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장로교의 날 성찬식
성찬식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글의 내용과 무관) ©기독일보 DB

오늘날 성찬 시 ‘떡과 잔’으로 사용되는 물질에 대한 오해가 많은 것 같다. 성찬에 관한 신학자들의 글에도 그런 경향이 묻어난다. 최근 사이버공간에 인터넷 성찬을 반대하는 글을 기고한 어느 신학자는 “성찬 요소(재료)가 남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느냐”라고 하면서 “남은 재료 처리 문제”가 그에게 “두려움”이 되고 그러한 까닭으로 인터넷 성찬을 반대한다고 했다.

나는 오랫동안 성찬을 집례해 온 목사이다. 성찬을 위한 ‘재료의 양’의 문제에 대하여 질의를 받은 경험이 많다. 어느 목사는 “이 포도주는 이스라엘 현지에서 공수된 재료이다”라고 성찬 재료의 차별성을 유난히 강조하기도 한다. 세례에 사용되는 물도 이스라엘 현지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말하고, 실제로 판매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찬 재료의 원산지 이론”이다. 그리고 성찬 시 포도주를 사용해야 옳은가 아니면 포도 주스나 즙을 사용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도 한다. 성찬상(The Table)에 하얀 천을 덮어야 하는가 라고 묻기도 한다. 모두 “성찬 물질론” 범주에 포함되는 주제들이다.

성찬예배에 사용되는 ‘떡과 잔’을 위한 재료들과 관련하여, 초대교회는 성도 개인이 헌신의 의미로 드린 것도 있고 교회 공동체가 준비한 것으로 성찬을 거행하기도 했다. 현대 교회에서는 대부분 교회가 준비하여 사용한다. 개척 교회의 경우는 목사가 준비할 수도 있고, 규모 있는 교회는 예배 위원회에서 준비하기도 한다.

오늘날 성찬예배를 앞두고 재료를 준비하고 사용하고 처리하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자. 성찬식을 앞두고 담당자가 미리 지역 마켓에서 포도 쥬스 한 병과 빵 한 봉지를 구입한다고 치자. 그것을 성찬예배 당일 아침에 수찬 교인의 숫자 만큼 떡(빵)을 자르거나 정렬하여 떡을 담는 성찬기에 담는다. 그리고 포도 쥬스를 성찬을 위한 잔에다 일정량 씩 부어서 잔을 담는 성찬기에 정렬한다. 물론 위생과 편의성 때문에 일회용으로 사용할 수도 있다. 그런 뒤에 예배당의 성찬상에 배설한다.

성찬이 성찬 재료의 성별을 위한 기도로 시작되면, 우리 주께서 성찬을 제정하실 때 하셨던, 제정 말씀을 선포하고 떡을 자르고(breaking the bread), 잔을 부으면서(pouring the cup), 주께서 잡히시기 전 날밤에 제정하셨던 첫 번째 성찬을 기억하며, 그리고 종말론적인 잔치를 기대하면서, 재현과 소망으로 집례한다. 그리고 떡을 수찬 교인들에게 나누는 배병 행위(distributing the bread)와 잔을 회중에게 나누는 배잔 행위(distributing the cup)가 집례자의 관련 말씀 낭독과 반주자의 음악에 맞춰서 진행된다. 그리고 성찬 예식을 마친 후에, 수찬 교인 숫자보다 여유 있게 준비했던 떡과 잔이 성찬상에 일정량 남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여기서 나의 ‘성찬 물질론’이 시작된다.

첫 번째 재료는 성찬상에 차려진 떡과 잔이 있다. 두 번째는 성찬상에 사용하고 포도 쥬스가 조금 남았고 떡(빵)도 어느 정도 남아서 교회의 주방 냉장고에 넣어둔 물질도 있을 수 있다. 마지막 셋째는, 그 동일한 재료를 구입한 마켓의 상품 진열대 및 공장이나 창고에는 수 없는 포도즙과 빵이 뜯지도 않은 제품 상태 및 재고품으로 비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여기에 세 종류의 ‘동일한 물질’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성찬상에 차려진 물질, 교회 냉장고에 남아 있는 물질 일부, 그리고 마켓에 뜯지 않은 동일한 물질(제품)이다. 이 세 가지 재료가 무슨 차이가 있는가?

유일한 차이점은 오직 성찬을 위해서 성별 기도(Prayer for Consecration; “the Great Thanksgiving Prayer”)한 재료만 거룩하게 구별되어 성찬을 위한 주의 몸과 피를 상징(기념; 영적 임재)하는 물질로 사용될 뿐이다. 교회의 냉장고에 남은 물질과 마켙의 진열대에 있는 제품은 모두 동일한 “일반 물질”일 뿐이다. 역으로 말하면, 성찬 물질을 위한 성별 기도가 성찬 물질론을 결정하는 유일한 예배학적 근거가 되는 셈이다. 이것은 초대교회 이래 현대 교회까지 그 형태와 기도의 시점에 차이가 있었을지언정 동일한 전통 안에 있어왔다.

