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우리는 삶 속에서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눈, 귀, 코, 혀, 피부 등의 다양한 감각 기관을 통해 외부 환경과 상호작용합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에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또는 “눈이 보배”라는 말이 전해져 내려옵니다.이러한 표현은 외부 세계를 인식하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시각이 지니는 중요성을 보여 주며, 눈의 건강과 시각 기능의 소중함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의 감각 기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감각은 우리가 세상을 경험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하지만 사람은 감각을 넘어 생각하고 사랑하며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입니다. 감각을 넘어서는 인간 이해는 시각장애를 바라보는 데에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한 사람의 내면과 삶의 전체 모습을 충분히 바라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때로는 한 사람의 마음과 삶을 깊이 이해하기보다, 눈에 보이는 모습이나 신체적 조건, 가진 능력만으로 그 사람을 판단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시선으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고유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온전히 발견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시선은 책의 가치를 표지만 보고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을 외적인 조건만으로 판단하는 시선은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기준은 새롭게 세워질 필요가 있습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존엄을 먼저 발견해야 합니다. 그 기준은 인간의 참된 가치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살펴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이를 위해 우리는 능력이나 조건만으로 사람을 평가하지 않아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바라보시는 시선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경은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 설명합니다. 인간의 존엄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자신의 형상대로 지으셨다는 사실에서 비롯됩니다.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피조물을 보시고 “좋았더라”(창세기 1:4, 10, 12, 18, 21, 25)고 거듭 확인하시는 모습을 통해 창조의 선함을 보여 줍니다. 마침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창세기 1:31)고 선언하시면서 여섯째 날 이야기는 절정에 이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자신의 뜻과 지혜에 따라(요한계시록 4:11, 시편 104:24) 선하게 창조하셨음을 드러내셨습니다. 이 선언은 창조 세계와 그 안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 아래,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따라 질서 있게 지어졌으며, 그 안에 하나님의 영원한 능력과 지혜와 선하심(웨스트민스터 신앙 고백 제4장 제1항)이 드러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창조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인간을 외적인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도록 이끕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제한이나 어려움은 삶의 한 부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사람의 전체 모습을 규정하지는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존엄과 가치를 감소시키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존엄은 신체적 차이나 능력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인간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장애를 바라보는 관점에도 중요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이 관점에서 볼 때 시각장애는 한 사람 전체를 규정하지 않습니다. 시각장애는 인간이 살아가며 경험할 수 있는 여러 조건 중 하나입니다. 따라서 시각장애인을 단순히 도움을 받아야 하는 대상으로만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시각장애인 역시 하나님께서 주신 존엄을 지닌 사람입니다. 우리와 함께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이웃입니다. 각자의 역할을 지닌 공동체의 구성원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허락하셨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 피아니스트 김예지, 클라리네티스트 이상재, 가수 이용복,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 등은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아름답게 펼쳐 왔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시각장애가 한 사람의 가능성과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 없음을 보여 줍니다. 진정한 배려는 누군가를 대신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이 가진 가능성과 역할을 존중하며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는 데 있습니다. 이러한 태도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과 관계를 책임지는 청지기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상을 하나님의 선한 창조 세계로 바라보며,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모든 자리에서 이웃을 사랑과 책임으로 섬기는 청지기로서의 사명을 감당해야 합니다. 이러한 삶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라보시는 시선을 배우는 데서 시작됩니다.

허용현 박사(시각장애인)
사회적협동조합 청명자립생활센터 이사장
나사렛대학교 점자문헌정보학과 제1회 졸업
경영학박사
대한예수교장로회 애능중앙교회 출석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