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60평생을 살아오면서 이렇게 큰 거짓과 부정과 부조리는 난생 처음 본다. 그런 추악한 죄를 저지르고도 뻔뻔스럽고 철면피인 사람들의 모습을 보노라면 울화통이 치밀고 분노가 크게 솟구친다. 무엇보다 그런 악인들을 추종하고 좋아하는 대중들의 모습은 더욱 큰 화를 불러일으킨다. ‘눈이 있으면 볼 수 있을 텐데, 귀가 있으면 들을 수 있을 텐데, 어찌 그들에겐 그렇게도 큰 허물과 악이 보이질 않는 건지!’

[2] 그들이 내 주변 동료들이요 친한 벗들인데 말이다. 그것도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이들인데도 말이다. 편파 방송과 뉴스를 끊은 지가 오래지만 그렇다고 들려오지 않는 건 아니다. 매일 매일 울화통과 함께 이런 불의와 교만을 단숨에 드러내어 처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불평과 원망도 늘어간다. 물론 그것이 내 뜻대로 된다면 제일 먼저 나부터가 수치와 징벌을 받아야 할 대상임을 아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3] 요즘 어느 때보다 내 맘에 불평과 원망이 가득함을 본다. 하나님이 이런 내 마음을 보시기가 민망하셨는지 오늘 우연히 설교집 한 권을 손에 들게 하셨다. 거기엔 <기독교사상> 2004년 9월호에 게재된 글이 적혀 있었다. 여수 애양원의 양재평 장로님에 관한 인터뷰 기사 내용이었다. 양 장로님은 한센병에 걸려 18살에 애양원에 들어가 1950년에 손양원 목사님이 순교하실 때까지 목사님의 사랑을 받으며 결혼까지 한 분이다.

[4] 주님의 사랑에 감격하여 교회를 위해 헌신하고 싶었지만 1년 뒤 시력은 물론 손의 감각마저 완전히 잃게 된다. 그로 인해 한동안 죽어버려야겠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회복된 후 남아 있는 감각인 청각과 기억력을 동원해서 성경을 외우는 모임을 만든다. 각자 성경을 외워 와서 성경을 꿰어 맞추면서 성경이 통째로 머리에 들어왔고, 나중에는 가슴으로 스며들어왔다고 한다. 당시 여든이 넘은 양재평 장로는 이렇게 고백한다.

[5] “밭에 숨겨진 보화를 산 것이야. 우리는 전부를 잃고 천국을 산 것이었어. 천형이라는 병을 얻어서 예수를 믿었고, 시력과 손의 감각을 잃은 대신 신약성경을 얻었지... 나사로는 죽어서 하나님 나라 갔지만 살아서, 삶 속에서 누리는 하나님 나라도 있지... 빛도 어둠도, 평안도 환난도 모두 좋은 것이 될 수 있어... 그게 의심되면 애양원의 우리를 봐.

[6] 감사하고 찬양하며 기뻐하는 우리를 보라고. 우리는 믿어. 우리가 받은 그 저주 같은 병조차 사랑이고, 복이고, 천국에 이르는 과정이라는 사실을 말이지... 출애굽하는 광야에서도 온갖 환난이 있었고, 반석 위에 지은 집이나 모래 위에 지은 집 모두 바람과 홍수를 맞잖아... 반석 위에 지었느냐, 모래 위에 지었느냐 그게 중요할 뿐이지. 그래서 우리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부자 되라고 하지 않고 증인 되라고 하셨잖아.”(김지찬, 『믿다, 살다, 웃다』 (서울: 국제제자훈련원, 2019), 126-27)

[7] 내용도 감동이고 글도 참 잘 쓰시는 분이시다. 천형이라는 병 아니면 예수를 어찌 믿었겠으며 시력과 손의 감각을 잃지 않았으면 어찌 성경을 얻을 수 있었냐는 양 장로님의 고백은 여러모로 건강한 조건을 다 갖추고 있는 내게 큰 충격과 부끄러움을 준다. 감사의 조건들이 차고 넘침에도 불구하고 어둡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불평과 원망만 주로 드러내는 나 자신의 모습이 하나님께 너무도 송구하고 죄송해서 회개에 회개를 거듭한다.

[8] 수년 전, 광주교도소에 있는 탈주범 신창원과의 특별면회에서도 느낀 바가 크다. 사람을 살해한 건 후배인데 괘씸죄에 걸려 무기징역을 받아 오랜 세월 복역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가 억울하지 않느냐는 내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을 했다.

“제가 감옥에 오지 않았다면 어찌 주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옥에 갇힌 자는 평강과 감사가 넘치는데 자유로운 자는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절감했다.

[9] 오늘 또 한 번 양재평 장로님의 간증을 대하면서 많은 걸 깨우친다. 대학생 시절 여러 번 가서 만났던 한센병 환자들의 예배와 찬양과 성경암송과 기도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세 번째 방문했을 때 만났던 한 할아버지의 말씀에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경험한 적이 있다.

어디서 오셨냐는 질문에 대구에서 왔다니까, “내가 매일 기도하는 사람들 중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박 모 목사님이고 다른 한 사람은 '신성욱'이란 사람이에요!”라고 말씀하셨다.

[10] 그러고 보니 소록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만나서 교제하며 나를 위해 평생 기도하겠다고 약속하셨던 바로 그 장로님이셨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지나 천국에 가셨겠지만, 땅에 있는 동안 매일 내 이름을 불러가며 기도하셨을 것이고, 천국에서도 여전히 나를 위해 빠짐없이 기도하고 계실 줄로 확신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빚이 많은 사람이다. 빚지고는 살 수 없는 성미지만, 돈이 아닌 기도와 사랑의 빚은 참 많이 진 것 같다.

[11] 암담하고 부정적인 현실과 죄 많은 인간들의 군상들에 시선이 뺏겨 부정적인 생각과 언어로 죄 지음에 동참치 말고, 양재평 장로님과 신창원 형제처럼 주께서 베풀어주신 은혜만 생각하고 늘 넘치는 감사와 함께 중보기도와 증인의 삶을 잘 살다 가야겠다 다짐해본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아멘!

신성욱 교수(아신대 설교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