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정성욱 교수

조직신학 구원론은 구원의 본질, 구원의 필요성, 구원의 방법, 구원의 서정 (order of salvation)등을 다룬다. 구원의 서정에는 예정/선택, 소명, 회심, 거듭남/중생, 연합, 칭의, 양자, 성화, 견인, 영화 등이 포함된다. 지난 번 글을 통해서는 칭의, 성화, 견인, 믿음, 거듭남과 중생에 대해서 논의하였다. 이번 글에서는 양자됨, 양자삼으심에 대해서 다루고자 한다.

양자됨이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과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 되는 사건을 의미한다. 죄인은 본래 하나님의 자녀도 아니었고, 하나님 가족의 일원도 아니었다. 죄인인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마귀의 자녀들이요, 어둠의 자녀들이었다. 마귀의 종이요, 죄의 종이었다. 이미 영적으로 죽은 상태에서, 육신적인 사망과 영원한 사망의 공포가운데 사는 자들이었다. 그런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즉 당신의 가족의 일원으로 삼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법적 행위를 양자삼으심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하나님 편에서는 양자 삼으심이요, 우리 편에서는 양자됨이다.

여기서 양자됨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권 (the sonship of Jesus Christ)과 우리의 자녀권 (childrenhood of Christians)을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권은 자연적 아들, 본래적 아들 또는 친자로서의 성격을 가진다. 반면에 우리의 자녀권은 법적인 의미에서 양자됨을 통해서 이뤄진다. 즉 자연적으로, 본래적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친아들과 딸들이 아니다. 즉 본성상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신 신성이 주어지지 않았다. 단지 피조물에 불과했고, 더 나아가서 반역자요, 원수였던 우리를 당신의 아들과 딸의 지위로 올리셔서 예수 그리스도가 누리시는 모든 특권을 동일하게 누리게 하시는 것은 과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은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복음주의 개혁신학자 제임스 패커는 "하나님을 우리의 거룩한 아버지로 아는 지식이야 말로 신약의 복음신앙을 요약해주는 말이라"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 양자됨에 대하여 요한복음 1장 12절은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말씀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법적 권세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신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 메시지인 것이다. 갈라디아서 4장 4-7절은 양자삼으심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니라-

하나님은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아래 나게 하셨다. 율법 아래 나신 예수는 율법의 저주를 우리 대신 받아 십자가에서 피흘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와 마귀의 권세로부터 속량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을 받은 우리에게 하나님은 아들의 명분, 아들로서의 완전한 권리를 주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으므로 하나님은 그 아들의 영 즉 성령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하나님의 유업을 받을 자 즉 하나님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우리가 상속받을 유업은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다.

신약성경이 사용하는 양자삼으심 혹은 양자됨이라는 용어는 로마사회에서의 양자삼음의 제도와 풍속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고대 로마사회에서 어떤 사람이 귀족가문에 양자가 되면 그는 친자녀와 똑같은 완전한 권리를 누릴 수가 있었다. 심지어 황제의 아들로 입양이 되면 그가 친자식이 아니더라도 왕위를 계승할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로 삼으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당신의 친아들인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권리를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이다. 아, 얼마나 놀라운 진리인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하나님의 양자가 된 우리가 누릴 수 있게 된 권리에는 첫째, 하나님 아버지를 아빠로 누릴 수 있는 권한이다. 즉 아버지와의 매우 친밀한 인격적 사귐과 교통과 교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아버지의 절대적인 사랑과 무한한 은혜와 전능하신 보호와 깊은 긍휼과 한없는 용서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이 세상에 있는 다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게 되었다 (롬 8:39).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형제권을 얻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예수님을 "형님"이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롬 8:29)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이 되시고,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과 아우들이 되었다.

셋째, 유업을 이을 상속권이다. 즉 하나님 아버지의 모든 재산과 소유가 다 우리의 것이 되었다. 그러므로 성경은 만물이 다 우리의 것이라고 말씀한다 (고전 3:21). 따라서 이 세상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은 제프 베이조스나 빌 게이츠가 아니라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 때 거룩한 기백과 담대함과 용기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주눅이 들거나, 낙심에 빠지거나, 인색하거나, 침체에 빠진 삶은 하나님의 자녀된 그리스도인들에게 결코 어울리지 않는 삶의 모습인 것이다.

넷째,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과 딸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영원히 왕노릇하는 통치권을 누린다.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 데 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그들에게 비치심이라 그들이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5). 우리는 하나님의 왕족의 일원이 되었다. 하나님의 왕자요, 공주가 되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통치권을 누리게 된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된 우리에게는 놀라운 권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책임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의 자녀답게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는 진정한 의미에서 영적인 효자가 되어야 한다.

또한 날마다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하고, 우리 모든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게 하기 위해서 순종하고 헌신해야 한다. 동시에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힘쓰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지를 더 깊이 알아가는 일에 자라야 하며, 하나님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안에는 죄가 있고 죄성이 남아 있다. 그러하기에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버지의 자녀이기에 아버지는 우리를 징계하시고, 훈계하시고, 책망하신다. 아버지의 징계가 없는 사람은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다 (히 12:8).

요컨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된다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누리는 최대의 특권이 아닐 수 없다. 복음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높은 영광과 지위에까지 우리를 데리고 가며,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 즉 주님의 인격과 성품을 닮는 수준까지 이끌어간다. 그러하기에 복음을 참되게 깨닫고 믿는 하나님 자녀의 삶보다 더 존귀한 것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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