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모 교수
류현모 교수

철학은 진리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학교의 기능은 진리의 탐구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많은 대학들의 교훈이나 건립이념에 진리라는 단어가 포함되어 있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일 것이다. 그렇다면 진리란 무엇인가? 세속학문과 각 세계관이 말하는 진리의 정의를 비교해 봄으로써 각 세계관의 차이를 비교해 보겠다.

진리를 정의할 때는 넓은 의미의 진리와 좁은 의미의 진리로 나눌 수 있다. 넓은 의미의 진리는 어떤 명제가 옳으면 참 혹은 진리, 옳지 않으면 거짓 혹은 비진리라고 구분할 때의 진리이다. 학교시험에서 “다음 문장 중 옳은 것은 T(true), 옳지 않은 것은 F(false)를 표시하라.”와 같은 진-위 문제의 답을 고르는 것과 같다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명제는 넓은 의미의 참이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좁은 의미의 진리는 단순히 참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이고, 절대적이며, 영원토록 참인 동시에 어떤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는 명제를 뜻한다. 그런 면에서 “현재 대한민국의 수도는 서울이다.”라는 명제는 참이라고 할 수는 있어도 영원한 참인가? 혹은 중대한 의미를 함유하는가? 하는 측면에서 좁은 의미의 진리에 포함되기는 어렵다. 각 종교나 세계관이 말하는 진리는 이 범주에 속해야 할 것이다. 좁은 의미의 진리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절대적인 진리가 있다고 인정하는 절대주의, 절대적인 진리를 부정하는 상대주의, 절대적인 진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는 불가지론으로 나눌 수 있다. 각 세계관 마다 좁은 의미의 진리를 대하는 태도는 확연히 다르다.

일신론의 종교에서는 절대주권을 가진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모든 지식의 근원이나 믿음의 근원이 한분 하나님께로 수렴된다. 절대자를 믿으며 그로부터 나오는 절대적인 가치인 절대적 진리를 인정하는 것이다. 반면 다신론의 종교에서는 다양한 신들 사이에 절대성을 비교하기 힘들기 때문에 절대적인 진리를 인정하기 힘들다. 범신론에 이르면 세상의 모든 것이 신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진리의 절대성은 더욱 약해진다. 불교나 뉴에이지에서 상대주의를 택하는 것은 이런 범신론적 세계관 때문이다.

무신론의 세계관에서는 절대자인 신의 존재를 부정함으로써 절대적인 진리를 주장하기 힘들다. 인본주의는 신의 자리를 이성을 가진 인간이 차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인간 집단의 이성이 합의를 통해 절대 진리와 비슷한 것을 세우려는 시도를 한 적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필요성을 채우는 것이 진리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양한 인간들 안에서 진리에 대한 합의가 불가능한 것과, 어떤 것을 절대화하기 위해서는 파시즘이나 공산당의 수용소와 같은 독재와 강요가 불가피함을 경험하게 된다. 포스트모던은 이러한 경험을 한 인본주의자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고안한 세계관으로 진리에 대해서도 극단적 상대주의의 태도를 취한다.

우리의 근대적인 공교육에 영향을 미친 일본과 미국의 공교육은 진리를 추구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일본의 공교육은 명치유신 이래 국가에 충성하고 천황에게 충성할 것을 교육하는 황국신민교육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공교육 역시 1930년대부터 존 듀이와 같은 인본주의 교육철학자들의 주도로 국가유지에 필요한 국민을 양성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우리의 공교육 역시 국민교육헌장에 드러나 있는 것처럼 민족중흥을 이끌 국민교육이 목표이지 진리의 추구와는 거리가 있다.

이런 이유로 우리가 공교육을 통해서 배우는 것은 국가에 필요한 국민, 직업인 혹은 전문가가 되기 위한 상식과 정보이다. 이는 사회를 살아가고 직업을 얻는데 도움은 되겠지만 진리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은 아니다. 즉 학교에서 배우는 대부분의 내용은 부분적으로 이치에 닿는 일리(一理) 있는 정보들에 불과하다. 우리가 처음 접한 정보를 나의 세계관에 편입시키기 전 그것을 평가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그 정보에 대해 찬성과 반대의 주장을 충분히 비교검토 하여 정보를 지식의 수준으로 끌어 올릴 수 있어야 한다. 또 그 지식이 진리의 지위를 획득하려면 통전적인 성경의 메시지에 어긋나지 않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 세계관의 틀은 이런 검증과정을 충분히 거친 진리로만 구성되어야 한다.

우리는 학교에서 세속의 학문을 공부하면서 진리를 탐구한다고 말한다. 이런 이유로 존경받는 선생님의 말이나, 위인이나 대학자 등 권위자의 가르침을 쉽게 나의 진리로 인정하는 경향이 있다. 그 때문에 유명인이 하는 말이나 SNS에서 떠도는 말도 쉽게 나의 진리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넓은 의미와 좁은 의미의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것도 한 몫을 하는 것 같다.

예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는 말씀으로 자신이 유일한 진리이며, 영원한 생명의 구원을 얻는 유일한 길임을 선언하셨다. 기독교에서 정의하는 진리는 정보나 지식의 수준이 아닌 우리의 존재의 목적, 삶의 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삼위일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눈앞에 예수님을 보면서도 “진리가 무엇이냐?”라고 반문한 빌라도처럼 되지 않기 위해 진리를 향한 눈을 항상 열어두어야 할 것이다. 예수 외에 구원 받을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기 때문이다.

묵상: “유일한 길 예수를 주장하는 기독교는 너무 독선적이다.”라는 세상의 비난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류현모(서울대학교 치의학대학원 분자유전학-약리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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