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순절, 주님께로 발걸음 내딛는 시간

지난 14일 수요일부터 사순절(四旬節)이 시작됐다. 사순절은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 40일 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는 절기다.

사순절이 그리스도인에게 매우 특별한 절기인 건 부활절을 앞둔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십자가 고난이 없었으면 부활도 없다는 점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의미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사순절은 성경에 기록돼 있지 않다. 325년 제1차 니케아공의회에서 정해진 후 가톨릭에서 지켜온 절기라 개신교회에선 고난주간과 부활절만큼 크게 비중을 두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사순절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도 가톨릭교회에서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신자들의 머리에 얹는 예식을 거행한 데서 유래했다.

세계교회들의 경우 교단 또는 공동체마다 사순절에 대한 해석이 제각각이다. 하지만 고난이라는 키워드만큼은 공유해 오고 있다. 단순히 절기 행사로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면서 부활을 기다리는 의미로 받아들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이 관념 속에서 존재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리스도가 당하신 고난이 나와 내 주변, 그리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 위해선 내 삶에서부터 정제가 필요하다.

한국교회가 교단 또는 개교회별로 사순절에 사랑의 헌혈, 또는 한 끼 금식하며 지구촌 빈곤 어린이돕기 등의 행사를 펼쳐 온 것도 그 일환일 것이다. 헌혈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을, 금식은 내 욕망을 주님 앞에 내려놓은 상징적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떼에 교단적으로 장기기증운동을 벌이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의 본질이 ‘생명’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이는 기독교인뿐 아니라 비 기독교인들에게 부활의 의미를 전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국교회가 사순절에 행하는 다양한 실천 중에 올해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게 있다.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총회가 전개하는 ‘탄소 금식 40일 캠페인이다. 14일 ’재의 수요일‘부터 부활절 전까지 40일간 이어지는 행사로 크리스천이 하나님이 창조한 세계를 회복하는 일에 앞장서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교단 홈페이지 등에서 무료로 나눠 주는 교회실천 자료를 보면 ‘하루 동안 전자제품 금식하기’ ‘적정 실내 온도 유지하기’ ‘일회용품 제로에 도전하기’ 등 실생활에서 활용할 수 있는 환경보존 방법들이 자세히 소개돼 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도 생태공동체운동본부와 함께 ‘사순절 탄소금식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교단이 제공한 자료엔 어린이를 포함에 다음세대부터 장년세대까지 온 세대가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다양한 ‘탄소 줄이기’ 방법이 소개돼 있다.

오늘날 전 세계가 겪고 있는 기후위기의 주범은 탄소 배출이다. 인류는 18세기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엄청난 온실가스를 대기 중에 뿜어냈다. 그 결과로 지구 평균기온은 대략 1℃ 상승했다. 그로 인해 세계 곳곳에서 폭염, 가뭄, 홍수, 산불, 태풍, 해수면 상승 등의 극단적인 기상 이변과 자연재해가 자주, 더 강력하게 벌어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앞으로 현재보다 0.5℃가 더 상승하게 된다면, 지구 기후 시스템은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달라져 회복 불가능한 상태로 접어들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지구적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지으신 창조세계인 이 지구는 사람과 생명체가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으로 변모할 수도 있다.

온실 가스를 줄이는 일은 먼 장래의 닥칠 위기를 미리 대비하고자 하는 일이 아니다. 앞으로 10년, 아니 그 전에 생태계 전체에 몰아닥칠 소멸의 문제다. 주요국 정상들이 기후정상회의를 열어 탄소 배출 50% 절감을 결의했으나 나라마다 이해관계가 달라 얼마나 지켜질지 알 수 없다.

한국교회도 최근 교단 총회 때마다 탄소 배출을 줄이는 데 동참하기로 결의하고 그 실천과제를 산하 교회들과 공유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사순절 기간에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무를 인식하고 삶에서 실천하는 운동이 일어나는 건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하지만 아직도 그걸 왜 교회가 해야 하는지, 절감하지 못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이 많다. 당장 내 교회 내 교인의 사정이 급한데 밖을 볼 여유가 있냐는 거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고 부활하신 목적은 나를 죽음에서 건져내 생명을 주기 위함이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대속의 은총이 곧 복음의 정수다.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 할 건 이 복음은 묵상과 기도의 단계에만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삶의 실천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완성된다는 뜻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이 사순절에 죄와 회개에 머물러 있는 말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로 발걸음을 내딛는 소중한 시간으로 삼기를 바란다.

<크리스천 생활정보 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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