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존 맥아더 목사가 2015년 예수의 비유를 다룬 책 "Parables: The Mysteries of God's Kingdom Revealed Through the Stories Jesus Told"을 출간했다. 한국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비유』라는 제목으로 번역서를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하였다. 이 책에서 맥아더 목사는 12개의 비유를 '하나님 나라'에 초점을 맞추어 해설한다. 이 책을 중심으로 하여 존 맥아더 목사의 비유에 대한 이해를 소개하고자 한다.-

존 맥아더 목사 ⓒ그레이스투유
존 맥아더 목사 ⓒ그레이스투유

맥아더 목사가 이어서 다루는 비유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이다. 앞의 장에서 다루었던 비유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16장에 나온다. 예수께서 제자들 및 사람들에게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베푸신 직후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가르치시자 같이 듣고 있던 바리새인들이 이를 비웃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누가복음 16:14).

바리새인들의 비웃음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몇 가지 말씀을 하셨는데, 그것은 바리새인들을 정면으로 도전하는 말씀들이었다. 15절에서 예수께서는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옳은 체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마음보를 다 아신다. 사실 사람들에게 떠받들리는 것이 하느님께는 가증스럽게 보이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다. 바리새인들은 맥아더 목사의 표현대로 "당시에 성경을 존중하는 종교 지도자"들이었고, 누구보다도 율법을 집착적으로 지켰던 사람들이다. "겉으로만 보면 로마 제국 내에서 가장 존경스럽고, 정직하고, 거룩하고, 헌신적인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이들을 공격하는 것은 "그분(예수)이 사역하시던 모든 지역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을 것"이라고 맥아더 목사는 지적했다. 실상 바리새인들은 "의식법을 상기시키는 걸어다니는 게시판이나 다름없"었을 정도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겉모습이 사람 앞에 옳게 보일지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가증스럽게 보이는 것"이라 지적하신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겉 행위는 위선임을 직접적으로 지적하신다.

17절에서 예수께서는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의 없어짐이 더 쉬우리라"고 말씀하신다.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것보다 율법 한 획이 없어지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더 어렵다는 말인데, 그 정도로 바리새인들에게는 율법 한 획 한 획을 허투루 다루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율법에 대한 충성은 겉모습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들은 율법으로 자신들의 내면은 측량하지 않았다.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요, 무릇 버리운 이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는 말씀은 율법에 대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해석의 한 예시를 가리킨다고 맥아더 목사는 설명한다. 바리새인들은 남자는 어떤 이유로든 아내와 이혼할 권한이 있다고 가르쳤는데, 그러나 구약 말라기서에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하는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고 적혀있다. 바리새인들이 그렇게 집착하는 율법의 조항들과 그것에 대한 해석에서 하나님의 공의와 타인에 대한 존중이 결여되어 있는 경우가 있음을 바리새인 그 자신들은 깨닫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맥아더 목사는 율법이 단순히 외양의 문제에 머물지 않고 "마음의 은밀한 생각까지 통제"한다는 사실을 바리새인들이 이해하지 못했다고 부연한다.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율법에 따른 행위로 하나님 앞에 공로를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은 헛된 망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와 같이, 누가복음 16장에서 예수의 돈에 대한 가르침에 이은 바리새인들의 비웃음, 그리고 그 비웃음에 대하여 바리새인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는 예수의 가르침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서 절정에 이른다. 이 비유에는 재물의 문제와 외식하는 자의 문제가 중첩적으로 엮여있다. 비유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한 부자가 좋은 옷을 입고 날마다 연회를 베푸는데, 그 집 대문에 거지 나사로가 누워있다. 나사로는 꽤 비참한 몰골로 묘사되는데, 개들이 와서 그의 상처를 핥을 정도로 관리가 안 된 몸 상태였고, 그저 부자의 잔칫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허기를 채우려 했다. 그런데 이들이 죽고 난 다음 세계에서 당혹스러울만큼의 충격적인 반전이 일어난다. 거지 나사로는 죽어서 좋은 곳에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고, 부자는 죽음의 세계(in hell)에서 고통을 받고 있다. 부자는 고통으로 괴로워 아브라함에게 나사로에게 말하여 자신에게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혀를 서늘하게 해달라고 부탁하지만, 아브라함으로부터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설명을 듣는다. 나사로가 있는 곳과 부자가 있는 곳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놓여있어 서로 건너갈 수 없다는 것이다. 부자는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자기의 가족들만큼은 살아있을 때 깨달음을 얻어 자기처럼 고통의 세계에 오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아브라함에게 나사로를 자기 가족에게 보내어 이 세계에 대해 설명해달라고 요청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미 모세와 선지자들이 가르침이 그들에게 주어졌는데 그것을 듣지 않는다면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그들에게 가서 전한다 할지라도 그들은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부자의 두 가지 요청은 모두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이 비유는 바리새인들뿐만 아니라 당시 듣는 모든 이에게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부자는 누가 봐도 당시 "회당에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을" 위치의 사람으로 보인다. 부자가 입고 있었던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은 당시 제사장들이나 귀족들이 입는 옷의 형태였고, 또 날마다 즐거운 만찬을 열 정도의 사람이면 사회적 위치도 어느 정도 높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맥아더 목사는 부자가 사회에서 지도적인 위치에 있었을 것이고 바리새인들이 본받으려고 애쓰던 사람의 유형일 것이라고 설명한다. 무엇보다도 비유 속에서 부자는 아브라함을 '아버지'라고 불렀고, 아브라함도 부자를 '얘야'(Son, 아들아)라고 부른다. 부자는 언약의 백성이자 아브라함의 후손이었고, 그들의 이해에서 이들은 혈통을 따라 마땅히 천국에 들어갔어야 한다. 그러나 부자가 다음 세상에서 처한 현실은 음부(지옥, the hell)이었다.

