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빌립이 이르되 주여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 그리하면 족하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14:8-12)

역사상 처음으로 맞는 멘붕 사태

어느 해라도 어려운 일도 많지만 감사할만한 일도 있기 마련이나 누구나 실감하듯이 올해는 좋은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펜데믹 사태가 2년 넘게 장기화되는데다 최근에는 오미크론 변종으로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습니다. 언제 이 사태가 종식될지 아무도 몰라 새해의 계획을 세우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을 판국입니다. 소망으로 가득차야 할 시기인 연말인데도 전 지구인에게 공통적으로 시쳇말로 멘붕이 생긴 것은 역사상 처음 있는 일입니다.

본문은 이천 년 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들에게 일어났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 연유는 주님이 유다가 당신을 배반할 것과 베드로가 세 번 부인할 것을 예고했고 이제 곧 당신께서도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승이 사흘 후에 부활하신다고 약속은 했지만 제자들에겐 도무지 실감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십자가 처형이 얼마나 참혹한지 잘 알고 있기에 되살아나는 것은 아예 불가능하다고 여겼습니다.

삼 년간 동고동락했던 스승과는 완전히 이별할 수밖에 없는 순간이 다가온 것입니다. 지금까지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로부터 온갖 비방 멸시 음해 핍박을 받아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예수님의 큰 능력과 권세 있는 가르침 앞에 꼼짝 못했기에 안전하게 잘 지내왔습니다.

제자들 스스로도 바리새인들과는 차원이 다른 주님의 성경 해석을 항상 배우고 사람들을 위로 치유하는 사역에 동참했고 자기들이 귀신도 쫓아내는 등 영적인 프라이드가 상당히 높아져 있었습니다. 주님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구체적인 이유와 경위는 몰라도 그전까지 느꼈던 여러 걱정 염려 초조 불안 분노 증오 등이 없어졌고 대신에 순전한 평강과 안락과 자유를 느꼈습니다. 이제 더 이상 그런 유익들을 누리지 못하고 목자 없는 양떼처럼 남게 될 것입니다. 그럼 당장에 그 동안 미움을 샀던 유대의 종교정치실권자들로부터 크게 시달릴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가장 먼저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고 안심시켰습니다. 이어서 천국에 너희가 거할 처소를 마련하러 가니 너희를 곧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잠시 동안의 육체적 이별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너희가 아느니라”(4절)고 덧붙였습니다. 천국으로 가는 길을 너희가 이미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의심 많은 도마가 주님이 어디로 가는지도 잘 모르는데 우리가 그곳으로 가는 길을 어떻게 알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5절) 그래서 주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6절)고 선언한 후에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고 부연해서 설명해주었습니다. 요컨대 예수님 당신을 믿으면 천국으로 간다는 너무나 간단하면서도 절대적인 구원의 진리를 다시 확인해준 것입니다.

더 어리석은 빌립의 질문

그러고 나서 본문의 빌립의 질문이 이어지는데 이는 도마보다 더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주님은 도마의 질문을 받고 당신을 알고 믿으면 천국 가는 길을 아는 것이라고 대답해주었습니다. 당신을 알면 하나님을 아는 것이라고 했으니 당신을 보면 이미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빌립도 지난 삼년 주님을 바로 곁에서 지켜봐왔는데도 다시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러니까 주님이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9절)고 반문했습니다. 알기 쉽게 비유하자면 당신은 하나님의 3D 복사본이니까 따로 더 보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제자들의 눈앞에 서있는 당신이 바로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주님이 빌립을 꾸중하는 투로 반문했지만 다시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길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가장 확실한 방안이자 더 이상 다른 방안은 없습니다. 아직도 온전한 확신이 생기지 않으면 당신께서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12절)고 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행하신 사역을 보면 도무지 인간이 행할 수 없는 일인 줄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마와 빌립이 삼년 간 주님을 따라다니며 그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 주님이 어떤 분인지 몰랐을 리는 없습니다. 현대의학도 고치지 못하는 불치와 불구를 순간적으로 완벽하게 고쳤고 죽은 자도 살렸으며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듯 이만 명을 배불리 먹였습니다.

