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25일 동해상으로 ‘탄도미사일’로 추정되는 발사체 2발을 쐈다. 21일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을 발사한지 나흘 만이고, 미국 국방부가 북한을 향해 “한반도를 불안하게 하는 일을 만들지 말라”고 한지 3시간 만이다.

한미 양국은 북한이 지난 21일 발사한 미사일에 대해서는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미국 국방부 존 커비 대변인은 한국시간 25일 새벽에 진행된 브리핑에서 지난 21일 북한이 발사한 발사체는 유엔 결의 위반이 아니라는 점을 인정했다. 그러나 미국이 북에 “더 이상 추가 도발은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직후에 북이 이번에는 ‘탄도미사일’ 발사로 응답함으로써 한반도는 예측 불허의 상황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그런데도 우리 군 당국은 25일 북한 발사체 발사와 관련, 국방부 정례 브리핑마저 불참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데 즉각적이고 사실대로 국민 앞에 보고해야 할 안보문제까지 사전 조율이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방부가 북한이 쏜 발사체가 무엇인지 명확히 밝히지 않는 점이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미 “탄도미사일이 맞다”는 입장이 나왔는데도 “제원이 어떻다, 종류가 어떻게 된다고 말하는 게 적절치 않아 보인다”며 직답을 회피하는 군을 무슨 수로 신뢰할 수 있겠는가.

군은 북한이 지난 21일 쏜 발사체에 대해서도 일체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23일 미국의 워싱턴포스트와 로이터통신 등 외신들이 앞 다투어 보도하고 나서야 뒤늦게 북한이 서해상으로 순항미사일 2발을 발사한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북한이 21일에 발사한 순항미사일은 사거리가 짧아 유엔 결의 위반은 아니다. 그러나 25일에 발사한 발사체가 미국 일본 등의 발표대로 탄도미사일이 맞는다면 이는 명백한 유엔 안보리 결의 위반이다. 문제는 순항미사일이든, 탄도미사일이든 한반도를 타격할 수 있는 가공할 무기라는 점이다. 유엔 결의 위반이 아니면 발표하지 않아도 되고 결의 위반이면 발표해야 하는 게 아니란 거다. 안보에 관한한 국민은 알아야 할 권리가 있고, 군은 국민에게 사실대로 알려야 할 의무가 있다.

북한이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선 후 처음 가진 한미 연합훈련과 미 국무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의 방한 직후를 시점으로 11개월 만에 미사일 발사를 재개한 것을 우연이라 볼 순 없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이 지난 16일 담화에서 한미연합훈련을 겨냥해 “앞으로 4년간 발 펴고 편히 잠자고 싶은 것이 소원이라면 시작부터 멋없이 잠 설칠 일거리를 만들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협박한 직후라는 점만 봐도 그렇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유엔 결의 위반이라는 초강수를 두어가면서 미국에 보내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는 미북 정상회담의 재개를 재촉하는 신호인 동시에 향후 미북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기 위한 의도된 전술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한국 정부를 향해서는 미국과 전혀 다른 전략을 쓰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남은 1년 동안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가시적 성과를 위해 어떻게 나올 지 이미 속을 훤히 들여다보고 있다는 태도다. 문 대통령을 향해 “삶은 소대가리” 운운하며 저질 욕설을 눈 하나 깜박하지 않고 내 뱉을 수 있는 배짱 뒤에는 칼자루를 내가 쥐고 있다는 계산이 깔려있는지도 모른다.

북한을 저렇게 만든 것은 청와대와 정부의 외교라인, 운동권적 사고에 머물러 있는 여당 지도부의 책임이 작지 않다. 실체 없는 허황된 ‘평화론’에 사로잡혀 줏대 없이 끌려 다니며 굴종해 온 결과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북한이 한미연합 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 것에 대해 9.19 군사합의 정신에 의거, “북측과 협의할 수 있다”고 했다. 국방부는 북한의 대남 군사위협이 증가하는 현실에서도 지난달 펴낸 ‘2020 국방백서’에서 “접경지역 지·해역에서의 우발적 충돌방지 조치 이행 등 전반적으로 9.19 군사합의를 준수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런데 우리 정부가 그토록 목을 매는 9.19 남북 군사합의를 북한이 어떻게 활용하고 있는지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가 있다. 지난 2019년 11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북의 창린도를 방문해 직접 사격 지시를 내린 사건이다. 북한이 최근 이 창린도에 240㎜ 개량형 방사포를 새로 배치한 사실이 밝혀졌다. 백령도와 연평도는 물론 NLL 주변을 지나는 해군 함정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방사포를 북한이 우리 코앞에 배치하는 동안 우리 정부와 군 당국은 무엇을 하고 있었나.

2010년 3월 26일 북한군이 천안함에 어뢰 공격을 가해 해군 승조원 46명이 전사했다. 같은 해 11월에는 연평도에 기습적으로 포탄을 퍼부어 해병대 장병 2명이 전사하고 민간인 2명이 사망했다. 정부는 천안함 사건이 일어난 날인 3월 넷째 주 금요일을 ‘서해수호의 날’로 정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장병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잊지 말자는 뜻이다.

이런 의미심장한 기념일에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 맞은 2018년에는 베트남 국빈 방문 중이라는 이유로, 2019년은 지방 경제 투어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그리고 3년만인 지난해에 비로소 처음 기념식에 참석해 ‘남북 군사합의’를 언급했다.

6.25 한국전쟁 이후 60년간 적대관계였던 남과 북이 맺은 군사합의는 결코 가벼운 게 아니다. 그러나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말이 있듯이 그 어떤 합의도 상대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북한은 이미 9.19 남북 군사합의를 휴지화 해 버린 지 오래다.

맘 내키면 언제든 미사일을 쏴대는 저들을 누가 한반도 평화의 ‘파트너’로 인정하겠나. 그런 자들에 의해 자행되고 있는 참혹한 인권 탄압을 외면한 채 19년 연속으로 채택된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인권결의안’의 공동제안국에 3년 연속으로 빠지면서까지 저들을 감싸고 두둔할 가치가 과연 있는가. ‘서해수호의 날’ 아침에 국민들은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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