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시어머니는 시어머니네요. 어떻게 이 어려운 시기를 이겨낼 수 있을까요?”

김영한 목사(품는 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김영한 목사

결혼한 신부는 시어머니가 너무 좋다고 했어요. 친어머니보다 좋다고 했어요. 그런데 그 신부가 결혼한 뒤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목사님...시어머니는 시어머니네요...” 시어머니가 얼마나 무섭고 밉게 보이는지 이런 속담들이 있어요.

“세 끼 굶은 시어머니 쌍판 같다.”, “소싯적에 호랑이 안 잡은 시어미 없다.”

힘겨운 시누이가 있는 분들은 40일 금식 기도를 하고 결혼을 해야 할지도 몰라요. 시어머니보다 더 무서운 존재가 시누이일 수 있어요. 시누이가 얼마나 어려운지 이런 속담도 있어요.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

친정어머니와 언니 그리고 친여동생과는 다른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잘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시댁이 같은 편이 되기는 쉽지 않아요. 어떻게 해야 같은 편이 될까요?

기식이와 은애는 약 1년 정도 교제 후 결혼을 했어요. 기식이는 결혼 전 십일조가 아니라 10의 2조를 헌금했어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리더로 섬기다가 은애를 만났어요. 은애도 전문 직종에서 인정받는 커리어 우먼이었어요. 두 사람은 결혼생활 한 지 이제 5년 차가 되었어요. 기식이와 은애가 결혼할 때 제가 4주 동안 이 커플을 특별히 결혼식 전 매주 1시간씩 얼굴을 보며 시간을 보냈어요.

지금은 자녀 둘을 낳아 잘 기르고 있어요. 기식이는 1세대 신앙인으로 뜨겁게 주님을 섬겼고요. 은애는 모태신앙자로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어요. 둘 다 신앙이 좋고, 성숙한 리더였지만 은애가 믿지 않던 시어머니를 전도하고, 같이 생활하면서 겪은 삶은 쉽지만은 않았어요. 은애의 이야기를 들어 볼게요.

소개팅으로 만나 온유하고 긍정적인 성품의 남편과 결혼했어요. 말씀으로 신앙을 지키는 삶, 집안 반대 속에도 묵묵히 기도하고 결혼을 이루어내려는 강한 의지, 성실함 등이 저와 다른 신랑의 모습들은 큰 장점이었어요. 제가 바라던 가장의 모습이었거든요. 어려서부터 제약이 많았던 저의 환경과는 다르게 남편의 자유롭고 편한 시댁의 분위기는 친정보다 더 좋은 시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전 신랑이 느긋하고 긍정적으로 문제를 두고 기도하는 모습이 좋았어요. 그런데 그 장점이 단점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결혼을 준비하면서 많아졌어요. 한 예로 신혼집을 구할 때 저는 하루에 몇십 개씩 집을 보았고요. 모자라는 돈은 어떻게 구할 것인지 고민했어요. 되든 안 되든 플랜 세 가지는 가지고 있어야 하는 성격이었는데요. 제 신랑은 “기도하자, 우리가 살 집은 분명 준비되어 있어!”라며 믿음 좋은 이야기들만 늘어놓았어요. 또 다른 예로 약속 시각이 정해졌다면 전 2시간 전엔 일어나 있어야 하는데요, 신랑은 느긋하게 준비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런 다름이 제가 맞고 남편이 틀렸다는 잔소리가 되고 싸움으로 번졌어요. 결과적으로 신랑이 저보다 약속 시각을 더 잘 지켰지만 말이에요.

정말 사랑해서 믿음으로 결심한 결혼이었는데요. 신혼여행을 간 순간부터 ‘이 사람이 정말 나만 사랑할까?’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요. 워낙에 온유하고 친절한 신랑은 모든 사람에게 친절했어요. 그 친절이 저에게 대하는 것과 별다른 것 없어 보였어요. 1년 만난 저보다 더 오랜 시간 함께한 교회공동체 지체들이 있다는 것이 샘이 났어요. 그것으로 트집을 잡아 종종 싸움을 일으켰어요. 어느 날, 신랑의 신앙에 큰 영향을 준 리더 언니가 단순히 안부 카톡을 보내왔는데요. 그것이 발단이 되어 사니 못사니 싸우게 되었어요. 밤늦게 저는 집을 나왔고 갈 곳이 없어 김밥천국에서 1시간 반을 꾸역꾸역 앉아 있다 집으로 돌아왔어요. 긍정적인 저희 신랑은 침대에 대자로 누워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리고 다시 2차전이 시작되었죠.

