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은 505주년 ‘종교개혁 기념일’이다. 마르틴 루터가 독일 비텐베르크 성당 정문에 95개 조 반박문을 붙인 날을 기념하는 뜻으로 세계교회가 이날을 기억하고 지킨다. 가톨릭교회가 행해온 비기독교적인 구습과 전통에 목숨을 걸고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저항했던 마르틴 루터의 개혁 정신은 오늘 한국교회 안에서 살아 숨 쉬고 있다.

그런데 개신교의 생일이라고 할 수 있는 ‘종교개혁 기념일’의 특별한 의미가 갈수록 퇴색하는 느낌이 있다. 올해는 한국웨슬리언교회지도자협의회, 한국칼빈학회 등 일부 유관 단체들이 조촐한 기념행사를 열었을 정도다. 5년 전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해 한국교회가 하나가 돼야 한다며 연합기관 통합을 외치던 목소리도 지금은 자취를 감췄다.

공교롭게 ‘핼러윈데이’도 10월 31일이다. ‘종교개혁기념일’의 자리를 ‘핼러윈데이’가 대신 차지했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낯선 외래문화가 어느덧 우리 사회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만약 이런 문화가 친숙하다 못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거리는 한 달여 전부터 온통 ‘핼러윈’을 상징하는 장식과 용품의 물결이다. 젊은이 어린이 할 것 없이 모두가 축제 분위기에 들떠있다. 교회에 다니는 어린이들조차 10월 31일을 사탕을 받는 날이자 각양각색의 유령 옷을 입고 파티를 하는 날로 인식할 정도니 ‘핼러윈’ 문화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급속도로 유입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핼러윈’은 2000년 전 고대 켈트족이 매년 10월의 마지막 날, 가축을 제물로 바치고 음식을 나눠 먹으며 축제를 벌인 데서 유래가 되었다. 이들은 축제일 밤에 동물의 가면을 쓰고 유령이 나타나길 기다렸다고 한다.

기독교가 ‘핼러윈데이’에 유독 불편한 이유는 중세 기독교 문화와도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4세기경 가톨릭교회가 11월 1일을 ‘모든 성인대축일’(The Feast of All Saints) 또는 ‘성인들의 날’(All Saints’ Day)로 지켜왔는데 당시 성인들을 중세 영어로 핼로우스(Hallows)라고 불렀다. 여기에 크리스마스 전야를 ‘이브’(Eve)라 하듯 저녁을 뜻하는 ‘인’(een)을 붙여 ‘핼러윈’(Halloween)으로 부르게 되었다는 설이 있다.

‘핼러윈’이 고대와 중세 기독교적 문화와 어느 정도 연관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오늘날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긍정적으로 볼 수는 없다. 어디까지나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로 지정되고 부흥기를 맞는 과정에서 고대 켈크족의 이단 문화와 섞인 것일 뿐 이걸 기독교 문화로 분류하는 자체가 말이 안 된다.

하나의 역사적 문화의 흐름으로 본다 하더라도 오늘 우리의 믿음과 삶에서 신앙의 테두리를 벗어나게 하는 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여선 안 된다. 따라서 교회는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변질된 문화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목회자는 이것이 왜 안 되는지 강단에서 가르쳐야 한다.

미국의 전도자이자 작가인 존 라미레즈는 최근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기고한 글에서 “기독교인들에게 매혹적으로 보일 수 있는 ‘핼러윈’ 관행에 엮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는 CP와의 영상 인터뷰에서 “‘사탄교의 창시자인 안톤 레비가 ‘나는 모든 기독교인 부모에게 감사하고 싶다. 자녀들이 1년 중 하룻밤 마귀를 축하할 수 있게 해 줘서 감사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그 하룻밤이) 바로 ‘핼러윈’이다”라고 폭로했다.

기독교 교육과 문화 전문 사역자들도 비슷한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핼러윈데이’를 즐기는 사람들이 귀신이나 유령의 존재를 친숙한 대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기독교 신앙의 본질에서 이탈할 수 있어 위험하다는 것이다. 특히 신앙인이 이런 대중문화를 무분별하게 받아들일 경우, 기독교적 신앙에 반하는 사고에 서서히 물들게 돼 더욱 위험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느덧 ‘핼러윈’이 모두가 함께 즐기는 축제로 인식되고 있다. 기독교인들조차 별 거부감이 없다. 이들이 ‘핼러윈’은 잘 알면서 ‘종교개혁기념일’은 모른다고 타박할 수만도 없다. 크리스마스를 아기 예수가 탄생한 날이 아닌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선물을 주는 날, 연인 또는 가족끼리 파티하는 날로 인식하는 세속 문화 풍조 속에서 ‘종교개혁기념일’의 의미를 찾는 건 일종의 희망 고문이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런 문화에 대해 보다 분명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한국교회는 어느 교파에 속했든 모두 개혁교회라는 틀 안에 있다. 505년 전 목숨을 걸고 가톨릭교회의 부패와 죄악에 맞서 싸운 개혁자들의 정신으로 미국교회가 세워졌고, 그 교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에 의해 한국교회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사실 종교개혁기념일을 기억하고 지키는 건 둘째 문제다. 그보다는 한국교회가 오늘도 끊임없이 그 개혁의 과제를 실천하고 있는 지가 중요하다는 말이다. 날마다 개혁하는 교회는 세속화의 물결이 감히 범접할 수 없다.

그런데도 한국교회는 목회자의 윤리적 타락과 금권주의로 인한 분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사회에 희망과 대안이 되지 못하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교인들조차 ‘종교개혁기념일’ 보다 ‘핼러윈’을 더 친숙하게 여기는 풍조도 한국교회가 개혁자들의 정신에서 벗어난 게 가장 큰 원인이 아닌지 스스로 되돌아보고 반성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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