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기성 박사
양기성 박사
I. 신학과 주변 철학의 역사

신학이란 본래 신(하나님)에 대한 학문이다. 신에 대한 논리, 또는 이론적 학문이 신학이다. 신학을 영어로 Theology라 하는데, 이는 Theos(θεος /신) + Logos(λογος /Logos/말씀)의 합성어다. 하나님 말씀의 학문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 말씀의 학문이 신학인 것이다.

신학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어떤 격체를 가지신 분인가, 그분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를 연구하고 이론으로 정리하여 학설로 만들고, 이를 발표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은 창조자시요, 인간을 사랑하시는 분이고, 인간의 죄를 용서하기 위해 그리스도를 이땅에 보내시고, 누구든지 그의 이름을 부르고 믿으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학문이다.

1. 신학은 어거스틴에 의해 체계화되었다

초기 교부들에 의해 조직, 체계화한 신학을 세계화 해 놓은 인물은 주후 4세기 성 어거스틴(354-430)이다. 313년 콘스탄틴은 기독교를 공인하고, 380년 데오도시우스 황제가 기독교를 국교화 했는데, 그 즈음 어거스틴을 통해 기독교 신학은 건실하게 자리 잡았다. 이때, 로마가 제국주의로 국토 영역을 넓히게 되자 가는 곳마다 어김없이 교회가 들어서 세계화 되어 갔다. 당시 로마를 중심으로 한 생활이 모두 하나님 말씀인 성경중심이었다. 생각하는 것이나 판단하는 것 모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근거로 하였다.

하지만, 당시 유럽사회는 이와 같이 엄격한 신의 계율 중심이어서 조금만 양심의 가책되는 일을 해도 천당과 지옥이라는 두 관문 앞에서 희망이나 공포심을 느껴야만 했었다. 기독교교회를 통해 너무 경직된 사회구조 및 정신적 생활을 해야만 하는 상황이였다.

2. 중세 스콜라주의 시대 : 계시와 이성

이러한 분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주후 8세기 프랑크왕국의 사를르 대왕은 인간 자의식 활성화를 강조했다. 신학으로 부터의 학문적 풍토를 바꾸기 위해 각 마을 마다 도서관을 설치하고, 신학 외의 상식이나, 인문학과 연관 된 책들을 발간하여 배치했다. 이로부터, 4세기 후,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1224-1274)가 이성을 중심으로 한 철학을 신학에 도입하였다.

이는 신학과 철학의 종합이며, 신학의 계시(Revelation)와 철학의 이성(Reason)의 상호협력관계, 즉, 스콜라주의(Scholasticism)를 세운 것이다. 인간의 이성도 하나님이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것이라 강조하였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경, 그리고 믿음을 맹목적과 같은 신앙에서 좀더 이성을 활용하여 좀 알고 믿어 확실한 신앙을 갖자는 취지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학과 신학의 계시를 철학과 철학의 이성보다 우위에 두었다.

3. 르네상스: 본격적인문학의 시작

15세기 경에 에라스무스는 그 자신이 사제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중심의 학문연구에 몰두했다. 그리스 고전 인문학, 철학, 그리고 로마철학에 관심을 두었다. 그를 인문주의자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15-16세기는 완전히 인문주의시대가 되었다. 그동안 신권의 계율에 의해 활성화 될 수 없었던 인간 자의식의 활성화 및 자율성을 신학의 계시보다 더 높인 시대가 된 것이다.

이때 나타난 사조가 계몽주의(Enlightenment), 자유주의(Liberalism), 합리주의(Rationalism), 경험주의(Empiricism) 같은 것으로 학문적 분위기가 신학에서 철학으로 바뀌었다. 영국의 존 록크(John Locke)의 경험주의나, 토마스 홉스(Thomas Hobbs)의 합리주의, 그리고, 실증주의(Positivism) 철학자들이 나타나 신 보다 인간의 사상이나 문화를 더 강조하는 분위기가 된 것이다.