무엇보다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지나는데 큰 풍랑으로 배가 뒤집힐 정도가 되자 주님은 말씀 한마디로 꾸짖어 잠잠케 했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며 어떤 사람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라고 했습니다.(마8:26) 그 후에 주님이 큰 풍랑이 이는 바다 위를 걸어오셔서 배에 오르자마자 광풍이 그쳤을 때도 예수께 절하며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하기 이전에 그 사실을 인정했습니다.(마14:33) 미약한 인간은 어느 누구도 맞서지 못하는 거대한 자연을 말씀 한마디로 통제했으니 하나님과 방불한 존재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조금 다릅니다. 그 동안의 이적들은 예수님이 살아계시면서 당신의 외부에 권능을 행사한 것입니다. 이번에는 당신께서 완전히 죽으니까 그 능력을 자신에게 행사해 되살아날 수는 도무지 없다고 본 것입니다. 하나님이라면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정도는 제자들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여전히 예수님이 하나님이라는 확신이 완전히 서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동안 주님을 완전한 인간의 모습으로만 계속 봐왔던 것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해 하나님이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몰랐던 것입니다. 죄인을 구원하려면 예수님이 인간의 죄를 대속할 완전한 인간 제물이 되어야 하고 또 무덤에서 부활해야만 영생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완전한 인간이자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실 수밖에 없다는 차원까지는 주님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단순히 내일부터 스승이 함께 하지 않으니까 당장 어떻게 해야 할지 큰 걱정에 휩싸인 것입니다. 이 모임을 존속하고는 싶지만 어떻게 계획을 짜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설령 그럴싸한 계획을 짜도 주님 없이는 도무지 실행할 자신이 없습니다. 유월절 절기는 유대인들에겐 출애굽으로 구원하신 여호와의 크신 권능과 은혜를 감사하는 기쁨의 잔치입니다. 그런데 지금 온 이스라엘 땅에서 유일하게 주님의 제자들에겐 멘붕에 휩싸인 인생 최대의 곤혹스런 밤이 되었습니다.

주님도 제자들이 당신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도마에게 “너희가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로다 이제부터는 너희가 그를 알았고 또 보았느니라.”(7절)고 하신 말씀에 그런 배려가 숨겨져 있습니다. 먼저 가정법으로 당신을 알았다면 하나님을 알았을 것이라고 합니다. 반드시 알았어야하는데 아직도 잘 모르고 있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이제부터는’이라고 분명히 미래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그를 알았고 또 보았다”고 과거시제로 표현했습니다. 성경에 자주 등장하는 표현으로 미래에 반드시 확정될 사안을 완료형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지금 마지막날밤까지 당신을 믿지 못해도 되지만 앞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사흘 만에 부활한 것을 보게 되면 결코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멘붕에 휩싸인 제자들을 위로하신 주님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무엇이었습니까? 앞으로 어떤 어려운 일이 생겨도 지금껏 당신을 보고 알게 된 것을 특별히 십자가 죽음을 회상하면 너희들 스스로 충분히 이겨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보여주고 알게 한 것은?

그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보여주고 알게 해준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습니까? 크게 둘인데 우선 치유와 기적들은 당신의 완전한 신성을 드러내었습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요1:18)

구약시대의 여호와 하나님도 치유와 기적들은 물론 거룩한 율법을 수여하여서 당신이 어떤 분인지 알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스라엘은 이 땅에서 자기들만 형통하려는 완악한 편견과 고집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했습니다. 정확히 말해서 그분을 이용만 하려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당신께서 직접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그 첫째 목적은 아담과 언약한 대로 여자의 후손으로서 사탄의 권세를 십자가에서 깨트려 당신의 택한 백성을 죄에서 구원해주려는 것입니다. 나아가 당신에 대해 오해하거나 부족하게 알고 있는 차원에 대해 바로 잡아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완전한 인성도 지니고 오셨습니다. 평범한 유대 가정에 태어나 다른 아이들처럼 회당에서 율법 교육을 받았고 가업인 목수 일도 배웠습니다. 보통사람들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맺으며 일상적인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4:15)

