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우 송창근 목사 한신대
만우기념홀 개관 기념 특강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한신대

한신대학교(총장 강성영)가 5일 오전 11시 30분 만우기념홀 개관 기념 특강과 개관식을 서울캠퍼스 신학대학원 예배당과 만우기념관 앞에서 각각 열었다.

만우기념홀 개관기념 특강은 전철 신학대학원장의 사회로 진행됐으며, 특강에 앞서 강성영 총장과 서재일 만우기념사업회 대표회장이 인사말을 전했다.

강성영 총장은 인사말을 통해 “만우(송창근 목사)와 장공(김재준 목사)은 한신의 설계자이자 건축가이다. 모세와 여호수아와 같은 분들로, 한신과 기장 역사에서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인물들”이라며 “‘만우 없는 장공 없고, 장공 없는 만우 없다’고 하신 말씀에 동의하며, 마치 머리와 가슴 같은 것”이라고 했다.

강 총장은 “그러나 머리와 가슴만 있어서는 안 되고 손과 발이 함께 있어야 한다. 오늘 이 자리가 그분들의 손과 발로 우리가 발돋움하는 자리”라며 “그분들의 신앙과 인격과 삶을 바탕으로 신학교육의 백년대계를 충실히 이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단순 지식이 아닌 더 깊은 영적인 부분을 향상해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신학 인재를 양성하는 데 매진하겠다. 신학교육을 위해 많은 기도 부탁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서재일 만우기념사업회 대표회장은 “만우는 자신의 뼈를 한신대 교문에 묻어서 학생들이 밟고 다니길 원했다. 항상 마음은 있었으나 이제야 기념홀을 만들 수 있게 됐다. 만우의 정신을 통해 교회 침체기를 극복하고 이 시대에 하나님의 복음과 사랑, 나눔이 전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한신대 김경재 명예교수는 ‘만우와 장공의 영성신학: 화이부동(和而不同)과 바른 계승’이라는 주제로 기념 특강을 했다.

김 교수는 먼저 “1년을 계획하면 곡식을 기르고, 10년을 계획하면 나무를 기르고, 100년을 계획하면 사람을 기른다”라는 만우의 글을 인용하며 “만우기념홀 개관은 신앙의 눈으로 볼 때 매우 의미가 크다”고 전했다.

이어 “만우와 장공은 불가분리적 관계로서 형제이자 ‘천의무봉(天衣無縫)’과 같은 서로가 없으면 안 되는 사이이다. 만우가 원운동의 구심력이라면 장공은 원심력이다. 한신과 기장이라는 독수리의 두 날개요, 대승적 기독교 수레의 두 바퀴”라고 설명했다.

끝으로 “만우기념홀 개관으로 만우의 인격과 신앙, 경건신학이 부활해 제자리에 돌아왔다. 만우와 장공의 영성신학을 통해 인재들이 쏟아져 나오길 기대한다”고 전했다. 이날 기념 특강은 김은경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장의 축도로 마무리됐다.

한신대 만우 송창근 목사 기념홀
만우 송창근 박사 기념홀 개관식에서 참석자들이 기념 테이프를 자르고 있다. ©한신대
만우 송창근 박사 기념홀
한신대 강성영 총장(맨 앞) 등이 만우기념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한신대

이어진 제2부 만우기념홀 개관식은 허정강 만우기념사업회 총무의 사회로 만우기념관 2층 입구에서 진행됐다.

김주한 만우기념사업회 학술위원장의 기도와 김원배 만우기념사업회 실행위원장의 경과보고, 김창주 한국기독교장로회총회 총무와 박상규 한신학원 이사장의 축사가 이어졌다.

김창주 총무는 축사를 통해 “기장총회가 그동안 만우의 업적을 알리지 못했었는데 오늘 다시 그분의 역사와 존재감을 깨닫게 해주셨다. 만우는 폭넓은 어른이셨고, 학자였으며, 사람을 키우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자 혜안을 가진 인도주의자셨다. 이런 신학의 거장을 허락해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소감을 밝혔다.

만우 송창근 목사
만우 송창근 박사 ©한신대

박상규 이사장은 “지금 한국교회와 기장총회를 이끌어나갈 새로운 목사들의 부활이 간절하다. 이 기념홀을 통해 한신과 기장을 다시 살릴 제2, 제3의 만우 송창근이 태어나길 바란다”고 바람을 전했다.

만우 송창근 목사의 유족이자 애광원 원장인 김임순 장로는 가족 인사를 통해 “작은 씨앗일지라도 싹을 다 틔우기 마련이다. 만우의 가르침으로 우리가 신앙의 싹을 틔웠듯이 학생들도 이곳에서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싹을 틔워나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끝으로 임승택 만우기념사업회 서기의 후원 및 모금 재정보고와 커팅식, 기념촬영, 만우홀 전시 설명이 진행됐다.

한편, 故 만우 송창근 목사는 1898년 함북에서 출생했고, 현재의 한신대학교인 조선신학교의 설립에 크게 이바지했다. 한신대는 “1937년 ‘수양동우회’ 사건 등으로 옥고를 치르며 평생 신학과 교회를 통한 애국 애족의 길을 걸었고, 성 바울전도교회(현 서울성남교회)를 개척해 암흑과 혼돈의 시대에 복음을 재건하기 위한 실천적 신앙생활을 강조하는 목회 활동을 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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