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우 목사
박진우 목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 <고후 4:18>

저에게는 두 명의 동생들이 있습니다. 제 바로 밑에는 2살 적은 여동생이 있고 그 밑에는 3살 적은 남동생이 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저는 동생들과 거의 싸워 본적이 없습니다. 제가 착해서 그렇다기 보다는 동생들이 저를 잘 따랐습니다. 6번 유산하고 낳은 귀한 자식이었던 저를 눈에 띄게 조부모님과 부모님이 차별했음에도 불구하고 동생들은 저를 잘 따랐습니다. 그런 동생들을 작년에 한국에 가서 10여년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태권도를 해서 싸움을 잘 했던 남동생은 유난히 조용하고 겁이 많았던 저의 든든한 방패막이였습니다. 동네 불량배들이 엄청 맞고 온 저를 대신해 그들을 한명씩 다 응징해 주던 보디가드였습니다. 저희 집이 갑자기 망했을 때는 대학생이었던 저를 대신해서 어린 나이에 가계 일을 책임졌던 형 같던 동생이었습니다. 항상 에너지가 넘치고 주위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던 친구였습니다. 그런 동생을 10여년만에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에너지가 넘치고 건강하던 남동생이 중년의 아저씨가 되어 혈전증이라는 병을 얻어 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제 여동생은 유독 저를 좋아하고 잘 따랐습니다. 나중에 꼭 저 같은 남자하고 결혼을 한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밖에 나갈 때면 항상 제 손을 꼭 잡고 다녔습니다. 어릴 때에 제가 보이지 않으면 부모님이 없어진 것처럼 울곤 했습니다. 다 크고 나서도 종종 팔짱을 끼고 영화도 보러 다니고 자주 함께 놀러 다녔습니다. 제 여동생이 밖에 나가면 다른 남자들이 항상 힐끗힐끗 쳐다볼 정도 외모가 출중했습니다. 그런 여동생을 10여년만에 만났습니다. 어느덧 두 사내 아이를 키우는 목소리가 큰 중년의 아줌마가 되어 있었습니다. 잠깐 산책하러 나갔는데도 무릎이 좋지 않아 일찍 들어와야만 했습니다. 그 모습에 너무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리고 그 두 동생들은 저를 보며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들에게는 그 누구에도 자랑스러웠던 형, 오빠가 미국에서 고생을 해서 병을 얻어 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건강 검진에서 수치가 다른 당뇨인보다 3배 가까이 높은 당뇨에다 합병증이 와서 간과 심장도 좋지 않고 콜레스테롤도 2배가량 높아 하지 정맥까지 걸렸다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런 저를 보고 너무나 가슴 아파했습니다. 오랜만의 만남이 너무 반가웠지만 서로 변해 버린 모습에 서로를 보며 가슴도 아파했습니다. 서로에게 좋았던 시절이 엊그제 같은데 다들 중년이 되어 아픈 모습으로 다시 만났기 때문이었습니다.

세월은 우리를 어릴 때의 좋았던 모습에서 어느 덧 병든 중년의 아저씨, 아줌마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그러한 세월이 참으로 원망스러웠습니다.

여러분들의 삶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미국에서 열심히 노력해서 어느정도 자리를 잡으면 좋은 시간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세월은 우리들에게 아픔을 남기고 빠르게 지나가 버립니다. 어느정도 자리잡으면 효도하겠다고 생각하던 부모님은 어느 덧 세월이 흘러 계시지 않으시고, 계시더라도 함께 여행을 할 수 없을 정도로 늙어 버리셨습니다. 말 못할 때 모든 시간과 정성을 들여 키웠던 자녀들은 말하게 되니까 오히려 영어를 못하는 부모님들을 무시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더니 훌쩍 자기의 삶을 찾아 떠나버립니다. 그리고 그렇게 열심히 살아도 괜찮았던 건강은 어느덧 이곳 저곳이 고장이 나서 이제는 여행을 가는 것도 부담스럽게 되어 버린 겁니다.

여러분들 중에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간을 되돌아보면 "야, 왜 이렇게 천천히 흘러왔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마 한 분도 안 계실 겁니다. 우리 모두는 분명 이렇게 생각할 겁니다. "야, 정말 세월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구나"라고 말입니다. 세월은 우리를 기다리며 가지 않습니다. 그냥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 버립니다. 화살과 같이 지나갑니다. 순간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지나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순간 지나가는 우리의 인생속에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야 할까요? 그것은 영원한 것을 사모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순간 속에 영원을 건지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 땅에 썩어질 것이 아닌 영원한 것을 사모해야 합니다. 영원한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보이는 것은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이 말은 보여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만이 중요하다는 이분론적인 의미가 절대 아닙니다. 잘못 이해하면 이단적인 영지주의 적인 사상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둘 다 중요합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더욱 더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라는 의미입니다.

이 세상에 보여지는 영원하지 않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간다면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영원하지 않는 것을 영원한 것을 위해 살아가야지만 우리의 삶은 후회가 없게 됩니다. 인생은 정말 눈 깜짝 할 사이에 지나가게 될 겁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순간인 인생 속에서 영원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래야지만 나중에 후회가 없는 삶이 될 겁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영원한 하나님을 위해 영원하지 않는 것을 그 분께 드리며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박진우 목사(켈러 한인 제일침례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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