그래서 주님은 어려운 처지에 빠진 불쌍한 사람들을 당신만의 사랑으로 섬겼습니다. 특별히 유대사회가 종교적 관습과 규정으로 차별하여 공동체에서 배척한 자들을 오히려 더 따뜻하게 교제 위로하며 치유해주었습니다. 반면에 인간적인 지식과 의를 자랑하면서 백성들로 참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고 율법을 형식적으로만 가르치는 자들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견책했습니다. 성전 제사를 치부의 수단으로 타락시키고 사회의 공의를 굽어지게 하는 불법의 사람들에게 분노하며 정죄했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하나님이 인간을 외모로 차별하지 않고 오직 당신께 진심으로 순복하는 자를 끝까지 사랑하신다는 원리를 보여주었습니다.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그런 사랑을 믿고 따르는 당신의 백성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손수 모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제자들과 삼 년간 동고동락하시면서 생생한 시청각 교육을 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내가 떠난다고 불안 염려할 필요가 전혀 없고 내가 걸어간 길대로 따라오기만 하면 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르침을 접한 제자들이 느꼈을 기분이 어떠했겠습니까? 당신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해 천국으로 가고 제자들만 남겨두면서 당신처럼 수난 받는 길을 걸으라고 합니다. 비록 천국에 자기들 처소를 마련해주러 가신다고 하지만 지금 이 말씀은 솔직히 위로가 되기보다는 더 큰 걱정이 되었을 것입니다.

주님도 그것으로는 위로하기에 부족하다고 여기셨는지 아주 큰 약속을 보탰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12절) 진실로 진실로라고 두 번 강조했으니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또한 지금의 제자들에겐 위로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더 크게 황당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주님보다 큰 일을 한다는 것은 더 큰 핍박이 따른다는 뜻이지 않습니까? 실제로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리는 저녁에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처형이 집행되자 모두가 한 곳에 모여 꽁꽁 숨어 있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로부터 스승의 부활소식을 듣고도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주님보다 더 큰 일을 한 베드로

그렇게 두려움에 떨던 그들에게 완전한 역전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주변 상황에 바뀐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과 사람들이 그들을 어떻게 대할지 유대당국이 어떤 조치를 내릴지 여전히 크게 걱정되었습니다. 그러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다시 힘을 얻었고 승천하시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땅 끝까지 가는 당신의 증인으로 세우겠다는 또 다른 약속을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다시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만 했습니다. 주님이 승천하는 영광스런 모습을 직접 보았고 다시 곧 오신다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열흘 정도 지나 오순절이 되자 엄청난 일이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있어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며 마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 그들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하여 있더니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2:2-4)

자신들의 가슴에 기쁨과 평강이 충만해졌을 뿐 아니라 하늘에 오르신 스승이 바로 곁에 오셔서 더 큰 권능과 사랑으로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절감했습니다. 스승이 없다는 걱정 염려 초조 불안은 다 사라지고 도리어 이전보다 더 담대해졌습니다. 무엇보다 스승이 가르쳐주신 천국 복음의 말씀들이 정확히 이해되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 같은 완악한 죄인을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셔서 하나님의 진노를 감당했고 그럼으로써 자기들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입었음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있을 수 없었습니다. 속에서 솟구치는 뜨거워진 열정에 못 이겨 뛰쳐나가서 예수가 메시아다 그가 구세주다라고 외쳤습니다. 도마의 질문에 주님이 대답하신대로 예수님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당신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없다는 것이 절대적이고 영원한 진리임을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들이 각 나라 방언으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오순절 절기를 지키러 천하 각지에서 온 디아스포라 유대인들과 경건한 이방인들 모두가 놀라며 신기해했습니다. 베드로가 바로 단상에 올라가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마지막 때가 지금 왔고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이상을 보고 듣게 된 것이니까 전혀 신기하게 여길 것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구약의 여호와가 예언한 그대로 예수가 메시아로 와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었으니 그를 믿으라고 소리높이 외쳤습니다.

성령에 충만해서 전하는 베드로의 예수님에 관한 메시지에도 성령이 강력히 역사했습니다. 그 설교를 듣고 찔림을 받아서 그날 하루만 예수님을 영접하고 회심한 자가 3천 명이나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실 때까지 삼 년간 큰 권능과 이적으로 사역했어도 백이십 여명의 제자를 두었으나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은 하루 만에 삼천 명을 회심시켰습니다. 분명히 자기 스승보다 큰일을 했습니다. 주님의 신성으로 행하시는 초자연적인 치유와 기적은 제자들이 따라할 수 없어도 천국복음을 전하고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을 사랑으로 섬기는 일은 얼마든지 더 많이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보여주신 모습대로 신자답게 살아가면 주님께서 반드시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본문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이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로 당신께서 아버지께로 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2잘) 또 다른 예수님 특유의 역설(paradox)입니다. 제자들은 스승이 떠나니까 불안에 떨고 있는데 주님은 오히려 그러니까 염려할 필요가 없고 나아가 더 큰 은혜가 임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이유는 간단한데 당신께서 천국보좌로 가심으로써 성령님이 대신에 각 개인에게 강력하게 임재하여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들을 담대한 복음의 일꾼으로 세워 주시기 때문입니다.

