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유대민족의 위기와 아브라함

권혁승 박사
권혁승 박사

나라를 상실한 채 남의 나라에 포로 잡혀와 생활하는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분명히 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들이 가장 앞세우는 민족적 정체성은 ‘아브라함의 후손’(시 47:10)이었다. 이것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신들이 다른 민족과 구별되는 독특한 위치에 있음을 강조한 것이다. 페르시아시대에 이어 헬라제국 시대가 되면서 유대인들은 더 없이 큰 정체성의 위기를 만났다. 그러한 위기는 헬라제국이 유대인들을 억압하여 강제적으로 헬라문화를 수용케 하려는 정책에서 기인되었다.

마침내 주전 167년 셀류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4세(주전 175-164)는 유대교신앙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고 대신에 헬라의 신에게 제사할 것을 선포하였다. 그러한 금령을 어기는 유대인들에게는 가차 없는 박해를 가했다. 이에 하스모네 가문에 속하는 제사장 맛따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들은 헬라제국에 대항하여 ‘마카비전쟁’을 일으켰다. 이들은 주전 164년 12월 헬라에 의하여 더럽혀진 성전을 다시 되찾아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릴 수 있었다. 이를 기념하는 유대교 명절이 성전봉헌축제인 ‘하누카’이다. 하스모네 가문 중심으로 일어난 마카비전쟁은 결국 승리를 거두어 하스모네 왕조(주전 142-63)를 세웠고, 로마가 이스라엘을 점령하기까지 1세기 정도 독립이 유지하였다.

마카비 형제들에 의한 저항세력은 자신들의 입장을 내세우기 위해 아브라함을 크게 부각시켰다. 그들에게 아브라함은 시련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지켜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라는 인정이었다.(마카비 상 2:52) 마카비 형제들의 아버지였던 제사장 맛타디아는 아들들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아들들아, 용기를 내어 굳세어져라. 그리고 율법을 굳게 지켜라. 이것이 너희들이 차지할 영광이다”(마카비 상 2:64). 그것은 곧 마카비 형제들이 헬라세력과 대항하여 싸울 수 있었던 신앙적 기둥이었다.

헬레니즘에 정면으로 대항하는 입장은 그 이후로 계속 이어졌다. 대표적인 집단은 주전 150년경부터 사해의 서북단 지역에 수도원 형태의 집단공동체를 이루고 생활을 하였던 쿰란 에세네파 사람들이었다. 이들에 의하여 저술된 ‘희년서’(The Book of Jubilees)는 당시 사람들에게 아브라함은 어떤 인물이었는가를 잘 보여준다. 모두 50장으로 구성된 ‘희년서’ 중 12장-23장은 아브라함에게 할애된 내용들이다. 그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아브라함 관련 내용을 풍부한 상상력으로 더욱 세밀하게 다듬은 이야기들인데, 포로기 이후 민간 사이에서 단편적으로 떠돌아다니던 아브라함과 관련 이야기들을 모아서 일관성 있는 내용처럼 배역시킨 것으로 판단된다.

‘희년서’에 나오는 아브라함 관련 이야기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첫 번째는, 아브라함은 유일신관을 지닌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자기 아버지 데라가 만든 우상들을 불태워 버리고 우상과 관련된 점성술을 버린 인물로 부각되어 있다(희년서 12:17). 두 번째로,는 아브라함의 신앙과 그에 따른 도덕성이다. 특히 올바른 예배와 제사를 드린 인물, 제사장에게 처음으로 십일조를 바친 인물, 할례를 올바로 시행한 인물이 등이 자세히 설명되고 있다.

세 번째로는, 아브라함을 통한 이스라엘의 선택이다. 다른 민족을 위한 아브라함의 역할은 간단하게 언급한 반면에 이스라엘의 특별한 위치는 지나칠 정도로 강조되어있다. 그러한 입장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이삭과 야곱을 통해 이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면서도 이스마엘에 관하여는 아무런 언급이 없는 것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희년서 15:30).

이방문화에 저항하는 입장에서 아브라함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또 다른 책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 파괴 이후에 나온 ‘아브라함의 묵시’이다. 이 책은 아브라함이 하늘로 올라가 그곳에서 본 환상들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아브라함은 이 환상들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의 미래가 어떠할 것인지를 자세하게 보여준다. 이 묵시에서 아브라함은 단순히 환상가로서의 역할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악 곧 우상숭배자들과 성전을 짓밟은 이방세력들과 맞서서 싸우는 인물이다, 그러한 모습은 아브라함의 시대 상황을 주후 1세기 상황으로 투사한 것으로 보인다. 처음에 아브라함은 우상의 파괴자로 나오지만, 후에는 보다 전투적인 유일신론자로 부각된다, 이는 희년서의 아브라함보다 더욱 강력한 모습이다.

아브라함은 참 이스라엘 곧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을 보전시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싸우는 정치적 인물이다. 이방 문화의 영향 아래에서 그에 동화되거나 적응되어가는 당시의 위기적 상황 속에서 아브라함은 이스라엘과 유대교를 지켜나가는 영웅적 인물로 조명되었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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