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국회 탄핵소추 의결 이후 극도의 혼란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정치 불신에서 비롯된 양 극단의 주장과 행동이 우리 사회를 분열과 반목의 철장에 단단히 가둔 느낌이다.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은 연일 전쟁을 방불케 하는 시위와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의 아침 최저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떨어지며 혹한의 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에 모여든 사람들은 날씨에 아랑곳없이 사자후를 토해내고 있다.

보수단체 회원들과 2030 젊은 세대들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선 지난 3일을 전후해 이곳에 집결한 후 윤 대통령 탄핵 반대집회를 지속하고 있다. 민노총 등 진보 단체 회원들도 가까운 위치에 진을 치고 연일 윤 대통령 체포·구속 촉구 집회를 여는 등 탄핵 찬반을 둘러싸고 내전에 가까운 대결을 벌이는 모습이다.

서울 여의도와 용산, 광화문에 이어 한남동이 보수 진보 단체 간의 세력 대결장으로 변모하게 된 건 정상적인 법 집행이 아닌 변칙적인 정치 행위에서 파생된 예고된 혼란이란 지적이 많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했으면 공이 헌법재판소로 넘어간 건데 결과를 기다리지 않고 정치적 심판을 내리려는 조급증이 빚은 무리수라는 것이다.

한남동 대통령 관저 주변이 탄핵 찬반 지지자들이 뒤섞이며 아수라장이 된 시점은 공수처가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에 나서면서부터다.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가 무리하게 현직 대통령에 대한 체포에 나서면서 찬반 진영 간의 격돌을 심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공수처가 윤 대통령 체포에 나선 건 처음부터 법적 논란의 소지가 많았다. 영장을 쉽게 받기 위해 서부지법을 선택했다는 논란에서부터 서부지법 영장전담판사가 영장을 발부하면서 형소법 조항 배제를 적시하는 등 위헌 문제까지 불거지게 된 것이다.

이순형 서울서부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공수처가 청구한 윤 대통령 체포·수색영장을 발부하면서 ‘형소법 110조와 111조 적용을 예외로 한다’고 적시했다. 형소법 제110조·111조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 승낙 없이는 압수수색이 불가하다고 규정한 조항으로 대통령경호처가 공수처의 체포를 막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이런 영장을 발부했을 것이다.

문제는 형사소송법 어디에도 판사에게 그러한 자의적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 없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 측 변호인단이 “사법부의 구성원이 헌법상 대원칙인 삼권분립에 위반해,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기반한 법치주의의 원리를 훼손했다”며 대법원에 진상 조사와 함께 이 부장판사의 징계를 요구한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지난 문재인 정권 하에서 권력기관 개혁을 목표한 독립적인 수사기관으로 출범한 공수처는 검사의 수사 기소권을 견제할 정치적 목적이 다분해 ‘옥상옥’이라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2021년 설립 이후 연평균 200억 원대의 예산을 쓰고도 이렇다 할 성과와 결과를 내지 못하자 야당에서조차 무용론이 제기될 정도다.

그런데 지금 야당은 체포영장 1차 집행에 실패한 공수처를 비난하며 내란수괴를 조속히 체포하라고 온갖 압력을 가하고 있다. 헌재에 보낸 탄핵소추안에 ‘내란죄’를 뺀 민주당이 연일 대통령을 빨리 체포하라고 연일 공수처의 등을 떠미는 이유가 뭐겠나.

대통령이 관저에서 끌려나오는 모습을 기어이 보고야말겠다는 건 상대를 정치적으로 완전히 굴복시켜 파괴하려는 보복 심리가 기저에 깔려있다고 본다. 대통령을 톡톡히 망신 줘서 탄핵에 찬성하는 지지자들을 환호하게 만들고 탄핵에 반대하는 세력의 기를 꺾어 사실상 헌재 탄핵 심판 전에 정치적 결과물을 만들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마치 잡범마냥 수사관에게 붙잡혀 포박돼 끌려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어찌 대통령 한 사람의 망신인가.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망신이고 국격의 손상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나.

최근 여론조사에서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당 지지율 격차가 2%포인트로 좁혀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양당 지지율이 12.3 비상계엄 사태 이전으로 되돌아간 것이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48%까지 치솟았던 민주당 지지율이 급속히 하락해, 탄핵정국 이전의 균형 구도로 돌아갔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탄핵정국에 역풍이 불자 민주당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내란 선전 관련 뉴스를 나르는 행위를 내란 선전으로 고발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또 여론조사 결과가 맘에 안 든다고 여론조사기관까지 고발에 나설 태세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는 극단적인 갈등과 반목의 뿌리엔 정치권의 반민주 반 법치주의 행태와 연결돼 있다. 그저 국민을 갈라치기하는 방법으로 강성 지지층의 환심을 사는 정치인들이 벌이는 칼춤판에 애꿎은 국민이 뛰어들어 편을 갈라 싸우는 형국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정당한 법적 절차를 무시하고 패거리 집단을 부추겨 혼란의 반사이익을 얻으려는 이들이 노리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든 과거와는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는 걸 명심할 필요가 있다. 탄핵정국 하의 지지율 역전 현상이 그걸 잘 말해준다.

우리 사회의 혼란과 갈등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무조건 갈아엎으려는 정치인들의 팬덤정치가 만들어낸 기괴한 산물이다. 당장은 팬덤층에 환호하겠지만 언제가 팬덤의 칼끝이 자신을 향하고 있는 사실을 깨닫는 날 국민이 내는 신음소리가 비로소 귀에 들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덫에 걸린 국민과 나라, 사회가 중병을 치유하고 회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과 국력이 낭비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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