천국에선 성부와 성자가 뜻을 이루면 이 땅에서 성령님이 적극적 능동적으로 제자들을 그 사역을 위해 준비 훈련 참여시켜서 그 뜻을 이뤄나가시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는 십자가 구원 진리가 예표 상징 되며 천국복음이 일부 사건과 사람들에게만 실현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승천 하신 이후로는 전 지구적으로 전 민족들에게 제자들을 통해서 십자가 복음이 체험적으로 광범위하게 실현될 것입니다. 그래서 더 큰 일을 할 수 있고 나아가 제자들에게도 더 큰 유익이 됩니다.

주님은 빌립에게 지금 계속해서 당신께서 하나님을 보여주었고 또 알게 해주었다고 강조했습니다. 당신께서 가시는 곳에 제자들을 데려가지 않고 남겨두신 이유가 바로 그 일을 계속하라는 것이며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난 삼 년간 교육 훈련시켰다는 것입니다. 당신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단순히 당신이 안 계셔도 불안 염려하지 말라는 위로만이 아니었습니다. 지금껏 내게 보고서 배워온 그대로만 살아가면 너희 걱정은 없어지고 자연히 당신이 가신 곳으로 따라오게 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위급한 일이 생겨도 주님이 이전에 이런 일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곰곰이 되새겨보고 그대로 행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기도만 했던 열흘간은 명목상으로는 지상에 하나님의 실체가 존재하지 않은 역사상 유일한 기간입니다. 성부와 성자는 천국 보좌에 좌정해 계시고 성령님은 아직 강림하기 전입니다. 그럼에도 역사상 최고로 강력했던 삼위 하나님의 초월적인 권능이 마가 다락방의 백 이십 명의 성도들을 붙들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을 떠난 장소와 시간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아무리 죄로 타락한 인간 세상에 어떤 힘든 고난이 생겨도 단 한 시도 홀로 버려두지 않습니다. 스승이 하늘에 올라가고 없어도 제자들에겐 전혀 어려움이 없었고 한 주님 안에서 더욱 한 믿음이 되었습니다.

올해를 보내고 내년을 맞으며

내년뿐 아니라 앞으로 이 세상은 계속해서 흑암 가운데 점점 더 미혹되어져 갈 것입니다. 이런 세대에 신자는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지난 한 해를 어떻게 정리해서 어떤 각오로 새해를 맞이해야 합니까? 동일한 두려움에 떨었던 빌립에게 주신 주님의 본문 말씀대로 따르면 됩니다.

한마디로 주님이 아버지께로 가셨다는 사실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님 대신 오신 성령 하나님이 온 천하의 온 열방에게 오직 십자가의 은혜와 권능으로 범사를 주관 인도하고 계십니다. 올해도 내년도 예외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당신만의 오묘하고 완전하신 뜻에 따라서 펜데믹 사태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분의 뜻 안에선 인간과 세상은 물론 특별히 신자에게 유익이 된다는 뜻입니다.

이 사태로 인해 모든 이로 인간 생명이 얼마나 미약하며 오직 하나님만이 주관하심을 절감케 해주었습니다. 백신을 맞을 필요 없이 기도만 하면 지켜주신다는 뜻은 절대 아닙니다. 이번 오미크론 변종이 나타난 이유로 백신을 선진국들이 독점했기 때문이라는 비난이 터져 나왔습니다. 신자 과학자들은 더 좋고 안전한 백신을 개발하고 일반신자들도 다른 이들의 안전을 위해서 앞장서서 맞아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더욱 환경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의료시스템을 정비하여 새로운 변종이 나타날 것도 대비해야 합니다,

펜데믹으로 많은 사람들이 따뜻하고 진정한 사랑을 그리워하게 되었습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사회적 거리두기의 여파로 미국 성인의 세 명 중 한 명이 매일 심각할 정도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고 합니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가운데서 신앙이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고 열정적으로 그에 따라 사는 신자는 외로움을 잘 이겨낸다고 밝혀졌습니다.

