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2월 미얀마 고립지대에 사는 빈민들과 함께한 의료봉사
2018년 2월 미얀마 고립지대에 사는 빈민들과 함께한 의료봉사 ©이태훈한의원

"인간이 불행한 것은 자기가 행복하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 도스토옙스키

평균수명 83세! 2018년 기준으로 대한민국 남자의 평균수명은 80.5세, 여자는 85.7세다. 65억 지구인 가운데 이렇게 긴 수명을 보장받은 인구는 2%밖에 되지 않는다. 대한민국은 가히 축복받은 장수의 땅이다.

연세 높으신 어르신들께 지나간 세월이 길었느냐고 여쭤보면, 한 분도 '그렇다'고 답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순식간에 지나버려 허무하다. 오래 살면 뭐 하나. 아프면 다 소용없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장수가 우리에겐 노후 부담으로 변하고 있다. 질병과 빈곤 때문이다. 질병으로 겪는 고통과 경제적 어려움은 평균수명 증가라는 축복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일본에서 한 노인이 99세 11개월 31일 되던 날 죽음을 택했다고 해서 떠들썩했다. 그녀가 써놓고 간 글 때문이었다.

"백 살이 되는 게 너무도 끔찍하다."

100세 시대가 오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는 지옥이었다. 눈부시게 의학이 발전하고 경제적 부담을 줄이는 의료보험도 도입됐는데 말이다.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꼭 가야 할 길이 있다. 죽음이다. 이생과의 이별에도 '차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석과 설 때마다 봉사차 갔던 미얀마와 캄보디아에서였다.

'개발도상국이라 젊은이들로 넘쳐난다. 희망이 보인다'고 했던 필자는 빈민을 상대로 한 임상에서 충격을 받았다. 한의학을 접한 적이 없는 그들은 우리를 신기해하며 반겼다.

필자의 감정은 전혀 달랐다. 필자보다 어린데도 치아가 별로 남지 않은 이가 많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만난 50대 중반에게는 같은 50대인 필자에게 있는 '30년'이 없었다. 그들의 평균수명은 60세였기 때문이다.

마비와 각종 질환에 찌들어 있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대한민국에서는 한창 일할 때인데 그곳의 50대 초반은 시한부 인생이었다. 필자는 30여 년을 살 궁리를 해왔는데, 그들에게는 3~4년도 남지 않았다. 그들에게 '인생은 60세부터'라는 말은 비아냥으로 들릴 것이다.

미얀마에서는 전기가 자주 끊겨 진료 중에 애를 먹었다. 냉장고를 쓸 수 없어 음식을 소금에 절여 먹어 그곳 사람들에게서는 고혈압이 흔했다. 그 때문에 중풍과 두통을 가진 환자가 매우 많았다. 필자와 같은 50대 후반의 환자는 보기 어려웠다. 누워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겨우 몇몇만 간신히 몸을 끌고 와서 순서를 기다렸다.

'좋은 의사가 되어주어야겠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되었다. 출국 때 설렘으로 나왔던 교만은 사라지고 한 사람이라도 건강하게 살려보자는 결심을 거듭했다. 차동엽 신부는 <무지개의 원리>란 책에서 '행복은 언제나 감사의 문으로 들어와서 불평의 문으로 나간다고 했다. 봉사를 하며 감사의 길을 깊이 알게 되었다.

처음 나누기를 시작하는 사람들은 '내가 저들에게 나누어주었다'고 생각한다. 나눔이 일상화되기 시작하면 '저들에게서 내가 위로받았다'고 고백한다.

더위를 심하게 타는 필자는 미얀마에서 날씨와의 싸움만으로도 이미 파김치가 되었다. 진료 특성상 몸을 많이 쓰는 편이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체력은 풍선에서 바람이 새어 나가듯이 빠져나갔다. 장소를 옮겨 빈민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에서 식사를 할 때였다.

더위 탓에 밥이 입으로 넘어가는지 모를 지경으로 헤매고 있는데, 갑자기 피부와 머릿결이 시원해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현지 여성분이 웃음 가득한 얼굴로 커다란 부채를 저어주고 있었다. 50대 중반을 살아오면서 이런 천국의 바람을 받아본 것은 처음이었다.

필자는 봉사하러 간 것이고, 그분은 그곳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필자가 큰 도움을 받고 있었다. 필자의 머릿속에는 필자가 바라보기 전부터 웃고 있었던 그녀의 배려 가득한 얼굴뿐이다. 그때 알게 되었다. '나눔은 함께 숨을 쉬는 것'임을. 나눈다는 생각도 결국은 교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작은 나눔의 추억만 가지고도 평생을 우려먹는 우리에게 나눔은 인생 최대의 보석임이 분명하다. 얼마 전에 IMF 외환위기 후 결식아동에게 도시락을 만들어 배달하며 식사비도 함께 후원했던 봉사자를 만 날 일이 있었다. 그가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냐고 누군가 물어본다면, 바로 그때라고 말할 겁니다. 너무 행복했어요."

필자도 고백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하나님이 기회를 주시면 더 많은 이들을 위해 살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때 꼭 다시 모시겠습니다."

자연이 공짜로 산소를 주었기에 우리가 살아간다. 그런 흉내를 제대로 내는 것이 나눔이 아닐까? 필자는 지금도 지구 반대편의 오지를 마음에 새겨놓고 산다. 세상에서 가장 좋은 것이 눈앞을 어지럽힐 때마다, 그것보다 멀고 길게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진정한 나눔을 꿈꾼다. '나눔은 세상과 함께하는 숨'이니까.

이태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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