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하게 잘 지내라는 그 한마디 전하고 싶습니다
서로를 끌어안는 킴벌리(이식인, 왼쪽) 씨와 기증인 김유나 양의 어머니 이선경 씨 © 장기기증운동본부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20일 오전 11시 한국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국내에서 장기기증 운동이 시작된 지 30년을 맞아 장기기증 활성화를 위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서신 교류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제로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국내에서 최초로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과 미국인 이식인 만남 성사

(재)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이번 기자회견을 위해 미국에서 특별한 손님을 초청했다. 지난 2016년 1월, 미국에서 유학 중 장기기증을 실천한 故 김유나 양(당시 18세)에게 신장과 췌장을 기증한 미국인 킴벌리 앰버 씨(23세, 여)다. 당시 유나 양은 등교하던 중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뇌사 상태에 빠졌고, 장기를 기증해 미국인 6명의 생명을 살렸다.

유나 양의 4주기를 맞아 가족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자 한국을 방문한 킴벌리 씨는 2살 때부터 소아 당뇨로 오랜 시간 투병 생활을 해왔다. 18세 때는 당뇨 합병증으로 신장이 모두 망가져 혈액투석기에 의지해 하루하루를 연명해 왔다. 이틀에 한 번 9시간씩 혈액투석 치료를 하며 힘겨운 시간을 보낸 지 8개월 만에 기적적으로 유나 양의 신장과 췌장을 이식받았다. 그리고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지난해 11월 결혼에도 골인하며 행복한 가정을 꾸렸다. 킴벌리 씨는 기증인 유가족과의 만남에 앞서 “유나는 자신에게 신장과 췌장만을 준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인생을 선물해 준 것”라는 소감을 밝혔다.

“유나의 생명을 이어받은 킴벌리를 만나게 되다니 정말 기쁩니다”

유나 양이 미국에서 장기기증을 한 뒤, 부모 김제박·이선경 씨는 이식인들로부터 감사 편지를 받았다. 편지에는 ‘유나 양의 생명나눔을 통해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다’며 ‘고귀한 결정을 내려준 가족들께 감사드리며 그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 이선경 씨는 이식인들의 편지를 읽고 “심장을 이식받은 마리아 씨는 1km를 혼자 걸을 수 있게 되었고, 신장을 이식받은 킴벌리 씨는 늘 9시간 씩 하던 혈액투석을 하지 않아도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딸의 생명을 이어받은 이식인들이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소식이 큰 위안이 됐다”고 전했다.

20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장에서 김유나 양의 부모 김제박·이선경 씨는 이식인 킴벌리 씨와 그의 어머니 로레나 씨와 첫 만남을 가졌다. 킴벌리 씨와 이선경 씨는 첫 만남에서 서로를 꼭 끌어안으며 눈물을 흘렸다. 딸의 생명을 이어받아 건강히 살고 있는 이식인에게 어머니 이선경 씨는 “장기이식을 받은 것에 대해 더 이상 미안한 마음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저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아주는 것이 바라는 것의 전부”라는 뜻을 전했다.

그를 향해 킴벌리 씨는 “장기기증이라는 놀라운 결정을 해주신 가족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며 “유나는 나의 마음속에 언제나 살아 있다”는 말을 전했다. 뿐만 아니라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해 전달했다. 이선경 씨는 킴벌리 씨를 위해 직접 만든 퀼트 가방을 선물했고, 킴벌리 씨는 유나 양의 모습을 본 뜬 천사 모양의 스노우볼을 가족들에게 선물했다. 킴벌리 씨의 어머니 로레나 씨는 선물을 전하며 “생명을 나눠준 유나는 마치 우리 가족에게 천사와 같은 존재”라고 말했다.

국내 장기기증운동 30년을 맞아 2016년 1월 미국에서 유학 중 장기기증을 실천한 故 김유나 양
© 장기기증운동본부

“딸아이의 심장 소리를 다시 들어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입니다.”

그러나 국내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은 그럴 수 없다. 국내에서는 장기등이식에관한법률 제31조(비밀의유지)에 의해 이식인과의 교류가 금지되어 있어 소식을 알 길이 없기 때문이다. 이에 이런 법을 개정해달라는 기자회견이 지난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미국에서 장기기증을 실천한 한국인 故 김유나 양의 부모는 1만km가 떨어진 곳에 사는 이식인을 만날 수 있지만, 국내에서 장기기증을 실천한 5,600여 명의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은 같은 나라 아래 살고 있는 이식인이 건강하게 지내는지조차 알 수 없다. 뇌사 장기기증인 유가족들이 모여 있는 국내 한 커뮤니티에는 지난 1월 1일 글 하나가 올라왔다.

“장기기증을 하고 떠난 딸이 너무 그립다”는 글의 말미에는 “죽기 전 법이 개정되어 딸아이의 심장을 이식받은 이를 꼭 한 번 만나고 싶다. 딸아이의 심장 소리를 다시 한 번 들어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는 간절한 바람이 쓰여 있었다.

이날 기자회견 참석자들은 국내에서도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서신 교류를 허용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날 회견문을 낭독한 도너패밀리 부회장 장부순 씨는 “이 순간 이식인을 직접 마주한 유나 양의 부모님이 가장 부럽다”며 “직접 만날 수는 없어도 편지를 통해서라도 이식인에게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라는 말 한 마디 전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신·췌장 이식인 모임의 회장인 송범식 씨 역시 “이식인들도 기증인 유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라며 “기증인 유가족과의 교류는 이식인들에게 더 건강히 살아갈 수 있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라는 의견을 전했다.

매뉴얼대로 하는 서신 교류는 허용해야

기자회견에서 사례 발표를 하는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동엽 사무처장은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이 직접적으로 서신 교류를 하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본부와 같은 기관의 중재 하에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서로에게 부담이 되지 않는 수준에서 소식만 전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경우에도 장기기증 관련 기관에서 서신을 작성하는 매뉴얼을 제공한다. 기증인 유가족과 이식인들은 기관이 제공하는 매뉴얼에 따라 서신을 작성하고, 해당 기관의 중재 하에 서신을 교류하여 혹여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한다.

장기기증 활성화 위한 예우 방안 필요

뇌사 장기기증인은 2016년 573명에서 2017년 515명, 2018년에는 449명으로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2019년은 450명으로 여전히 500명 선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뇌사 장기기증이 점차 줄어가고 있는 가운데 이식을 기다리는 환자는 2016년 24,600여명에서 2019년 32,000여명으로 늘어 매일 5.2명의 환자들이 사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장기기증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실제 기증인들의 유가족들이 장기기증을 추천하고, 홍보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뇌사 장기기증인의 유가족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예우 방안을 마련해 그들이 직접 “장기기증은 정말 후회 없는 선택”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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