4. 칸트와 독일철학

특히, 18세기에 이르러서는 자유주의 사조를 타고 각 종 학문적 이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철학에서는 임마누엘 칸트(Immanuel Kant)와 헤겔(Hegel)이 등장하여 신학세계를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칸트는 모든 자연 만물은 이성을 중심으로 자연성에 근거하여 존재한다는 자연주의 사조를 바탕으로 한 철학을 하였다. 그리고, 헤겔은 역사는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정신과 의지에서 진행된다 하여 정반합(변증법/Dialelctics) 논리를 주장하였다. 이때 독일 학문의 세계에서는 신학이 아니라, 철학이 강조되었다.

5. 19세기 자연과학 학문: 진화론 등장

그 뿐만이 아니다. 이러한 인문주의, 이성으로 철학을 하다 보니 19-20세기에는 또 다른 새로운 학문들과 학설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이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 ~ 1882)의 진화론(Theory of Evolution)과, 시그문트 프로이드(Sigmund Freud, 1856-1939)의 정신분석이다. 다윈은 진화론을 주장하여 기독교 창조론을 완전히 뒤집어 놓았다. 이것이 오늘 날에도 영향을 끼쳐 유신진화론을 낳기까지 했다. 그리고, 프로이드의 이론 역시, 19세기 인간이해 연구에 색다른 해석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전에는 성경에서 인간 형상과 그 모습을 보았는데, 프로이드는 정신, 또는 심리를 통해 인간의 본 모습을 이해하려 한 것이다.

6. 19세기 자유주의 신학 태동

자유주의 신학도 인문주의의 영향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유럽, 특히 독일신학자들에 의해 활발히 전게 되었다. 대표적인 학자가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1768-1834)다. 학자들은 그를 자유주의 신학의 아버지라 부르기도 한다. Albrecht Ritschl(1822-1889), 또는 Adolf von Harnack(1851-1930) 같은 신학자들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다.

자유주의 신학 특징은 하나님의 계시와 섭리가 아닌, 주로 인간 사회중심의 윤리나 도덕으로 성경을 보려 한다. 한 예로, 헤겔같은 경우, 아브라함의 모리아산에서의 이삭사건을 살인미수로 보는 것이다. 덴마크의 철학자 Kierkegaard는 이를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요, 신앙으로 본 반면, 헤겔은 이를 윤리도덕, 사회 법차원으로 보다보니 그런 해석의 결과가 나오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는 성경의 정통교리를 뒤 흔들어 정체성을 흩으러 버렸다. 꼭 증명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마치 칼 도마(Ground)가 있고, 생선(성경) 을 도마위에 올려 놓고, (학자들이) 비늘도 벗겨보고, 배도 따고, 뒤집어 아가미도 들여다 보고, 그리고 토막치는 것과 같은 일들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하여 성경이 난도질을 무수히 당하게 되었다. 그 결과, 엄청난 성경정신, 교리에 벗어난 결론들만 나타나게 되었다. 예술이나 문학도 종교, 그리고 경건주의에서 벗어나, 인간 세속적 내용으로 변해 갔다. 신학에 억눌려 있던 인간의 자유나 자율성이 반대급부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자유주의는 기독교신앙이나 신학을 완전히 다른 세계로 인도했다.

7. 20-21세기 철학

20세기 들어 자유주의는 계속 철학에도 영향을 끼쳤다. 프랑스 철학자 미쉘 푸코(Paul-Michel Foucault/1926-1984)는 성의 자유화를 주장하여 전통적 성 개념을 부셔버렸고, 나아가 동성애까지 개인의 자유의지에 맡기기 까지 했다. 알제리계 유대인 재키 데리다(Jacques Derrida/1930-2004)는 “절대적 진리란 없다” 하므로 신학계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나아가 신학적 구도를 해체 그늘 아래 놓이게 했다. 권력가진자들의 횡포를 해체하고자 하는 의미에서 해체주의가 시작되었으나 절대적 진리를 부정하는 입장이어서 성경마저 무시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21세기 들어서 레바논계 이스라엘인 유발 하라리(Yuval Harari/1976-)역시 주로 진화론을 근거로 하여 창조와 인간, 그리고 인간의 미래적 역사를 말하고 있다.

정통주의 신학에서 벗어나 인문주의가 발전하자, 각 종 인간주의 철학이 나타나게 되었고, 자유주의로 말미암아 자유주의 신학이 나오게 되고, 학문의 자유로 말미암아 진화론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러한 학문의 자유에 힘입어 유신진화론이 몇몇 독일에서 수업한 사람들에 의해 등장하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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