그런데, 문제는 성찬 예배를 마친 후에 남은 재료에 대한 의식과 태도에서 발생한다. 성찬에 사용된 남은 물질은 성찬을 위한 성별 기도를 했던 물질들이다. 그런데 성찬 후에는 그 효과가 유효한가 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성찬의 남은 물질에 대한 신학적 이해와 지식이 결핍하여 매우 기이한 습관이 교회 안에 존재해 왔다. 남은 성찬 물질에 대한 신학적 지식이 없어서 막연한 두려움과 꺼림칙함 그리고 미신적 행위가 있었던 것이다. 성찬 후, 남은 재료를 어떻게 할 바를 몰라서, 먹고 마시자니 그렇고 해서, 땅에 묻어버리고 부어버린 기억들이 교회 안에 있을 것이다. 마치 카톨릭의 화체설을 무의식 중에 인정하는 듯, “주의 몸과 피”를 다시 땅에 묻어 장사 지내는 듯한 행위를 한 셈이다.

물론 카톨릭의 성례관은 화체설이기에 미사 때마다 희생제사를 통해 물질이 예수님의 실제 몸이 되어 다시 죽는다는 것을 의미하기에, 그들에게서 남은 물질을 버리는 것은 신성 모독의 죄를 범하는 것이 된다. 그래서 신부들이 남은 포도주를 다 마셔 버리는 습관 때문에, 알코올 중독자가 더러 있다는 얘기가 있음을 안다.

종교개혁자의 후예인 개신교는 건강한 성찬 물질론을 확립하여 성찬 물질에 대한 올바른 의식과 태도가 요청된다. 결론을 말하자면, 성찬 후에 성찬상에 남아 있는 물질은 성찬에 사용하지 않은 냉장고에 남아 있는 물질과 그것을 구입했던 마켓의 상품 진열대에 비치된 제품과 동일한 물질이라는 점이다. 그러므로 성찬 후에 성찬상에 남아 있는 성찬 물질을 처리함에서 일체의 두려움과 미신적 주저함으로부터 자유해야 한다. 일반 물질이기 때문에, 그것을 먹을 수도 있고 또한 버릴 수도 있다. 다만 회중에게 목사가 성찬 물질론을 바르게 충분히 교육한 후에 그렇게 시행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 교회 안에서 중직자들까지 이런 부분에 대한 이해가 전무하다. 필자의 경험인데, 성찬 후에 땅에 묻는 행위들에 대하여 문제점을 지적하고 바른 성찬 물질론을 가르친 후, 어느 성찬 주일을 마친 주일 점심식사 시간이었다. 담당 직분자가 남은 성찬 물질을 성찬기에 담긴 그대로 주일 점심식사 시간에 식후에 나눠먹는 일이 있었다. 물론 아무 문제가 되지않는다. 그러나 아직 회중 전체가 올바른 성찬 물질론에 대한 교육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지한 교인들이 혹 오해할 수 있고 덕이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성찬기를 점심식사 테이블로 바로 가져오지 말고 다른 용기에 담아와서 나눠 먹으라고 했다. 그 다음 달 성찬 주일부터 그렇게 시행되었다.

이러한 성찬 물질론은 새 언약 백성인 신약교회의 ‘거룩’에 대한 신학적 지식 및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예를 들면, 모세가 하나님의 현현하심 가운데 가시떨기에서 소명을 받을 장면을 생각해보라. 모세가 서 있는 그 땅은 거룩한 땅이기에 그의 신을 벗을 것을 요청 받는다. 즉 모세가 호렙산 가시떨기 앞에 임재해 있는 그 땅은 거룩한 땅, 곧 일종의 “성전”의 개념이 되었다. 그런데 지금도 우리가 호렙산 가시 떨기의 장소(정확한 장소를 찾는다고 할지라도)를 “거룩한 장소”(성전)로 여기지 않는다. 신약 교회는 어떠한 장소나 물질을 신성시 하지 않는다. 다만 성별하여 세팅된, 시간, 장소, 물질 등이 그 목적과 용도 때문에 성별되어 사용된다. 그 목적과 시간이 지나면 “일반화” 또는 “세속화”된 존재가 된다. 물론 이 논의는 공예배와 일상적 삶의 예배(거룩한 삶) 사이의 구분 및 동일화의 이분법적-동질론적 예배론과는 다른 범주에 있다.

이런 의미에서 “성지 순례”라는 말도 어폐가 있다. 정직하게 ‘성경 지리 탐방’ 또는 ‘이스라엘 관광’으로 표현하면 안되는가! 성지순례라는 의미는 오늘날 이슬람교도들이 행하는 방식이어야 사용할 수 있는 용어이다. 예배당을 ‘성전’으로 부르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성전 건축”이 아니라 ‘예배당 건축’ 또는 ‘교회당 건축’이 맞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신약 성도들에게 ‘성전’은 문학적 표현을 될 수 있을지언정, 신학적 용어로서는 기능을 이미 다했다. 인격(몸) 성전의 계시 역사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다시 성찬 물질론으로 돌아가자. 성찬 후에 성찬상에서 남은 물질은 일반화된 물질이다. 그 목적과 기능을 다하였고, 성찬을 위하여 한시적으로 거룩하게 성별되었던 것이다. 성찬 후에는 그냥 음식이고 드링크일 뿐이다. 아까운 음식을 땅에 묻거나 부어버리지 말고 감사함으로 일반음식으로 먹을 수 있어야 한다. 성찬 물질을 통해 삼위 하나님을 예배한 직후에, 남은 성찬 물질을 어리석게 “숭배”하거나 그것에 대한 미신적 의식과 태도를 이제는 버려야 한다.

이기업 목사(고신대학교, 고려신학대학원, 보스턴대학교(예배학), 고든콘웰신학교(구약신학), 트리니티에반젤리컬신학교(구약신학) 수학)

*이 글은 신학복음 저널 ‘리포르만다’(http://www.reformanda.co.kr)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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