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단기선교를 마치고 귀국하였습니다. 네팔은 히말라야산맥(Himalayas)이 동서로 쭉 펼쳐졌고, 북쪽으로는 중국 대륙에 붙어 있고, 남쪽으로는 인도 국가와 인접한 내륙 국가였습니다. 히말라야산맥에는 세계적인 높은 산 해발 8,000m 이상의 산들이 8개 정도가 있어 만년 설산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에베레스트산은 8,848m로 세계 최대의 높은 산입니다.
필자는 수도 카트만두(Kathmandu)와 치트완(Chitwan)에 머물면서 단기선교 하는 데 집중하였습니다. 치트완에서 국내선 프로펠러 비행기로 20여 분간 비행할 때, 만년 설산 히말라야산맥을 보며 이런 시상(詩想)을 기내에서 메모해 보았습니다.
주여 어디에 계신가요!
저어 파아란 창공
흰구름 뭉게뭉게
잔잔하게 떠있네
하얀 백설탕처럼
쭈욱 펼쳐진 봉우리
만년설 높다하네
첩첩산중 안개바다
구름으로 덮어버린
물결없는 바다같네
프로펠러 내려올 때
옹기종기 모여사는
인간세상 들썩이네
오 주여
어디에 계시옵니까
대자연, 인간세계...
주님 이 땅 치유하소서.
네팔 단기선교 현장 스토리
◇네팔신학교 강의=네팔 신학생 가운데 목회자들도 있었고, 장래 목회자로 헌신할 하나님의 부르심(Calling of God)을 받은 자들이었기에 필자는 ‘영성목회학’ 7개 강의안을 준비하여 강의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저는 강의에 집중하였고, 배우는 학생들은 단 한 명도 졸지 않고 청강에 집중하였습니다. 이는 귀족 출신 브라우만족 네팔인이 한국에서 신학을 배웠고 목사 안수까지 받았기에 통역하는데 탁월하였기 때문에, 모든 학생이 강의에 크게 만족했고 공감하였습니다.
◇소망고아원 설교 사역=신학교 강의를 마치고 별도로 주님의 인도함을 받은 곳이 고아원이었습니다. 정식 명칭은 ‘소망의 집(House of Hope)’입니다. 이곳에는 아빠 또는 엄마 없는 고아 140여 명의 공동체 삶의 현장이었습니다.
어느 선교사 부부가 자신의 자녀들은 생육을 포기하고 네팔에 있는 고아들의 아빠와 엄마가 되어준 것입니다. 죠지 뮬러처럼 고아의 아버지였습니다. 약 2만 5천 평 이상 널따란 잔디밭에는 축구장, 농구장, 배구장이 있었고, 학교 빌딩은 3층으로 교실이었고, 영유아 기숙사와 남녀 학생들의 기숙사가 따로따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육축도 기르고, 버팔로 들소까지 기르고 있었습니다.
필자는 설교 사역에 집중하였습니다. 호주에서 찾아온 소방공무원(31세) 청년은 1개월 휴가차 이곳에서 영어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습니다. 첫날에 우리를 환영하는 전교생들의 무대는 감동적이었습니다. 전교생들에게는 휴대폰 휴대(절대 빈곤)가 금지되어 영성 훈련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습니다.
새벽 4시 30분이면 전교생들이 기상하여 새벽기도회에 참석합니다. 사도신경 암송, 성경 암송, 말씀 QT, 합심 기도, 마지막으로 주기도문을 암송했는데 새벽기도회가 매우 뜨겁습니다. 이 고아들의 매일의 식비는 한국의 후원자들 손길로 진행되고 있답니다. 필자는 ‘선교사 부부와 소망의 집에 대한 소설을 써야 되지 않겠는가!’라는 커다란 감동을 받았습니다.
◇네팔의 종교 분포=네팔의 종교현상을 굳이 논하고자 함이 아닙니다. 그러나 네팔에 체류하는 동안에는 비교종교 차원으로 논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별 4개 호텔 로비엔 석가상을 설치하였고, 조깅하다가 호텔 옆 집집마다 문간에 부적 2~3개씩 붙여놓았으며, 공항에도 역시 석가상이 놓여 있었습니다.
그만큼 종교성이 강한 나라임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네팔의 신은 3억 5천 개로 범신론 사상이 강합니다. 공식적으로 힌두교 80% 이상, 불교 10% 이상, 기독교는 4% 수준이랍니다. 석가모니(Sakyamuni)는 아버지 석가족의 우두머리 정반왕(淨飯王)과 어머니 마야(Maya) 사이에 태어났는데, 그곳이 네팔과 인도 나라의 인접된 지점인 룸비니(Lumbini)라 합니다. 한국, 일본, 중국에서는 석탄일을 음력으로 4월 8일이라 하며, 실제적으로 석가모니는 기원전(BC) 6~5세기에 실존했다는 인물입니다.
필자가 귀국하기 전 전혀 마음에 끌리지는 아니하였으나, 네팔인들이 죽은 시체를 재래식 방식으로 화장(火葬)하는 파쉬파티나스(Pashupatinath) 힌두사원을 잠시 들렸을 때, 머리가 얼마나 아팠는지 괴로웠습니다.
결론입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하신 말씀은 영원한 복(福)된 말씀입니다.
청송(靑松) 백근기 목사(㈔기독교문학가협회 상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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