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보문제일교회 신태하 목사
보문제일교회 전경 ©노형구 기자

서울시 성북구 소재 보문제일교회는 1916년 창립돼 올해 107년을 맞은 유서 깊은 교회다. 이 교회는 인도네시아에 400개 교회를 개척했고, 12대 담임 전진규 목사가 한국전쟁 당시 믿음을 지키다 공산당원에 의해 순교하기도 했다.

그러나 19대 담임 신태하 목사가 이 교회로 부임한 2019년 당시 전임 목사와 성도 간 갈등은 극심했다. 전임 목회자는 성도들의 요구에 따라 임지를 옮겼고 신 목사가 이 교회로 부임한 것이다. 전임 목사가 부임한 2011년 직전 400여 명을 유지했던 예배 평균 출석 인원이 신 목사의 부임 첫해 당시 180여 명으로 감소할 만큼 분쟁은 격렬했다고 한다.

신 목사는 “전임 목회자의 리더십에 막대한 손상을 입은 상태였고, 제가 이 교회로 부임하기 직전 약 3개월 동안은 예배 중단 사태 등 목사와 성도 간 갈등이 격화됐던 상황”이라며 “설교사역의 빈약함에서 주된 갈등 요인이 발견됐다”고 했다.

신태하 목사는 손상된 목회자의 리더십을 복구하고자 강단과 예배 회복에 집중했다. 심방이나 제자훈련 등 목사와 성도의 만남을 최대한 자제했다. 교회 분쟁의 불길 속에 뛰어들어 이를 직접 해결하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나님 말씀에 기초한 정확한 설교가 선포될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교회 질서가 회복된다는 게 신 목사의 말이다.

그는 “갈등을 겪는 교회에서 선포되는 설교를 종합 검토해보면, 목회자가 자신의 감정을 본문 말씀이나 설교를 통해 성도들에게 배출하는 경우를 발견한다”며 “그렇게 되면 성도들은 강단을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는 거룩한 시공간이 아닌, 목회자의 사감(私憾) 분출 통로로 여겨, 결국 강단의 권위가 무너지게 된다”고 했다.

보문제일교회 신태하 목사
보문제일교회 담임 신태하 목사 ©노형구 기자

신태하 목사는 설교에서의 긍정적 언어 선택이 교회 분쟁을 안정시키는 기폭제라고 강조했다. 신 목사는 강단 설교나 기도 시간에 교회의 오랜 전통과 사역의 열매를 강조하며 성도들에게 교회 사랑을 회복하는 데 노력했다. 성도들이 교회 분쟁 당시 겪은 마음의 상처를 어떠한 부정적 반응을 보이지 않고 청취하는 데만 주력했다고 한다.

신태하 목사는 “성도들 상처 얘기는 들어줘야 없어진다. 분쟁 관련 나쁜 얘기는 그대로 청취하되, 어떠한 피드백 없이 감정이 치유되는데 필요한 시간에 따라 흘려보냈다”고 했다.

신 목사는 또 “갈등과 분열을 일으키는 단어 선택을 지양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화합하자는 긍정의 메시지를 강단 설교와 기도를 통해 자주 전달했다”며 “이에 따라 부임 첫해 동안 냉랭했던 장로·권사 등 임직자들이 대표기도에서 사용하는 언어가 바뀌었다. 주로 정죄·자책에서 화합·기쁨으로 변화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교회 예배에서 ‘벌레만도 못한 우리’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 ‘우리 교회가 이 모양…’ 등 학대적인 언어 사용을 자제하려고 했다”며 “이런 자학적인 언어는 오히려 교회의 갈등을 더욱 부추길 우려로 인해 교회에서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당신의 자녀로 삼아주셨고 우리는 회복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라며 “그렇다면 목사와 성도는 자존감 높은 언어를 사용하는 등 그리스도의 성품에 맞는 격식 있는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보문제일교회 신태하 목사
신태하 목사가 교회에 걸린 미술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노형구 기자

2019년 보문제일교회의 예배 평균 출석 인원은 180여 명이었다가 신태하 목사의 부임 첫해를 지나 400여 명으로 회복돼, 코로나19 팬데믹을 통과하면서도 출석 인원은 그대로 유지됐다. 하지만 신 목사는 이 교회 부임 첫해를 지날 동안 과중한 스트레스로 인해 ‘당뇨와 고혈압’을 얻었다.

2008년까지 미국 한인 목회를 해오던 그가 이듬해인 2009년 한국에서의 첫째 부임지인 도봉구 소재 영천감리교회로 시작해 보문감리교회로 임지를 옮기는 동안 10년의 목회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가 방출된 탓이었다.

첫 임지인 영천감리교회 또한 목사와 성도 간 갈등이 극심했던 교회였다고 한다. 신태하 목사가 첫째와 둘째 임지에서의 갈등 해결에 주력한 결과 교회는 분쟁이 잦아들고 질서를 회복했으나, 그에게 남은 것은 ‘당뇨와 고혈압’이라는 영광의 상처였다.

신 목사는 “90년대 전도사 시절부터 ‘오래되고 메말라 분쟁이 잦은 교회에 그리스도의 생명을 부여하는 사역자로 사용해달라’고 기도를 했다”며 “어쩌면 기도대로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 같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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