 염려했던 종교문제를 해결했다”고 했다.

그리고 “셋째는 조미조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무력 사용의 문제”라며 “슈펠트는 군인으로서 무력 사용을 고려했지만, 어떤 경우든지 무력을 사용하지 말라는 미국 해군부의 명령에 중국의 이홍장을 동원해 무력이 아닌 설득으로 조미조약을 체결하게 했다. 조미조약이 무력 없이 체결된 가장 중요한 원인은 미국 정부의 입장과 슈펠트가 새로운 협상 파트너인 이홍장을 찾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넷째로 나가사끼에서 슈펠트의 활동이 결국 조미조약을 체결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며 “슈펠트는 일본 나가사끼에서 여휴를 통해 이홍장을 만날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마지막 다섯째로 슈펠트는 종교문제에 대해 상당히 소극적이었다”며 “그가 1880년 조선에 와서 조약을 맺으려고 하면서 과거 유럽 국가들이 선교사를 보내서 토착민을 개종시키려고 한 정책을 강력히 비판했다. 이것이 아마도 이홍장으로 하여금 매우 좋게 생각하도록 만들었고, 조선으로 하여금 조미조약을 체결하도록 만드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고 했다.

아울러 “슈펠트는 자신이 원래 기대했던 것과 같은 상업적인 이익을 줄수 있는 나라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은 중국, 일본, 러시아의 전쟁터가 되어가고 있었고, 결국 조선은 이런 난관을 극복하기 위해 미국과 관계를 수립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며 “고종은 바로 이것을 미국에 기대했다. 하지만 미국은 슈펠트만큼 조선에 관심이 없었다. 결국 미국에 대한 사랑은 고종의 일방적인 사랑으로 끝이 났다”고 했다.

이어서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선 박명림 교수(연세대)는 ‘한미수교, 한미동맹, 한미관계: 과거, 현재, 미래’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박 교수는 “냉전시대의 ‘미국의 범위’는 종식되었지만 한미관계의 약화는 한국에게 결코 긍정적이라 할 수 없다”며 “북한 문제의 향방, 중국·일본과의 지역질서 요동, 대만 문제의 악화, 미중관계의 긴장에 비추어볼 때 한미동맹은 한국의 거시적 국가발전을 위한 필수요소”라고 했다.

이어 “먼저 북핵 문제와 관련해 최근의 이중 시그널처럼 미국이 ‘북핵 폐기’와 ‘북핵 인정 및 비확산’ 전략을 병행할 때 남한은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가”라며 “만약 미국이 ‘북핵 폐기-북미관계 정상화’와 ‘북핵 인정-비확산-북미관계 현상유지’의 이중카드를 사용한다면, 그리고 그것의 궁극적 귀결로 만약 북한이 사실상의 핵국가가 된다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임에 틀림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분명한 것은, 냉전 해체, 한국 성장, 북한 추락이라는 복합적인 요인들로 인해 한미관계는 더 이상 과거 약소국 시절에 받았던 특수이익의 보장과 시혜관계가 결코 아니라는 점”이라며 “이제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배려받을 특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특히 냉전시대 지정학, 한국전쟁과 남북대결로 인해 누렸던 위치는 지속되고 있지 않다. 워싱턴의 돌출하는 북핵 인정 가능성의 시사와 한미FTA 재협상은 이를 분명하게 보여준 바 있다”고 했다.

그러나 “단기적·사안적인 우려에도 불구하고, 거시적·장기적인 낙관을 말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 근거로부터 연유한다. 첫째는 중회체제 이래의 한국의 생존과 지속이 유증한 지혜와 전략의 영향”이라며 “지금보다 훨씬 작고 열악했던 당시 조건을 고려할 때 현재 한국 국민들이 직면한 국제조건과 국가역량은 훨씬 더 긍정적”이라고 했다.

또한 “둘째는 건국 이래의 급속한 발전과 성장의 교육 효과”라며 “분단과 냉전, 권위주의 시기를 거치면서 핵심국가의제를 달성한 능력과 집합의지에 비추어 약소국가의 시기를 지나 G7, G9, D10으로 불릴 정도로 성장한 현금 시기의 미래 개척능력이 거기에 조차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상상불능의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리고 “셋째는 시민사회의 교정 능력”이라며 “건국 이래 한국의 국제관계는 많은 경우 시민사회의 강력한 내부 도전과 저항을 통해 바른 길로 들어서는 균형회복의 모습을 보여 왔다. 향후 한미관계를 포함한 국제관계에 대해 긍정적 전망을 할 수 있는 소이연의 하나이다. 시민사회는 언제든 지혜로운 교정자요 균형자 역할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했다.

그러나 “국가나 개인 삶이나, 모든 거시적 장기적 전도는 미시적 단기적 선택의 누적에 달려있다는 점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며 “냉전에서 탈냉전으로, 대북열세에서 우세로, 독재에서 민주로, 약소국가에서 중진국가·중견국가를 거쳐 선진국가로의 도약에 기반해 확장된 현재의 운신의 폭을 더울 지혜롭고 사려 깊게 활용해야할 소이는 여기에 있다. 과거가 우리에게 말해주듯, 그것이 미래 한국의 초석의 하나가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최근 문재인-바이든 정상회담의 합의 범위와 내용은 한미 간의 ‘포괄적 글로벌 동맹’에 기초해, 우선 구체적 논의와 합의의 범위 자체가 한반도 현안을 물론 동북아를 넘어 세계 차원을 포함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기존 한미정상회담들과는 차원을 달리한다”며 “둘째로 의제의 영역이다. 두 정상들은 두 나라와 세계의 거의 전 주요 분야를 망라했다”고 했다.

이어 “셋째로 민주주의, 인권과 법치, 기후문제, 온실가스, 감염병, 백신, 원자력, 국제질서, 국제보건, 기술의제에 이르기까지 세계와 인류의 보편의제와 가치에 대한 합의였다. 가장 놀라운 지점이다. 한국은 더 이상 작고 특수하지 않은 것”이라며 “넷째는 한국의 역할이다. 두 정상은 한국문제는 물론 보편의제와 가치에서도 한국의 적극적인, 때로는 선도적인 역할을 인정·주문·합의하였다. 한국의 비약적인 기술발전이 없었다면 상상도 못할만한, 의도를 숨긴 합의였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이제 한미관계는 한미와 한반도 범주를 넘어 세계와 인류 공통의 가치와 과제를 함께 추구하는 보편의 지평으로 나아가야 한다”며 “먼저, 내부 기반을 구축하고, 둘째로 보편가치와 글로벌 선도역할을 남북관계와 민족주의가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되며, 셋째로 최근 더욱 중요해진 생명과 보건, 기술과 표준, 생태와 문명의 보편성과 선도성을 발양하고, 고양하기 위한 국제 기준의 충족해야 한다”고 했다.

한편, 이후에는 제2부 ‘내일의 한미동맹과 한미 기독교’라는 전체 주제로 정경영 교수(한양대국제대학원)가 ‘통일한반도의 비전과 한미동맹’, 허문영 박사(한미사, 평화한국)가 ‘절대폭풍의 도래와 우리의 국가전략 방향’이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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