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 박사
이경애 박사

2021년 새해를 맞았다. 역사상 유래 없는 코로나 19를 이겨내느라 어떻게 2020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시간은 흘러 우리는 모두 새해를 맞이하였다. 물리적으로는 어제 졌던 해가 오늘 다시 뜬 것이 무슨 새로울 것이 있겠냐마는, 사람의 마음이란 것이 그런 것이 아니기에 새 달력을 걸고 새 다이어리를 펼치면서 우리는 또 한 해를 기대한다. 전 세계적으로 이 감염병이 빨리 끝나는 것이 우리 모두의 공통된 소원일 것이다. 우리 모두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리는 것처럼 2021년은 마스크에서 보다 자유로워지고, 사람들의 살 냄새를 맡으며 맘껏 사귀고 나누는 날이 오기를 속히 기대한다. 학교 마다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리고, 삶의 이곳저곳 에서 살아 숨 쉬는 사람들의 활기찬 움직임들이 다시 시작되기를 기대한다.

그런데 이러한 우리 공통의 소원과 달리 우리는 모두 개인적인 소원이 있다. 새 다이어리에 올해의 목표를 세워놓고 이루고 싶은 소원을 적어 보는 것은 우리 모두를 설레게 한다. 단지 꿈을 적어 놓았을 뿐인데도 마치 이루어진 것처럼 우리를 들뜨게 하는 것은 그 목표를 달성한 후 찾아올 희열과 높아진 자존감에 대한 기대 때문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또 꿈을 꾸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꿈과 소원 이면에 우리는 또 알고 있다. 그것은 그 목표가 과연 달성될 것인가에 대한 회의적인 생각이다. 꿈꾸고 소원하는 일이 있지만 우리는 또 나 자신을 알고 있다. 시작은 열심히 하지만 또 금방 지치고 무너질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 말이다. 뭔가 열심히 시작했지만 크고, 작은, 외적, 내적 장벽에 부딪히면 용두사미(龍頭蛇尾)가 될 자신에 대한 불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를 유지하고 달성하는 것은 더욱 중요하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나의 원하고 바라는 목표를 분명히 세우고 또 이룰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올해만큼은 2021년 마지막 날, 한 해 동안 꿈꾸었던 소망을 달성했다고 스스로 칭찬할 수 있게 될까?

마가복음 10장 46-52절을 보면 예수님이 여리고를 나갈 때 맹인 한 사람이 예수를 부른다. 그 때 예수님이 맹인에게 질문하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 때 맹인이 대답한다.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자신의 소원을 분명히 이야기했을 그 때 그는 즉시 그의 소원을 이루게 된다. 본문에서 우리는 자신의 한계를 이기고 자신의 필요와 욕구를 담대하게 표현하는 맹인을 본다. 그가 사람들의 눈총을 이기고 예수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자신에게 예수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결국 치유와 회복의 경험을 하게 된 근거는 무엇일까? 그는 자신의 소원이 분명한 사람이었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에게 절실한 것, 자신에게 간절한 기도제목이 분명했던 사람이었다. 그래서 예수가 지나갈 때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중언부언하지 않고 ‘보기를 원한다’는 자신의 소망을 분명히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삶의 소망과 목표가 분명했던 사람이었다. 분명한 목표, 분명한 소원, 분명한 기도제목이 있었던 그는 예수의 소원을 묻는 질문에 주저 없이 답할 수 있었고 그토록 간절한 소원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고 분명한 결실을 맺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한 마음의 소원이다. 원하는 것이 분명해야 그 다음 구체적인 행동전략들이 세워진다. 원하는 것이 불분명하면 축복받을 좋은 기회가 눈앞에 주어져도 놓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원하는 것에 대한 소원과 그 노력이 작심삼일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의 소원이 분명해야 한다.