반대로 나사로는 그 사회에서 비참한 자였다. 맥아더 목사의 묘사대로 나사로는 극심한 빈곤 상태였고 혼자서는 스스로 돌보지도 못하는 처지였다. 몸은 상처 투성이었고 관리가 되지 않아 길거리 개들도 그 상처를 핥는 처지였으며, 마치 개들이 부자의 상에서 떨어진 빵조각을 먹는 것처럼 그 역시도 그런 처지였다. 맥아더 목사에 따르면 바리새인과 그 추종자들의 관점에 따르면 그들은 나사로의 그같은 고통을 "하나님의 저주를 당한 증거로 받아들였다." 그들은 나사로를 비참할 뿐만이 아니라 가증스럽게 여기는 무리였다고 맥아더 목사는 서술한다.

이와 같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가 죽고 난 다음의 세계에서 각각 현세와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하게 되었다는 것이 이 비유의 핵심이다. 부자는 음부에 들어갔지만,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갔다. 맥아더 목사의 설명과 같이 아브라함의 품은 유대인들의 관점에서 "아브라함의 식탁에서 가장 영예로운 자리"를 가리킨다.

맥아더 목사는 이 비유를 해설하면서 '지옥'의 주제에 특히 방점을 두었다. 맥아더 목사는 예수께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그 누구보다도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가르치셨는데 특히 이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가장 두렵고 당혹스러운 비유라고 논하면서 "이 비유는 비록 생각하고 싶지는 않더라고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될 사후의 삶과 영원에 관한 진리를 가르친다"고 밝힌다. 아울러 맥아더 목사는 오늘날의 교회가 지옥에 대한 가르침을 소흘히 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현대 포스트모던 시대 사람들의 포괄주의적인 시각에서 '지옥'의 개념은 기독교를 잔인한 종교로 비치게 하기도 한다. 이같은 흐름은 최근 복음주의 진영에서도 흘러서 교회는 지옥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을 상대적으로 경시하여 가르치기를 꺼려한다. 또 한편으로 서구 사회는 '지옥' 용어가 무의미한 욕설 및 분노를 표출하는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기도 한다. 맥아더 목사는 교회가 지옥을 가르치지 않고 또 지옥이라는 용어가 오용되는 것에 대하여 바로 사탄이 원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조심스레 경고한다. 그러면서 지옥에 관한 예수의 가르침은 분명히 "지옥의 두려운 현실과 공포를" 분명하게 경고하며, 이 경고의 가르침의 목적은 종국적으로 인간이 "회개하고 복음을 믿도록 이끄는데 있다"고 부연한다.

이 비유의 결론이 죽고 난 다음 세계에서의 삶은 현세에서의 삶과 같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전혀 다르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예수의 시대 당시 사람들에게도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맥아더 목사는 예수께서 "전통과 종교적 확신을 따르지 말고 회개하라고 권고"하셨음을, 그리고 하나님은 "자기 의를 주장하는 인간의 종교를 경멸"하신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세상에서의 육신적 혈통, 종교적 자부심은 죽은 다음의 세계에서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부자는 죽고 나서 음부에 가서야 깨달았다. 우리에게 다행인 것은, 우리는 지금 현재를 사는 중에 이 교훈을 듣고 깨달을 기회를 얻었다는 것이다. 그때는 부자를 '아들'(Son)이라 부르는 아브라함도 부자를 도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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