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안식일에 예배를 꼭 교회를 가서 드려야 하나요? 혼자 예배하는 게 더 좋아보여서요.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많은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주제입니다. 이런 의문이 생기는 이유는 주일, 예배, 교회는 물론 구원 받은 의미 등이 제대로 정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된 데에는 말씀을 가르쳐야 할 목회자들의 잘못이 가장 큽니다. 기독교 신앙을 도덕적 삶의 실현, 내면의 마음 다스림, 기도하여 현실 환난을 극복하기, 아주 잘 봐주어야 성경 지식 쌓기 등의 수준으로 낮추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주일을 안식일과 같은 차원으로 가르치기도 합니다.

말하자면 착하게 살고 정서적인 평강을 유지하며 고난 중에 구해 달라고 기도하고 성경을 읽고 배우는 것이 신앙의 전부이니까 구태여 교회를 가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 모두를 집에서 혼자서 얼마든지 행할 수 있는데다 최근에는 인터넷에서 필요한 것들은 다 찾아서 쉽게 배울 수 있고 심지어 예배에도 참석할 수 있습니다. 거기다 교회 내의 분쟁과 목회자들의 비리와 성도들의 몰상식한 행동 때문에 더더욱 교회에 발을 들여놓기 싫어합니다. 주일을 안식일 정도로 이해하니까 어떤 일을 하러 외출하지 않고 집에서 쉬는 것이 어쩌면 더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이 홈페이지 사역을 수행하면서 본의 아니게 청년들로 혹시라도 교회와 멀어지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점을 항상 걱정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가 잘못하는 점들에 관한 불평과 상담을 접할 때마다 교회를 옮기더라도 교회 출석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강력히 권면해 왔습니다. 다른 한 편으로는 작금 온라인상에 이단이나 틀린 가르침들이 너무 범람하여 선의의 신자들이 혼동할 수 있으며 또 청년들이 기존의 보수적인 교회를 기피하려는 성향 때문에라도 더더욱 인터넷 사역이 별도로 필요하고 아주 중요하다고 믿습니다.

교회의 설립 배경과 소명

질문자님의 궁금증을 해소하려면 교회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는지부터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 성경적 지식의 바탕에서 교회에 참석해야 할지 말아야할지 본인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 시행하시고 자기 책임 하에 신앙생활을 영위해나가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하나님께 불려 나온 믿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원칙적으로 성도가 두 사람이 모여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교회입니다. 그럼 성도들끼리 몇 명이 되었던 어떤 방식으로든 반드시 함께 모여서 행해야만 하는 일이 있는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인지부터 따져봐야 합니다. 지역별로 조직체 교회를 세우고 그런 교회에 출석해야 하는지 여부는 이차적인 문제입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네가 땅에서 무엇이든지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하시고 이에 제자들을 경계하사 자기가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라.”(마16:16-20)

신앙상의 어떤 문제라도 예수님의 가르침이 최종적이고 절대적인 판단 기준이 됩니다. 상기에 인용한 구절은 주님이 교회를 세우시게 된 배경과 교회가 맡아야 할 사명에 관해 처음으로 직접 가르치신 내용입니다. 베드로가 당신을 그리스도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자 그 믿음의 고백 위에 교회를 세우신다고 합니다. 그리고 음부의 권세를 이기는 천국 열쇠를 교회에 맡길 테니 땅에서 매거나 푸는 것에 따라 하늘에서도 매고 풀어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우선 교회는 예수님이 성자 하나님으로서 자신을 죄에서 구원하신 메시아이자 자기 모든 것의 주인이라고 고백한 신자들의 모임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세워지는 기본 배경입니다. 이와 다른 믿음을 가진 이단의 모임은 교회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종교 집단에 불과합니다.

