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랜턴 선교사 서거 100주년 심포지엄
아현감리교회가 30일 오후 스크랜턴 선교사 서거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아현감리교회 유튜브 캡쳐

기독교대한감리회(감독회장 이철 목사) 서울연회 스크랜턴100주기추모위원회가 4월 30일 오후 서울 아현감리교회에서 故 윌리엄 스크랜턴 선교사(1856~1922) 서거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본격 강연에 앞서 김영수 감리사(서대문지방회)가 대표기도를 드렸으며 이광호 감독이 ‘너도 가서 이와같이 하라’(누가복음 10:36~37)‘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이 감독은 “스크랜턴 선교사님은 물과 피를 다 쏟으시고 무엇이든 다 내어주신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실천하셨다. 그에게는 충분히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이 많았지만,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전혀 알지 못하는 조선 땅에 와서 백성들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다”라고 했다.

그는 “스크랜턴 선교사님의 삶은 진정한 주님의 제자 된 삶이었다. 선교사님의 서거 100주년을 맞이해 지난달 23일에 추모제를, 27일에는 영성집회를 했다. 그리고 오늘 심포지엄을 개최하게 되었다. 금일 심포지엄에서 스크랜턴 선교사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삶은 어땠는지, 어떤 사역을 하셨는지에 대해 잘 알고 가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역사를 잊어선 안 된다. 선교사님을 추모하는 것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분의 삶을 기억함으로써 감리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어떤 역사를 향해 나아가야 할지, 그 방향을 지시받는 소중한 시간이 되길 소망한다”라고 했다.

이 감독의 설교에 이어 김칠성 교수(목원대)가 ’스크랜턴의 생애와 활동‘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김 교수는 “스크랜턴 선교사는 20세의 젊은 나이에 조선에 와서 다양한 분야에서 감리교회와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이바지했다. 그는 성동교회, 아현교회 등 감리교회를 세웠다”며 “그는 교회 뿐만아니라 정동병원 등 의료쪽으로도 힘을 쓰며 의료 선교활동을 했다”라고 했다.

김 교수는 “그는 미국에서 의사로서의 편안한 삶을 내려놓고 미지의 땅인 조선으로 와서 선교활동을 했다. 그는 한국 감리교회의 개척자로서 충실히 그 역할을 이행했다. 또한 그는 아펜젤러 선교사와 협업하면서 선교활동을 했다. 하지만 그의 선교활동의 끝은 좋지 못했다. 20여 년 동안 조선 땅에서 선교활동을 했지만, 그는 감리교를 떠났다. 비록 그의 끝은 좋지 못했지만 이를 아쉬움과 안타까움 보다는 존경과 사랑으로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했다.

김 교수에 이어 홍이표 교수(일본 아마나시에이와대학교)가 ’스크랜턴 선교사 사임 배경과 사임 후의 활동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홍 교수는 “스크랜턴 선교사가 선교활동을 마치고 사임을 하게 된 이유는 1905년 을사늑약을 앞두고 한국과 일본을 공동 관리하는 감독으로 취임한 해리스 목사가 한국에 처음 방문했을 때 그 안내 과정에서 친일 발언을 한 것에 대해 실망을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스크랜턴 선교사는 사임 이후 의료 선교를 하기 시작했다. 1907년 그는 대한의원 촉탁의사 겸 의학부 교사직을 수락하며 3년 기간으로 초빙 계약을 체결했다. 그가 대한의원에 가기로 결심한 것은 왕립병원 제중원에서의 경험이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또한 일본의 지배력이 강화될수록 한국인의 의료 혜택은 줄어들 것이며 한국어로 지도가 가능한 자신이 암울한 시대를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서영석 교수(협성대)가 ’스크랜턴 선교사의 신학과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서 교수는 “스크랜턴 선교사는 복음 전파의 소망을 가지고 조선 땅에 왔다. 그의 복음 전도 활동 및 의료 선교활동은 우리나라 개신교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다”라며 “의료 활동을 통해서 최초로 한국 선교를 시작했고 효과적인 사역을 펼쳤다. 아직 기독교 선교가 활성화 되지 않았을 시기에 그는 치유와 돌봄 사역으로 백성들을 섬겼다”라고 했다.

그는 “스크랜턴 선교사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사랑을 실천하면서 백성들에게 다가갔다. 의료 선교 활동이 성공하면서 그는 더 나아가 아현교회, 성동교회 등 감리교회를 세웠다”라며 “그는 구령의 열정을 가진 뜨거운 목회자이자 선교사였다. 질병 치료를 하면서 그냥 치료하는 것이 아닌 영혼 치료, 즉 복음 전파에도 열을 올렸다. 그는 한국의 토착교회가 복음화에 앞장 설 수 있도록 지원했다”라고 했다.

서 교수는 “그는 한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면서 예수님께서 가셨던 길을 따라가고자 했다. 미국에서 편안하게 의사로 지내는 삶을 살 수 있었지만, 그는 선교라는 길을 선택하여 우리나라 기독교 발전에 크게 이바지 하게 되었다”라며 “하지만 을미사변 이후 을사늑약이 맺어지면서 해리스 목사가 그와는 반대되는 뜻이 있었기에 그는 선교활동을 끝낼 수밖에 없었고 감리교를 떠나게 되었다”라고 했다.

끝으로 서 교수는 “스크랜턴 선교사는 선교활동을 마치면서 감리교를 떠나게 되었지만, 이 선택이 그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되었다. 앞으로 우리의 선교가 스크랜턴 선교사가 했던 선교처럼 앞장서는 선교,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선교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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