상담학이나 경영학에서는 목표를 세우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섣부른 행동을 위한 시도보다 중요한 것은 진정 원하는 목표를 세우는 것이다. 왜냐하면 목표가 분명할 때 우왕좌왕하지 않고 그 목표에 따른 행동 전략을 세우며 달성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경우 목표를 세울 때는 반드시 ‘S-M-A-R-T’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즉, 똑똑한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어떤 목표가 똑똑한 목표일까? 다음에 상담학자들이나 경영학자들이 권하는 목표세우기 노하우를 소개한다.

첫째로 ‘Specific’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즉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라는 것이다. ‘인격완성’, ‘심리적 성장’ 이런 것은 한 해 동안 달성한 목표로는 부적절하다. 이러한 막연한 개념은 단기간에 달성할 목표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여정 속에서 달성되기 바라는 과정적인 목적인 것이다. 예를 들어 ‘좋은 사람 되기’보다는 ‘화를 다스리기’가 더 구체적인 목표가 되는 것이다.

둘째로 ‘Measurable’ 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측정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다. ‘가족과 말다툼 안하기’는 측정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일주일에 2번 이하로 다투기’ 라는 목표는 측정 가능하다. 목표는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목표를 달성하는지 여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셋째로 ‘Attainable’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얻을 수 있는, 달성 가능한 목표를 세우라는 말이다. 너무 목표가 거창하면 시작부터 지치게 된다. 자신의 수준을 알고 그에 맞는 적절한 목표를 세우면 서서히 달성해 나가는 재미도 있고, 이에 따라 자존감도 높아지게 될 것이다.

넷째로 ‘Relevant’ 즉, 적절한, 적합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자신의 필요와 욕구, 비전과 방향에 맞는 목표를 세우라는 의미가 되겠다. 남이 한다고, 좋아보여서, 요즘 유행이라서 따라 세우는 목표는, 마치 남의 옷을 입은 것처럼 안 어울리고 불편하다. 내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이 가장 멋이 나듯이, 내 적성 흥미, 상황과 형편에 맞는 적절한 목표를 세울 때 우리는 노력할 힘도 생기는 것이다.

다섯째로 ‘Time-limited’한 목표를 세울 것을 권한다. 막연하게, ‘언젠가는 이루어야지’ 생각해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시간을 정해놓고 정해진 시간 안에 수행할 목표를 설정해놓고 달성해나갈 때 우리는 자신을 객관화시켜 보면서 달성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복음서의 맹인은 원하는 것이 분명했다. 그의 분명한 소원은 그의 날마다의 행동전략을 세우도록 했다. 즉, 잡다한 일상의 주변적인 일에 흔들리기보다 늘 ‘언제 예수님이 지나 가실까’에 집중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이 자신 앞에 지나가실 때 우물쭈물하지 않고 예수님의 이름을 크게 부르게 했을 것이다. 그리고 결국 예수님으로부터 자신의 간절한 소원을 이루는 축복을 얻게 했을 것이다. 인생은 내 맘대로 되지 않지만, 그렇다고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다. 목표가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막연하게 소망한다고 이루어지는 것 또한 아니다. 내 자신에 대한 보다 객관적인 판단, 마음 중심의 간절한 소원, 그리고 이에 기초한 구체적이고, 측정가능하며, 획득할 수 있고, 적합하고 시간제한적인 깔끔한 목표, 이것이 우리의 기도제목이 될 때 오늘 내가 여기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방향이 서게 될 것이다. 올해만큼은 곁가지에 자신을 내어 놓지 않고 보다 밀도 있게, 자신의 소원에 집중하자. 구체적이고 간절한 기도제목을 갖고 하루하루를 틈 없이 살아보도록 해보자. 2021년은 작심삼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 소원을 이룬 성취의 노래를 부르는 한해가 되기를 기대해본다.

이경애 박사(이화여자대학교 박사(Ph.D), 이화여대 외래교수, 예은심리상담교육원장, 한국기독교대학신학대학원협의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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