앞서 말했듯 늘 감정의 동요 없는, 긍정적인 신랑의 장점이 단점이 되는 순간이었어요. 사실 싸움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온유한 저희 신랑은 “그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라고만 하니 일방적인 히스테리가 맞는 말이겠어요. 신랑은 기억도 못 하고 있던 몇십 년 전의 과거 연애사가(여자 친구 이름과 생일이 이메일 주소더라고요) 우연한 기회로 알려진 적도 있었는데요. 그렇게 또 수도 없이 다투고 화해하는 시간을 보내며 저는 신랑에 대한 사랑을 점점 확신하게 되고 신랑은 제가 바라는 바대로 맞추어 주었어요.

저의 결혼생활 제일의 필요조건은 사랑이었나 봐요. 신랑에 대한 사랑을 확신하게 되니 각자 살아온 생활방식(치약을 사용하는 것, 양말을 벗는 것, 변기통을 사용하는 것 등등)을 맞춰가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았어요.

맞벌이하며 남편보다 더 많은 노동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며 따져 보자고 했어요. 털을 흘리지 말라는 둥, 물건을 제자리에 갖다 두라는 둥, 소소한 다툼은 많이 있었어요. 그렇게 한 산을 넘는가 했는데, 아직도 넘어야 할 한 큰 산, 시댁이 있었어요. 남편은 온유하고, 긍정적이라 그나마 제가 히스테리를 부려도 다 받아 주었지만 시어머니는 달랐어요.

결혼 전엔 어른들이 하는 말씀, 결혼은 집안 대 집안이라는 말씀이 전혀 와 닿지 않았어요. 결혼 전 저는 시어머니가 너무나 좋았어요. 마치 제 어머니보다 더 저를 사랑하는 것 같았어요. 그러나 결혼 후 살면 살수록 시어머니와의 관계는 쉽지가 않았어요. 결혼 전에는 제가 사랑하는 남편하고만 잘살면 되겠지 생각했는데요. 결혼은 상대의 집안까지 같이 안고 가야 하는 것이었어요. 형님들 댁에 무슨 일이 있으면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함께 한다는 것이 진심으로 친정 식구들처럼 사랑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어요. 그렇게 돕고 신경 쓰는 것이 마음을 힘들게 했어요. 신랑은 제가 선택한 사람이라 어떻게든 이야기하고 풀어가며 맞춰가겠는데요. 시댁 식구들과는 어머님과는 이야기하며 맞춰갈 문제가 아니었어요. 무조건 맞춰나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심적으로 부담스러워지게 되었어요.

결혼하고 첫 추석이었어요. 어머님과 튀김을 8가지나 하고서, 정작 어머님은 속이 안 좋아 밀가루를 잘 안 드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나를 시험하신 것일까?’ 좋지 않은 의문을 품고서 강원도 큰집에 인사를 하러 갔어요. 식사 시간이 되어 자연스레 방 안으로 들어가 식사를 하려는데 어머니께서 하신 한마디는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저기 큰형님들이랑 부엌에서 너도 밥 먹어라!” 어머니께서는 저의 식사를 챙겨 주시는 거였겠지요. 그런데 친정에서는 남녀노소 구분 없이 함께 밥을 먹는 문화였는데요. 시댁에선 남자와 큰 어른들 그리고 며느리로 나뉘어 밥을 먹는 문화였어요.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도 하고, 서운하기도 했어요.

간신히 눈물을 참으며 밥을 먹는데 눈치 없이 방에서 밥을 먹는 신랑을 보니 미운 생각이 들었어요. 신랑은 삼십 평생 그렇게 살아온 터라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다시 집으로 돌아와 저녁에 친정으로 가려는데 어머니께선 또 말씀하셨어요.
“아가 형님들은 보고 가야지!” 결국 형님 세 분을 다 뵙고 늦은 밤 친정으로 가게 되었어요. 친정엄마가 차려주신 튀김을 먹으며 눈물이 날 뻔했어요. 억지로 참았어요. 작년 설에는 형님들 드실 수육을 삶고서 저녁쯤 처가에 가볼까 제안하는 신랑에게 어머님께선 “가까운 곳에 사는데 천천히 가도 된다”고 하셨어요(어머님은 더 가까이 살고 계시면서요).

