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이가 이르시되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1-5)

본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분명히 믿는 자들에 관한 말씀인 것 같은데 단순히 징계 차원의 말씀인가요? 처음 사랑이란 것이 감정 상태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는데 저도 넘어질 때가 많아서 두렵고 혼란스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이는 성경해석법을 잘 몰라서 생기는 의문인데 특별히 상징 비유 묵시가 많은 요한계시록은 더 세심하게 해석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요한계시록의 주제는 로마의 극심한 박해를 받고 있던 당시의 교회와 성도들을 위로 격려하는 것이지 마지막 날의 대환난에 대한 예언으로 성도들을 두렵게 만들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어린 양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흑암의 세력에 대해 완전한 승리를 이미 거두었기에 십자가복음만 붙들고 있는 신자는 어떤 환난이 닥쳐도 구원취소 없이 마지막 날에 새 하늘과 새 땅의 영광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을 해석할 때에 이런 주제이자 전제를 놓치면 안 됩니다.

계시록 2장의 교회에 보내는 편지들은 요한이 밧모 섬에 유배당하고 있을 당시(AD95년경)의 소아시아에 실재했던 일곱 교회들이 수신자입니다. 각 교회들의 영적인 실상을 잘 알고 계신 예수님이 각 교회에 합당한 칭찬과 꾸중의 말씀을 요한을 통해 계시해준 것입니다. 말하자면 그 편지들의 일차적인 주제가 미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본문도 에베소교회에 주신 예수님의 권면이지 성도개인이 구원 후에 짓는 죄와 구원의 관계에 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본문의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긴다”는 문자적인 의미에만 주목하면 마치 개인이 믿은 후에 죄를 지으면 구원이 취소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것도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하니까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열정이 점점 식고 하나님 일에 대한 헌신을 게을리 해도 구원에서 탈락시킨다는 뜻 같습니다.

꾸중이든 칭찬이든 이천 년 전 에베소교회에 주신 말씀이므로 그 의미는 해당 수신자들에게 전달되었고 이미 실현되었습니다. 오늘날의 신자개인에게 직접 해당되는 말씀이 아닙니다. 물론 이 권면을 주신 주님의 뜻은 오늘날의 교회에도 그대로 적용되어져야 합니다. 또 교회는 믿는 자들의 모임이므로 성도 개인도 그 의미를 숙지해 신앙생활에 반영해야 합니다.

그럼 주님이 주신 권면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먼저 칭찬부터 하셨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신다고 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 악한 성도들을 용납하지 않고 잘 치리했고 거짓 사도들의 잘못을 드러내었고 외부의 핍박에 굴복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잘 인내했다는 것입니다.

꾸중은 아주 간단한데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 하나입니다. 이 진술만으로는 정확한 의미를 알 수 없으나 성경의 에베소교회를 설명하는 여타구절과 연결해보면 쉽게 추정할 수 있습니다. 교회가 처음 설립되었을 때 교인들 상호 간에 따뜻하게 사랑하고 구제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범사에 여러분에게 모본을 보여준 바와 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께서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행20:35) 이는 바울이 삼차선교여행을 마치면서(AD55년경) 에베소교회의 장로들에게 권면한 말씀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엡1:15)라고 교회에 사랑이 많다고 바울도 에베소교인들에게 직접 칭찬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처음 사랑’은 성도 개인의 예수님에 대한 사랑이 아니라 에베소교회 내의 성도끼리의 사랑입니다. 바울이 교회를 설립하여 사역할 때보다 요한이 계시록을 작성할 때까지 최하 4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성도들 간의 구제와 사랑이 많이 식었다는 것입니다. 실은 주님이 “버렸다”고 했으니 그런 모습이 아예 없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그런 뜻을 상기 본문에 이어지는 6절이 입증하고 있습니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계2:6) 오직 하나만 남았으니까 앞에서 말한 성도들 간의 처음 사랑은 완전히 없어졌다는 뜻이 됩니다. 대신에 에베소교회 안에 남은 것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 것 하나입니다.

니골라 당은 십자가 복음으로 예수 믿은 후의 죄도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하니까 하나님의 율법과 주님의 계명을 무시하고 자유를 남용하여 도덕적 방종에 빠진 이단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주님께 칭찬 받은 대로 거짓 가르침의 잘못을 정확히 드러내고 미워했던 것입니다. 주님은 “나도 이것(니골라당)을 미워하노라”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니골라 당을 미워한 것은 칭찬받을만한 일이나 그것만 해선 안 된다는 뜻입니다. 교회가 이단을 색출해서 미워하는 일만 했지 성도 간에 사랑과 구제는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바로 오늘날 우리 교회와 성도에 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교회 안의 거짓은 진리를 증거하여서 또 교회 안의 분쟁은 사랑을 실천하여서 극복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악을 정죄 심판하기보다는 선부터 실행하면 악은 이긴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촛대는 성경적 의미로 성령을 상징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합니다. 교회 안에 사랑을 실현하지 않고 그렇게 이단만 정죄하는 교회 안에는 성령의 역사가 중지된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행할 첫째 소명이 그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일곱 교회들은 요한의 계시대로 실천하지 못했거나, 로마가 완전히 교회를 말살했거나, 기독교가 공인 된 후에는 이미 교세가 약해졌고, 오랜 세월 후에 이슬람의 득세 등으로 모두가 역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럼에도 당시의 순전한 믿음을 지닌 교인들은 갑바도기아 같은 석회암 동굴로 피신하여 본문의 권면대로 끝까지 복음을 붙들고 사랑의 공동체를 이루었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주님으로부터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 과실을 받아먹었을 것”(계2:7)입니다.

본문의 “처음 사랑”을, 본문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라도, 신자가 예수님을 처음 믿었을 때의 주님에 대한 열렬히 사랑했던 것으로 확대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주변 성도를 주님의 사랑으로 온전히 섬기지 못하고 교회 안에 잘못만 지적해내는 것도 그런 첫 사랑이 식은 것이 원인이기 때문입니다. 어쨌든 성령으로 거듭난 참 신자라면 본문은 그런 뜻이 아니니까 구원 후의 이런저런 잘못으로 심판으로 떨어질까 전혀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2021/8/17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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