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보훈부는 4월 30일, 여성의 권익 향상과 민족 해방을 목표로 활동한 항일 여성단체 '근우회'의 창립을 ‘2025년 5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이번 선정은 항일운동과 여성운동이 결합된 근우회의 활동이 독립운동사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조명하기 위한 것이다.
보훈부는 1919년 3·1운동을 기점으로 여성사에도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설명했다. 1920년대 초반에는 기독교계 여성운동가들과 여성 교육자들이 중심이 된 여성 계몽운동이 전개되었고, 중반 이후에는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양 진영에서 여성운동이 활기를 띠기 시작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1927년 5월 27일, 전국의 여성운동을 총망라한 조직인 근우회가 창립됐다. 근우회는 국내외에 다수의 지회를 설치하며 전국적 조직망을 갖춘 대표적인 여성운동 단체로 발전했다. 각 지회는 본부와 긴밀히 협력하며 지역 실정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펼쳤고, 이는 여성 권익 증진과 민족 독립운동을 동시에 실현하려는 움직임이었다.
근우회의 활동 범위는 광범위했다. 여성 야학과 강좌 개설, 관북지방 수재민을 위한 구호 모금(1928년), 경상도 가뭄 피해민 지원(1929년) 등 실질적인 구호 활동이 이루어졌다. 1929년 5월에는 기관지 『근우』를 창간해 단체의 이념과 활동을 널리 알렸다.
같은 해 광주학생운동이 일어나자, 근우회는 서울 여학교들의 항일 시위를 주도·지원하며 항일운동의 전국적 확산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로써 근우회는 단순한 여성단체의 범주를 넘어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항일운동 세력으로 자리 잡게 됐다.
근우회의 행동강령은 여성 교육 기회의 확대, 성차별 철폐, 봉건적 관습과 미신의 타파,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보장을 포함했다. 동시에 ‘여성 문제는 곧 민족 문제이며, 항일여성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일제 식민 지배에 정면으로 맞서는 독립운동을 실천했다.
국가보훈부는 “근우회는 여성 문제를 민족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그 불합리한 구조를 타파하려 한 결단의 상징”이라며 “이는 당시 한국 여성들에게 있어 유례없는 새로운 의지를 보여준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보훈부는 이번 선정을 통해 근우회의 독립운동적 성격과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한 투쟁이 오늘날에도 깊은 울림을 주는 역사로 기억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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