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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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기독교사학회가 21일 온라인 줌(ZOOM)을 이용해 제17차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동아시아 기독교 교류문헌-일본 및 대만 기독교의 여러 얼굴들’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학술대회에선 김흥수 교수(목원대 명예)의 기조강연 이후 한일 기독교 역사학자들이 다양한 주제로 발표했다.

특히 야쿠시게 요시히로(役重善洋) 박사(동아시아그리스도교교류사연구회)가 ‘일본에서의 기독교 시오니즘’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해 눈길을 끌었다. 요시히로 박사는 “비구미(非欧米) 지역 중에서도 극히 이른 시기에 기독교 시오니즘의 수용이 보인 것이 일본 기독교”라며 “그 중심에는 우치무라 간조(1861~1930)를 창시자로 하는 무교회주의와, 나카다 쥬지(1870~1939)를 중심으로 하는 홀리니스교회가 있었다”고 했다.

이어 “그들은 제1차 세계대전 말기인 1918년부터 1919년에 걸쳐서 재림운동이라 불리는 일련의 대중 집회를 전국각지에서 개최했다”며 “재림운동은 당시 미국에서부터 현재 복음주의로 이어지는 자유주의 신학에 반발한 보수적 개신교 사이에 급속하게 퍼지고 있던 전천년설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는 “빠른 시일 내에 그리스도의 재림을 예고로 하는 지상에서의 하나님의 왕국이 실현된다고 생각하는 전천년설주의자는 현실의 정치나 사회에서 거리를 두는 경향이 있고 제1차 세계대전에의 미국의 참전에 대해서도 당초는 소극적이었다”며 “전천년설, 특히 세대주의라고 불리는 성서해석에 이론상 부수되는 ‘유대인 귀환론’에 대해서도 반드시 중요시되는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러나 “1917년 11월 유대인의 민족적 고향 건설에 대한 영국의 지원을 약속한 밸푸어선언의 발출이나, 다음 12월의 영국군으로 인한 예루살렘 점령 사건은 참전한지 얼마 안 된 미국의 보수적 개신교에 있어서 십자군 의식을 고양 시키는 것과 동시에 그리스도 재림이 곧 올 것이라는 예고로서 파악되고, 기독교 시오니즘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하였다”는 것.

요시히로 박사는 “제2차 세계대전 전, 비구미 지역에서의 기독교 시오니즘이 일정한 규모로 수용된 것은 일본 뿐”이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나카다의 영향을 받은 홀리니스계의 기독형제단이나 성예수회 등의 그룹이 기독교 시오니즘의 교의를 이어 받았다. 또한 무교회파의 조류로는 ‘그리스도의 장막’이 우치무라의 민족주의적 성서해석을 이어 받았다”고 했다.

그는 “이러한 그룹은 1960년대로 들어가 이스라엘과의 교류를 시작해, 일본에서의 이스라엘 로비조직으로서의 성격을 강조했다”며 “1980년,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통일 된 수도’라고 선언한 ‘예루살렘 기본법’에 항의해서 각 나라 대사관이 다 같이 예루살렘에서 텔아비브로 이전한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들 단체는 그런 국제 여론에 대항하는 홍보 외교의 일환으로서 성립되었다”고 했다.

또 “중동화평 과정이 전개된 1990년대 이후 미국의 기독교 시오니스트조직 ‘브리지스 포 피스’의 일본지부가 만들어졌고(1998년), 예루살렘 서밋 아시아(2004~2008년)가 개최되어 여러 움직임이 아시아 지역에서 전개되었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그는 “비구미 지역에서의 복음주의 개신교의 확대 및 그곳에서의 기독교 시오니즘의 침투가 글로벌한 현상으로서 현재화되어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는 현실은 직시할 필요가 있다”며 “중동화평의 문제는 핵이나 에너지, 금융 등의 문제를 통해서 동아시아 정세와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중동지역과 동아시아는 제국주의 정치를 통해서 혹은 실크로드를 통해서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무시할 수 없는 상호영향관계를 가져왔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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