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저는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다니지 않는 남자와 교제를 하면 안 된다고 하셨어요. 하나님이 정해놓은 그 사람의 구원의 길이 있는데 제가 그 길을 방해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죄를 자백하고 끊어내는 게 진정한 회개라고 하셔서 그래서 저는 정말 슬프지만 교회 때문에 그렇다고 솔직한 이유를 말하며 끊어냈어요. 저를 정상이 아닌 사람처럼 봐요. 제가 한 행동 그리고 교회에서 알려준 게 다 맞는 말인 거죠?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제가 드리는 말씀을 순서에 따라 오해 없이 잘 새겨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우선 신자는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원칙적으로 옳고 성경이 가르치는 바입니다. 그러나 원수를 사랑하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해 주어라, 형제의 잘못은 일흔 번씩 일곱 번까지 즉 끝까지 용서해주어라 등등의 말씀과 비교해 보십시오. 과연 우리가 이런 계명들을 그대로 다 지키고 있습니까? 아니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럼에도 주님이 그런 명령을 주신 까닭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하나님을 아는 자답게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거룩해져야 할 목적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목표로 부단하게 피 흘리기까지 죄와 싸우며 성화에 힘쓰라는 것입니다.

둘째는 신자 스스로의 도덕성과 의지로는 도무지 실천할 수 없으니 자신을 부인하고 주님의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을 온전히 의지하고 성령의 깨끗케 하시는 인도를 받으라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자신의 성품과 행동이 거룩하게 바뀌길 소원하며 기도하면서 행하면 성령이 악의 세력이 틈타지 않도록 미리 막아주시고 죄와 싸울 힘과 지혜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계명들은 사실은 온전히 지킬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 신앙은 오히려 선을 행할 수 없는 자신의 가난한 영적 실체를 언제 어디서나 겸허히 인정하고 주님만 붙드는 것입니다. 스스로 선을 행할 수 없다는 데서 기독교 신앙이 출발하는 것입니다. 다른 모든 계명을 지키지 못하면서 유독 한 가지만 문자 그대로 고집하는 것 자체가 사실은 조금 모순입니다.

물론 불신자와 교제 결혼하지 말라는 것은 너무나 분명해서 자매님 말씀대로 그냥 끊으면 되는 비교적 쉬운 일이긴 합니다. 당사자의 감정, 정서, 주변 여건 등 파생되는 다른 여러 어려운 문제들을 감안하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믿음이 좋은 더 합당한 배우자를 예비해 놓으셨다고 믿고 다시 기도하며 기다리면 됩니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는 것이 가장 성경적인 원리입니다.

그러나 과연 상대가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겉만 봐선 어느 누구도 모른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교회 안에 아주 경건하고 성실히 신앙생활 하는 것 같아도 막상 거듭나지 않은 자일 수 있고 그 상태로 끝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종말 때까지 알곡과 가라지가 섞여 있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교회 행사에 불성실하고 주일 예배만 겨우 참석하며 세상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는데 의외로 하나님 보시기에 거듭나서 의로운 신자일 수 있습니다.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고전7:8-16에서 발췌. 본문을 다 읽어보시기 바람)

바울 사도는 믿지 않는 남편이 믿는 아내로 인해 구원 받을 수도 있으니 이혼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는 지금 질문자님의 경우와는 물론 상황이 다릅니다. 초대 교회 당시라 이제 막 십자가 복음이 전파되기 시작할 때였습니다. 그러니 결혼한 사람 중에 아내나 남편이 먼저 믿게 되더라도 헤어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가르침입니다.

또 당시는 이 서신을 기록한 바울을 비롯해 모든 신자들이 주님이 그 세대 안에 다시 온다고 오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믿지 않는 자와 함께 부부로 있으면 안 되지 않느냐는 의구심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에 대해 바울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권한 것입니다. 이 말씀을 확대해석하면 불신자 중에도 하나님이 구원으로 예정해 놓은 자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 그런 자에게 적절한 전도자를 붙여주시고 있다는 뜻도 됩니다.