교회가 수행해야 할 소명에 대해선 사탄에게 미혹되어 죄의 노예가 된 불신자들에게 예수 십자가 복음을 전하여 참 생명으로 초대하고 말씀을 가르쳐서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을 교회가 성실히 준행하면 하늘에서 구령(救靈)의 열매를 맺게 해줄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은 그래서 부활 후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아래처럼 당부하셨습니다. 사람으로 치면 죽기 직전에 유언한 셈이라 신약시대 신자들이 평생을 두고 반드시 순종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계명입니다.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28:18-20)

상기 말씀만으로도 교회가 행해야 할 일은 전도(땅 끝까지 가야 하므로 해외 선교도 포함)와 성경말씀 교육 훈련과 세례, 최소 세 가지입니다. 혼자서 이 셋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지 않습니까? 간단히 이렇게만 따져도 혼자 주일 집에서 조용히 정신수양하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 아무 관계없음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주님은 제자들이 이 임무에 충성할 때는 세상 끝 날까지 그들과 함께 하겠다고 합니다. 이 소명을 수행해야 할 교회는 세상 마지막 날까지 존속해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바꿔 말하면 그 일을 하지 않는 제자들과는 하늘과 땅의 권세를 가진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겠다는 뜻도 됩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그런 뜻을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18:20)고 분명히 밝혔습니다. 당신의 이름으로 즉, 베드로와 같은 신앙 고백을 한 자들이 모이는 곳에 반드시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고백을 한 자가 혼자만 있으면 어떻게 됩니까? 주님이 함께 하여 먼발치서 바라보고만 있지 승천 직전에 모여 섰던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간절히 원하여서 당부했던 그런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님

교회를 세워서 소명을 맡긴 것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을 바울이 더 자세히 풀어서 계시한 말씀이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 보내는 편지의 주제가 교회의 본질과 소명이 무엇인지 밝힌 것인데 교회에 관한 내용 중 일부분만 간단히 축약해보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 또 만물을 그(예수)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엡2:17,22,23, 2:20-22, 3:10,11)

쉽게 줄이면 교회는 창세전에 삼위 하나님이 예정하신 제도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이 된 신자들이 그분의 지혜를 분별하고 그리스도를 본받아서 서로 자라가며 모든 만물을 예수님의 발아래에 복종시키는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모든 불신자는 물론 심지어 만물(萬物)까지도 그리스도의 영원하고도 거룩한 통치를 받게 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고 합니다.

교회가 세상에서 예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아 불려 나온 자들의 모임이라고 정의했는데 바로 이런 소명을 실천하라고 불려 나왔다는 뜻입니다. 또 구원 받았다는 것은 타락 이전으로 돌아가는 것인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당시의 그분의 경륜에 참여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 경륜은 바로 하나님 대신에 이 땅을 거룩하게 다스리는 청지기 직분(창1:28)을 성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원죄 아래 태어나는 자연인들은 이 땅을 자기들 탐욕과 분쟁과 죄악으로 파괴시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이 땅을 아름답게 회복하는 일이 신자와 그들 모임인 교회에 맡겨졌다고 바울은 선포한 셈입니다. 그 일을 잘하기 위해선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 순종해야 하고 또 순종하려면 그리스도를 잘 알아야 합니다. 바울 사도가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이렇게 기도했던 까닭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3:17-19)

그리스도를 아는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도 가르쳤습니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엡4:11-13)

참으로 놀라운 진술입니다. 단순히 교회 직분자들에 대한 설명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세운 목적이 우선적으로 신자들로 그리스도를 믿는 것과 아는 일(체험적으로 알아서 삶에서도 그 뜻을 실현하는 것임)을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그리스도 당신께서 각 성도를 교회의 지체로 세워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게 해준다고 합니다. 역으로 말하면 교회(조직체 개별 교회만이 아니라 성도들의 모임까지 포함함)에서 직분자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최소한 봉사의 일이라도 하고 있지 않으면 주님과 관계가 없다는 뜻입니다. 예수님 당신께서 그런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믿어서 알게 하고 또 당신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게 하겠다고 정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란다고 해서 도덕적으로 완벽하게 성결해져야 한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그럴 수 있는 신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성자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에게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던 그 자리에까지 자라는 것입니다. 교회를 세우신 목적대로 머리되시는 그분 뜻에만 전적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한 명의 미혹한 영혼이라도 그분의 발아래 무릎 꿇게 하고 만물을 충만케 하는 일입니다.

요컨대 주님께서 이 땅에서 사역하셨던 그 모습대로 살아가는 데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그분의 분량으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불쌍하고 소외된 자들, 특별히 당시의 유대종교 지도자들에게 정죄 심판 받은 자들처럼 하나님사랑을 알지 못하는 자를 필두로 그 사랑을 외면 거역하는 자들에게 주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섬기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빛도 없이 땅에 떨어져 죽는 한 알의 밀알이 되어서 죽어가는 이를 대신 살려내어야 합니다. 이 땅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통치가 새 생명을 받은 한 명을 통해 또 다른 한 명으로 누룩처럼 번져 나가게 하여서 이 땅도 회복시키고 만물까지 그분의 충만으로 충만케 해야 합니다.

