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입법공백 상태에 놓여있던 5년
헌법재판소가 2019년 4월 11일,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를 선언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은 해당 법률 또는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만, 즉시 무효화 하면 법적 공백이 생겨 더 큰 혼란이 생기기 때문에 일정 기간 입법자에게 시한을 주고 보완하도록 하는 결정이다. 헌법재판소는 2020년 12월 31일까지 개정안을 만들라고 결정을 했지만 정부와 국회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어 2020년 12월 31일 이후 입법 공백 상태다. 20대, 21대, 22대 3대 국회에 걸쳐 개정안이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 21대 때에 정부안을 포함한 6개 안이 병합심리 될 예정이었지만 모든 법안이 국회 회기 종료와 함께 폐기 되어버렸다.헌재의 결정은 낙태 전면 허용이 아니었다. 헌재는 “태아의 생명 보호는 정당한 국가의 책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메시지를 외면했고, 입법은 방치되었다. 그 결과 우리는 세계에서도 드물게 사실상 무규제 낙태 국가가 되었다. 최근 36주 된 아이를 제왕절개수술을 한 후 살아있는 아이를 죽이는 일까지 벌어졌다. 무고한 생명이 법의 보호에서 사라졌고, 생명경시 풍조가 만연하고 있다.
WHO에서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전 세계 195개 나라 중에서 2/3인 131개국(67%)은 낙태를 전면 금지하고 있다. 낙태를 허용한 나라 중에서도 전면 낙태를 허용한 나라는 거의 없다. 대부분이 낙태 허용 주수를 정한 ‘부분 낙태’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들 국가 중에서도 9개 나라만 13주 이상의 낙태를 허용하고, 53개국은 12주 이하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전면 낙태는 안 되고 낙태를 부분적으로 허용하는 법을 만들라는 결정이다.
지난 6년간 낙태죄 헌법불합치 판결의 가장 핵심인 형법 개정은 손도 대지 않고 있었다. 대신 우회 입법으로 무제한 낙태를 허용하려는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의 입장을 담은 모자 보건법 개정안만 발의됐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매우 위험하고 급진적인 내용들이다. 만삭까지 낙태를 허용하고, 먹는 피임약을 허용하며, 의사의 전문가적 양심과 종교적 신념에 따른 낙태를 거부하지 못하게 했다. 의사를 단순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로 취급했다. 상담·숙려 제도를 약화 또는 폐지하여 태아 생명을 살릴 수 있는 최소 장치를 없애고. 생명을 죽이는 낙태 수술에 건강보험을 지원하자는 내용까지 담고 있다. 이 법안들이 만들어지게 되면 낙태의 합법적 상업화를 열어주게 되어, 태아는 보호받지 못하고 여성마저 더 위험에 빠트리게 된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식한 대한의사협회와 산부인과 의사회, 여러 시민단체와 여성단체를 비롯한 종교계의 강력한 반대가 일어났다.
태아 생명 보호의 최후 안전장치를 다시 세운 형법 개정안
이런 흐름 속에서 2025년 11월 7일, 조배숙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14037호·14038호)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임신 10주 이상 낙태에 대해 처벌 조항을 두어 무분별한 낙태를 막고 있다. 낙태 강요죄를 신설하여 낙태를 강요한 자에게 5년 이하 징역에 처하고, 낙태를 유인·권유 행위에 대한 처벌 조항도 신설했다. 이번 개정안은 그동안 눈치만 보며 책임을 미루어왔던 형법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생명을 단순히 ‘여성 개인의 선택’으로 축소하지 않겠다는 분명한 메시지와 함께 태아 생명 보호의 최후 안전장치를 다시 세운 것이다.
생명의 가치와 의미를 정한 실제적 모자보건법 개정안
그동안 모자보건법은 모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낙태를 허용하는 피난법으로 악용되어 왔다. 모자보건법 14조에 따르면 ①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우생학적 또는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 ② 본인이나 배우자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③ 강간 또는 준강간에 의하여 임신된 경우 ⓸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근친상간에 의해 임신 된 경우 ⑤ 임신의 지속이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거나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에 예외적으로 낙태를 허용해 왔다. 하지만 의학적으로 심각한 생명의 위협이 되는 경우인 ⑤항을 제외한 다른 조항은 의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맞지 않는 조항이었다.
이번 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실제적인 모자보건법의 취지를 잘 살리고 있다. 태아를 법적 주체로 재정의하고, 생명 존중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제도적 장치를 통해 임신·출산에 대한 국가책임을 강화하고 있다. ① 임신·출산 종합 상담기관 신설 ② 임신 유지·종결 상담 의무화(임신 지속을 격려하는 방향) ③ 초음파·심박동 확인 및 서면동의 의무화 ④ 낙태 의료기관 ‘지정제’ 도입 ⑤ 의사의 양심적 거부권 보장 등이다. 이 모든 절차는 낙태를 "쉽고 빠른 선택"에서 "생명에 대해 숙고하는 결정"으로 되돌리려는 장치들이다.
태아 생명권의 법적 재정립을 위한 초석
두 법안은 서로의 빈틈을 상호 보완하는 구조다. 형법은 ‘생명을 침해했을 때의 금지·처벌’을 다루고, 모자보건법은 ‘임신·출산·낙태 과정 전체의 제도·절차·사전보호’를 다루고 있다. 둘은 합쳐져서 다음과 같은 결과를 만들어낼 것으로 기대한다. 태아 생명권을 법적으로 재정립하고, 임신·출산 전 과정에서 국가·의료인의 역할을 강화하며, 상업주의와 반인륜적인 낙태 조장 문화·산업에 대한 규제를 정할 것이다. 또한 의사의 양심적 진료권을 보장하여 생명을 지키려는 의사들의 권리를 인정하고, 태아·여성 그리고 의료 현장의 안전장치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는 대한민국이 ‘생명 존중 국가’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재출발이다.
조배숙 의원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그동안 침묵하고 뒤로 물러나 있었던 생명 보호 입법의 복원을 향한 용기있는 첫걸음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국회의 응답이다. 그리고 생명을 지키기 위한 우리 사회의 분명한 선택이다. 바라기는 추가적인 생명존중 법안이 연이어 발의되길 기대한다. 대한민국 국회에서 생명의 희망을 보았다.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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