이를 또 자매님의 경우에 개인적으로 적용해 봅시다. 정말로 그 상대를 사랑했고 또 그래서 더더욱 예수님의 십자가 구원 안으로 초대하고 싶다면 헤어지기 이전에 먼저 전도부터 해야 하는 것이 순서가 아닐까요? 생판 모르는 감옥의 사형수도 찾아가서 전도하는데 어쨌든 친밀한 교제를 하며 좋아했던 상대라면 어떻게 하든 더더욱 전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을 갖게 한 후에 결혼하게 되면 가장 이상적입니다.

나아가 도무지 그 사람과 헤어질 수 없다든지, 그 사람을 내가 꼭 전도해야겠다고 마음먹으면 교제를 이어가고 결혼까지 하셔도 됩니다. 대신에 그 결혼은 남녀 간에 사랑을 이어가고 가정을 갖는다는 일반적 목표 외에 또 다른 어쩌면 더 중요한 목표를 가져야 합니다. 남편이 바로 선교지라는 각오로 평생을 두고 남편의 전도를 위해서 다른 모든 것은 수고 희생하셔야 합니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지금이라도 헤어지거나, 아니면 전도한 후에 결혼은 천천히 생각하면 됩니다.

흥미롭게도 상기 질문에서 “하나님이 정해놓은 그 사람의 구원의 길이 있는데 제가 그 길을 방해하는 거라고 하셨습니다!”라는 충고를 교회에서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구태여 다시 답변하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저도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비성경적인 가르침 같습니다. 바울은 믿는 아내가 믿지 않는 남편을 구원으로 인도할지 모른다고 했지 않습니까?

하나님이 그 상대를 구원으로 작정하셨다면 혹시라도 하나님이 지금 자매님을 그 구원의 도구로 쓰고 계실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오히려 교제를 그만두는 것이 그 구원을 방해하는 것 아닌가요? 반대로 구원으로 작정하지 않으셨다면 자매님이 어떻게 하든 그 분의 구원과는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의 가르침이 합당해지려면 자매님이 교제 결혼하는 것이 상대의 구원에 분명하게 방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어야 하는데 그것을 누가 확정적으로 말할 수 있습니까?

아주 잘 해석해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다른 사람을 예비 해놓았다는 것인데 구원은 사람이 행하는 것이 절대 아니며, 도와줄 수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전적 주권과 작정에 의해 이뤄집니다. 그렇지 않다면 지금 자매님이 교제, 나아가 결혼을 해도 전혀 상대를 전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되지 않습니까? 혹시라도 그렇게 말한 구체적인 이유가 있다면 저에게 가르쳐 주십시오. 저야말로 정말 궁금합니다.

불신자인 상대가 자매님의 행동을 비정상으로 보는 것은 아주 당연한 반응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잘 믿어 현실에서 복 받고 고통이나 상처를 없애는 정도가 아닙니다. 인생관 가치관이 완전히 세상 사람과 달라지는 것이며 그 달라진 바탕에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입니다. 생활방식부터 정반대가 되는 것이 올바른 믿음입니다.

그래서 참 신자가 불신자와 결혼하면 도무지 서로 생각이 다르고 말이 안 통합니다. 사사건건 부딪히고 자녀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서 불행해질 것이 확실합니다. 불신자는 기독교 신앙이 그런 줄을 모르고 사랑으로 모든 문제를, 종교 문제도 관용으로 해결하면 된다고 단순히 생각하니까 이해를 못하는 것입니다. 만약 정말로 그 사람과 결혼하고 싶다면, 어쩌다 결혼하게 된다면 평생 선교사가 되어서 모든 섬김 수고 희생을 신자 쪽이 감당해야 한다고 말한 까닭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신자인 교제 상대와 헤어져도 좋고, 그분을 먼저 전도한 후에 결혼하셔도 좋고, 애인 관계는 종식하고 친구로 지내면서 계속 복음을 전해도 되고, 평생을 두고 전도하기 위해서 선교사 자격으로 단단히 작정하고 결혼하셔도 됩니다. 마지막의 경우는 오랜 세월 정말 눈물로 기도하며 신앙이 다름으로 오는 고통을 혼자서 감내하셔야만 합니다. 제 답변을 잘 새겨서 판단하시고 자매님의 믿음대로 행하십시오. 그리고 그 선택의 결과가 긍정적이든 혹은 부정적이든 자매님 혼자 책임지셔야 합니다.

2016/9/30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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