교회만이 세상의 소망

신자가 그 일을 감당하지 않으면 세상은 타락과 죽음으로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가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교회가 없어지면 아무 소망도 없어지는 것입니다.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우리가 우리를 볼 때는 너무 초라하고 연약해보이지만 하나님은 당신의 독생자와 바꿀 만큼 신자를 고귀하고 소중하게 여깁니다. 주님이 걸어갔던 길을 동일하게 걸어가도록 세상에서 신자를 이미 따로 불러내어서 구원 은혜를 주시고 교회로 모이게 하셨지 않습니까?

주님의 피 값으로 사신 교회입니다. 지금 같이 무기력하고 복음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현실의 복만 빌고 있으며 그러기 미안하니까 조금 착하게 살게 하는 정도로는 결코 교회라는 이름조차 붙일 수 없습니다. 현재의 대부분의 교회들이 이런 성경적 소명을 준행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고 심지어 그마저 모르고 있을지언정 성경이 가르치고 예수님이 명령하신 교회는 반드시 그래야만 합니다.

그 일을 하기 위해서 지금이라도 성도들이 함께 모여 정말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는 참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나아가 십자가 복음의 은혜와 권능이 성도들 사이에만 아니라 세상으로 땅 끝까지 충만하게 역사하도록 더더욱 교회로 모여야 합니다. 세상에서 따로 불려 나왔으니까 세상 사람은 물론 다른 종교인들과도 전혀 다른 인생의 목적을 갖고 전혀 다른 삶의 방식으로 살고 있어야 하고 그런 자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드려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결코 도덕적 수양이 아닙니다. 도덕은 다른 종교에서도 가르치며 초등학교 교과서만 제대로 지켜도 선해질 수 있습니다. 신앙을 도덕적 성숙으로 보니까 성경에서 그런 가르침을 혼자서 찾아서 그대로 따를 수 있다고 쉽게 생각하고 주일에 꼭 교회에 출석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오히려 성경은 한 명의 예외 없이 모든 사람이 성령의 간섭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고 그분의 거룩한 통치를 받지 않고는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의 한 가르침도 제대로 행할 수 없는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죽어 마땅한 죄인이라고 선언합니다.

마음의 평안을 유지하는 것도 심리적 요법 등 세상에 얼마든지 효과적이 방안이 많습니다. 기도한다고 현실 문제와 고난이 쉽게 해결되지 않습니다. 주님은 이스라엘을 로마에서 해방시키려고 이 땅에 오지 않았습니다. 죄인을 구원하러 오셨기에 아무 말도 없이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현실적인 여러 문제는 실력을 쌓고 돈을 벌면 훨씬 더 빨리 해결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성경 지식을 쌓는 것도 이제 인터넷으로도 충분히 가능해졌습니다.

신자는 세상을 거룩하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본인부터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그리스도를 조금씩이라도 닮아가며 무엇보다 십자가 복음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먼저 찾아가서 주님의 사랑으로 섬겨야 합니다. 그 일은 결코 혼자서 집에서 할 수 없습니다. 함께 모여서 같이 예배 기도 성경공부 교제 봉사 전도 선교해야만 합니다.

주님은 성도 각자에게 고유의 다른 재능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각기 다른 재능과 은사들을 함께 모아야 함께 자라가며 복음의 열매도 맺을 수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함께 모이는 곳에만 성령님의 충만한 역사가 임합니다.

마지막으로 간단히 언급하고 싶은 사항은 주일에 아무 일하지 않고 쉬어야 한다고 여기는 것은 안식일과 주일이 무엇이 다른지 전혀 모르는 탓입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본 성경문답 사이트의 이전 글 “안식일의 참된 의미는 무엇인가요?”에서 이미 밝혀 놓았기에 생략합니다.

반드시 교회로 모여야 하는 현실적인 이유도 여럿 있지만 꼭 하나만 들자면 혼자 있어선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나태에 빠지는 것이 인간이라는, 예수 믿은 후에도 그런 본성이 생생히 살아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019/8/19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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