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영 변호사
정소영 미국 변호사

얼마 전 동네 빵집을 갔다. 사람들이 바깥에 길게 줄을 서 있어서 꽤 입소문이 난 곳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빵집 문 앞에서 체온을 재고 QR코드를 작성해야 빵집 입장이 가능했다. 그래서 그냥 빵을 사지 않고 와버렸다. 마스크를 쓰는 것까지는 그렇다 하더라도 빵 하나 사는데 나의 개인 정보를 몽땅 담아 주는 건 영 찝찝해서였다. 게다가 바로 옆에 있는 채소가게는 안 그러는데 참 유난하다 싶었다.

며칠 전에는 시골에서 작은 교회를 지키고 계시는 목사님, 사모님과 오랜만에 안부 전화를 나누다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워낙 작은 교회여서 성도가 몇 분 안 되는 곳인데 주일마다 공무원이 나와서 공예배를 드리는지 안 드리는지 감시를 한다고 했다. 더 기가 막힌 건 그 교회를 담당하는 공무원이 교회 반주자로 섬기던 자매라고 했다. 이 자매는 동네를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지켜내야 한다는 군청의 엄명에 따라 자기 교회의 예배를 막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사실 그곳은 꽤 유명한 관광지라 카페나 다른 식당들은 모두 영업을 하는 데 말이다.

최근 정의당이 발의한 '포괄적 차별금지법'도 사회적인 파장이 엄청나다. 많은 법률가가 이런 법은 전 국민을 역차별하고 범법자를 만들 가능성이 있다며 적극적으로 반대를 하고 있는데도 정의당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국회 차원에서 차별금지법이 제정되지도 않았는데 시, 도 조례 차원에서 미리 법을 바꾸려고 시도하는 경우도 있다. 자유민주주의, 헌법정신 같은 원칙은 어디로 가고 자기가 뜻을 세우면 누가 뭐라던 그냥 밀어붙이고 보자는 심산인 것 같다. 온 국민의 삶을 결정적으로 좌우하게 될 법에 대해 국민의 절반 이상이 반대를 해도 눈을 막고, 귀도 막아버리는 모양새다.

법무부의 '포괄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 개선위원회'에서는 현재 민법 제781조에 있는 '부성 우선주의'를 폐지하고 부모가 합의하여 자녀의 성(Family Name)을 결정하라고 권고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아버지의 성을 따르게 되어 있는 현재의 민법 체계가 다양한 가족 형태와 평등한 가족문화를 지향하는 시대적 조류에 맞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문제는 이렇게 부모가 서로 합의하여 자녀들의 성을 정하다 보면 한 가족 안에서도 아이들의 성이 다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몇 세대만 지나면 근친상간도 흔한 일이 되어 버릴 것 같다.

정부에서는 9천억이란 빚을 내어 온 국민에게 통신비를 2만 원씩 나누어 준다고 한다. 코로나로 생활이 어려워진 국민들을 돕는다는 좋은 취지이긴 하지만 그 돈이 그만큼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공짜로 돈을 나누어준다고 하니 받는 입장에서 나쁘지는 않지만 나라 살림을 하고 다음 세대도 생각해야 하는 국가지도자들이 나랏돈을 쌈짓돈 써버리는 듯 쓰는 게 맞는 일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사회의 질서와 원칙이 무너지고 있는 걸까. 이유를 모르겠다.

어떤 사람들은 이 모든 일이 가정을 해체하고 국가 권력에 모든 것을 종속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면서 영국의 소설가 조지 오웰이 묘사한 '빅 브라더의 시대'가 도래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또 다른 사람들은 미국의 유명한 급진 좌파 혁명가였던 사울 알린스키의 '사회주의 전략'이 시행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미국의 정치 지도자 힐러리 클린턴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멘토로도 유명한 사울 알린스키는 주로 지역사회를 조직화하여 혁신을 끌어내는데 관심이 많은 혁명가였다. 그런 그가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할 수 있는 토양을 만들기 위한 전략으로 꼽은 몇 가지가 있는데 한번 들어볼 만하다.

먼저 그는 국가의 의료체계를 장악하고 국민의 생활 수준을 낮추고 가계 빚을 늘리는 방식으로 국가가 국민 생활의 모든 면을 통제해야 한다고 했다. 또한 교육계를 장악하고 계층 간의 갈등을 조장하라고 했다. 특이한 것은 그가 학교와 정부에서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제거하라고 했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대신 국가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순종하게 되어 통제하기가 쉽다고 한다.

유대인인 사울 알린스키의 중간 이름(Middle Name)은 데이비드(David)이다. 사울 다윗 알린스키(Saul David Alinsky)라는 말이다. 그의 초기 공동체 이론은 사도행전의 초대교회에서 모델링을 했다고 하는데 그의 이름 속에서 하나님을 경외하던 다윗의 믿음은 사라지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했던 사울의 불신과 불순종만 남았나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지금 우리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경험하고 있다. 개인의 자유가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데도 무엇을 잃어버리고 있는지,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 정부의 비합리적이며 자의적인 통제 정책에 대해서도 '지금은 팬데믹'이라는 말만 하면 아무도 비판하지 못한다. 모두의 일상이 망가지고 있는데도 우리가 다시 원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소망을 주는 지도자를 찾을 수가 없다.

지금 발생하고 있는 모든 혼란이 그저 전 세계적인 팬데믹의 부작용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면 좋겠다. 그러나 누군가가 자신의 권력이나 이데올로기를 확장하기 위해 이러한 위기 상황을 활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생각이 드는 건 멈출 수 없다.

도대체 누가, 왜,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깊이 성찰해 보아야 할 때이다.

정소영(미국 변호사, 세인트폴 세계관 아카데미 대표)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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