출산 전까지 맞벌이를 하던 때라 시댁 식구들과 집들이 시간이 잘 맞지 않았어요. 맞춘 시간이 하필이면 제가 학생들을 데리고 수영장으로 체험활동을 간 토요일 저녁이었어요. 첫 식사 대접은 직접 집에서 만든 요리로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날부터 준비했어요. 실력 부족으로 먹을 수 없는 요리가 되었고 결국 형님들이 사 오신 회와 끓이신 매운탕으로 집들이를 마쳤어요. 무사히 마친 집들이였으나 저는 시댁 식구들이 배려가 없으셨다며 화를 냈어요. 제가 좀 시간이 나는 편한 시간 와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그냥 서운했어요.

결혼 전에는 저희 둘만 잘살면 된다고 만날 때마다 말씀하셨던 어머니셨어요. 지금은 TV 리모컨이 안 된다며 부르시고요. 당장 필요 없는 김치임에도 빨리 가져가라며 재촉하셔요. 손녀가 태어난 후로는 제 입장에선 자주 뵌 것 같은데 “왜 할머니 집에 놀러 안 오냐?” “왜 금방 왔다 금방 가냐?” 하셔요.

시댁에는 한 달에 몇 번 이상 가야 한다, 얼마 이상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야 한다’라는 법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그 법에 따라 해 드리고, 실망했다는 말은 안 들을 수 있으니까요. 믿지 않는 가정에 믿는 며느리로 가서 잘하라는 주변의 말들이 너무 무거운 짐처럼 느껴졌어요. 더욱이 어른들 말씀은 반대로 들어 행동하면 된다는 조언도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어요.

어버이날이나 생신 등 집안 행사가 있어 식사하게 될 때도, 무언가 인사를 듣게 될 때도 인사를 듣는 사람은 늘 남편이었어요. 인사를 받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처가에서 “우리 사위 고맙네!” 하듯 시댁에서는 제가 칭찬을 좀 들을 수 있다면 좋을텐데요. 시댁에서도 “우리 아들이 참 착하지!” 이런 말만 들었어요(전 하늘 상금 쌓이고 있겠죠).

자녀 둘을 돌보며 지금 제게 주신 사명을 열심히 기쁨으로 순종해야겠다는 마음과 버겁고 쉬고 싶은 마음이 늘 싸우고 있어요. 미혼일 때처럼 받고 싶은 훈련을 맘껏 받을 수도 없고요. 기저귀 갈고 수유하다 보면 어느새 목사님께선 축도하고 계시고요. 제가 씻고 싶을 때 씻을 수도 없고요. 자녀가 아프고 고집을 부릴 때면 제 탓 같아 미안하고요. 육아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사회에 나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 봐 불안해하고요. 커리어를 쌓는 친구들을 보면 부럽고요. 밥을 천천히 먹을 수도 없고요. 살은 점점 쪄서 예쁜 옷 입고 다니는 아가씨들을 보면 스스로 처량해 보이기도 해요.

그러나 아직도 갈 길이 멀었지만, 그럼에도 결혼이 아니었으면 제가 지금처럼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요? 감사하고 남편에게 서운해 하는 듯 들릴 수 있지만 전 남편이 고맙고, 시어머니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약간의 시간은 걸렸지만, 감사하고 행복한 결혼 5년 차를 보내고 있어요.

시어머니를 우리는 어떻게 섬겨야 할까요? 룻과 같은 여인이 되어야 해요. 룻은 나이 든 시어머니를 긍휼히 여겼어요. 시어머니께 순종했고, 시어머니를 끝까지 보살펴 드렸어요. 시어머니와 소통이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나 소통을 제대로 하지 않으면, 고통이 오기에, 더 소통하면서, 사랑하고 섬기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마음에 어려움이 있다면, 겸손하게 그러나 솔직하게 어려움을 조심스럽게 나누는 것도 좋아요.

남편이 되는 사람은 결혼 때, 그리고 결혼 생활 중 시댁과 아내 사이에 역할을 잘해야 해요. 무조건 시댁 편만 들으면 안 되고요. 그렇다고 아내 편만 드는 것도 지혜롭지 않아요. 결혼 전 양가 가정에 대해 충분히 나눌 필요가 있고요. 결혼 뒤에는 더 소통하고, 교제하고, 잘 섬겨 드리도록 노력도 해야 해요.

김영한 목사(품는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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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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