참된 사랑은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뿐인데 신자는 그 사랑을 매일 말씀과 기도로 다시 확인하고 삶에서도 체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런 사랑으로 이웃들을 섬겨서 함께 외로움을 이겨내며 오순절의 마가의 다락방처럼 진정으로 하나 되는 공동체를 가정에서부터 실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신자에게 가장 중요한 계명은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이웃도 함께 동일한 모습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도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려면 믿음 소망 사랑이 항상 필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사랑이 제일이라고 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믿음 소망만으로는 고난을 이겨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간 세상의 모든 문제의 궁극적이고 유일한 해결책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뿐입니다. 원죄 하에 태어난 자연인으로선 그 참 사랑을 모르니까 십자가 사랑을 먼저 알게 된 신자더러 그들에게 주님의 사랑으로 섬기라고 명한 것입니다. 또 그래서 예수님이 빌립에게 그 사랑을 이미 보여주었고 알게 해주었다고 강조한 것입니다.

내년에도 신자는 본문 말씀대로 따라 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남아계셨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잘 생각해보고 그대로 계속하고 행하는 것입니다. 천국에 우리의 처소가 확보되어 있고 현실 삶은 그곳으로 가는 여정일 뿐입니다. 그 종착지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주님처럼 삶을 통해서 사람들 앞에 보여주는 일이 신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게 된 것입니다.

신자는 연말연시라고 해서 사실상 특별한 계획을 세우거나 특별한 각오를 다질 필요 없이 평소에 신자답게 살아왔던 그대로 살아가면 됩니다. 연약한 인간인지라 지난 한 해가 유난히 고통스러웠으니까 내년에는 더 즐거운 일이 많아지기를 바랄 수는 있습니다. 세상 속에서 현실 삶을 살아야 하니까 고통 슬픔 상처 억울함을 체험하는 개별 사건과 환경에 대해서 하나님과 씨름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따지면 신자에겐 그 마저도 큰 의미는 없습니다. 신자 인생의 전체 일정과 전체 방향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하늘에서 성부와 성자가, 땅에서 성령님이 지금까지 그대로 이끌어 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이끌어 갈 것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현실적으로 내년에 고난이 줄어들 것이라는 기대는 접는 편이 좋습니다. 죄로 타락한 세상에 고난은 어떤 형태로든 항상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또 내년에도 하나님이 여러 어려움들을 허락하실 것이지만 세상 전부도 당신의 거룩하고 완벽한 통치 아래 있습니다.

불신자에겐 이 땅이 전부이므로 고난을 없애고 자신만 왕처럼 떵떵거리며 호사스럽게 사는 것이 유일한 관심사입니다. 신자는 그에서 완전히 반대로 달라진 자입니다. 현실 형편이 아무리 보잘 것 없고 여전히 고난이 겹쳐도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 인생의 첫째 목표가 된 자입니다. 성령으로 진정으로 거듭난 신자라면 자연히 소외된 사람들을 먼저 찾아가 사랑하고 복음을 전해 주님을 알게 해주는 일에, 최소한 관심을 갖게 하는 일을 수행하게 됩니다. 그럼 주님보다 베드로나 바울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신자가 해가 바뀌면 새롭게 다짐할 사항은 하나뿐입니다. 천국 가는 그날이 한 해 만큼 가까워지고 주님을 얼굴과 얼굴로 맞대면 하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듭니다. 그럼 주님을 만났을 때에 과연 내 영적 상태가 주님의 마음에 들 수 있을까만 심각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특별히 그분이 나를 사랑하는 크기에 맞춰 나의 그분에 대한 사랑도 키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준비하는 마음의 자세가 현실 문제에 포커스를 두고 간절히 기도하는 것은 불신자라도 누구나 행합니다. 신자는 주님을 따라가는 길에서 올해는 어느 정도 왔고 새해에는 얼마만큼 어떻게 갈 것인지 잘 따져보셔야 합니다. 현실적 계획도 그에 맞추어 짜고 최선을 다해 그대로 실천하십시오. 그럼 삼위 하나님, 하늘에선 성부 성자가 땅에선 성령 하나님이 내년에도 신자를 그 큰 권능과 사랑으로 변함없이 붙들어주실 것이므로 그 얼마나 신나고 기쁜 일입니까?

2021/12/26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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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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