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교와 아브라함

권혁승 박사
권혁승 박사

유대교는 바빌론 포로기(주전 586-536년) 이후 모세 오경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주전 1000년 경 사울과 다윗으로부터 시작된 고대 이스라엘 왕조는 6세기 초 바빌론제국에 의하여 완전히 무너졌다. 국가 전체가 초토화되었으며 예루살렘 도시 및 성전은 파괴되었다. 그리고 사회지도층을 비롯한 엘리트 지식층과 전문기술자들은 대부분 바빌론으로 강제 이주되었다. 페르시아의 바벨론 정복으로 반세기에 걸친 유대인들의 포기기는 끝나게 되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해방과 자유가 주어졌다. 유대인 포로들 중 일부는 고국 이스라엘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하고, 에스라와 같은 영적 지도자가 나타나 유일신관을 종교적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민족 역사를 재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마리아를 비롯하여 주변 국가들의 적대적 태도나 급변하는 국제정세, 그리고 열악한 환경으로 인한 귀환자들의 곤궁한 생활 등은 유대교의 새로운 출발을 순탄하게 만들어주지 않았다. 특히 페르시아에 이어 등장한 헬라제국은 세계를 정복해 나가면서 자신들의 점령지역이 헬라문화권 안으로 들어오도록 강요하였다. 이러한 정책은 자연히 유대교의 유일신관과 부닥쳤고, 마침내 마카비 형제들이 주도하는 저항운동으로 나타났다. 헬라제국에 뒤이어 로마제국도 유대인들에게 계속되는 비극을 안겨주었다.

당시 유대교는 하나님의 통치를 가장 큰 이상으로 삼고 있었기 때문에 로마의 세속적 지배를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은 66년 로마에 대항하는 첫 번째 유대인 전쟁이 일어나게 하였고, 결국은 70년 예루살렘이 로마군에 의하여 점령당하면서 성전이 불타버리는 비극을 가져왔다. 그리고 135년 로마를 향한 두 번째 저항운동도 실패로 끝나면서 유대인들이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렇게 국가적 비극이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 유대교는 태동되고 발전하였다. 유대교에서 아브라함이 차지하는 비중과 의미는 무엇일까?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은 유대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할 수밖에 없다. 유대인의 존재 근거 자체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1. 초기 유대교와 아브라함

유대교는 구약성경을 최고의 경전으로 삼고 있다. 그 중에서 모세 오경은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경전이다. 유대교가 태동되던 당시는 바벨론 포로기라는 국가적 위기를 겪고 있었던 때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국가나 땅과 같은 정치적 체제를 전면에 내세울 형편이 아니었다. 그런 이유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인 모세 오경에 근거를 두고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갔다. 유대교의 본격적인 시작은 에스라의 활동과 관련이 있다. 에스라의 개혁운동은 무엇보다도 모세오경을 그 근거로 삼았다.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 사회는 율법 중심의 새로운 공동체였다. 국가나 성전 같은 기존 제도 없이도 이스라엘 민족이 오늘까지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도 그들이 율법 중심의 공동체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그런 과정에서 아브라함은 특별한 의미를 지닐 수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의 조상이었던 과거의 아브라함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여 또 다시 이스라엘을 탄생시켜야 하는 새로운 조상이 되어야 했다.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처해있던 형편 역시 포로기 이후 유대인들이 처해있던 시대적 정황과 많은 면에서 유사했다. 아브라함은 자녀를 낳을 수 없었을 뿐 아니라 땅을 소유할 수 있는 자격조차 갖지 못했다. 그것은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처한 상황과 방불했다. 땅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모두가 외국 세력의 지배 아래에 있었으며 열악한 경제적 상황은 더 이상 번성한 나라를 기대할 수 없었다. 아브라함이 오르지 하나님의 약속에만 기대를 갖고 있었던 것처럼, 유대인들도 하나님의 말씀에 미래의 희망을 둘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절박한 상황이 아브라함과 관련된 창세기의 내용들을 현재의 형태로 정리하고 배열하는 결과를 가져왔을 것이다.

창세기 속의 아브라함에서 살펴본 것처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세 가지 약속을 주셨다. 하나는 자손과 관련된 것으로, 그의 자손들이 번성하여 큰 민족을 이룬다는 약속이다. 두 번째는 땅에 관한 것으로, 그와 그의 자손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약속이다. 마지막 세 번째는 다른 모든 민족들에 관련된 것으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다른 모든 민족들에게 축복을 주신다는 약속이다. 이러한 약속들은 ‘언약’이라는 형식을 통하여 더욱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두 약속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시 사회에서 계약을 체결하면서 사용하였던 상호맹세형식을 빌어 자신의 약속을 확증해주셨다. 포로기 이후의 유대인들은 구약 전체를 통하여 더욱 체계적으로 발전된 언약신학을 지니고 있었다.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들은 그러한 언약신학의 체계 안에서 자신들의 것으로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

유대교가 태동되던 초기 상황에서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회복이었다. 포로기를 거치면서 거대한 제국의 힘을 직접 경험한 유대인들은 하나님에 대한 회의나 불신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더구나 예루살렘과 성전이 모두 파괴된 상태에서 자신들의 눈앞에 서있는 바벨론의 웅장한 신전 건물은 그들의 신앙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었다. 그런 점에서 아브라함은 그들의 공허한 영적 상태를 채워줄 가장 적합한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인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을 향하여 가장 절대적 신앙을 지닌 인물이었다. 불가능 속에서 하나님을 믿어 그 믿음이 인정되었던 아브라함은 절망에 처한 유대인들에게 믿음 안에서의 새로운 희망을 던져준 인물이다.

헬라의 종교 억압정책이 점차적으로 가중되어가던 주전 2세기 중반 ‘벤 시라’라고 하는 인물이 책 한 권을 저술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유대인 조상들이 얼마나 훌륭한 인물들이었는가를 강조하면서 유대인으로서의 자긍심을 고취시켰다. 그런 인물들로서는 모세, 아론, 사사들, 선지자들을 비롯하여 아브라함도 포함되어있다. 특히 벤 시라는 아브라함의 완벽한 자화상을 다음과 같이 자세하고 소개하고 있다.

“아브라함은 많은 민족의 뒤대한 아버지이며 그의 명성에는 한 점의 티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율법을 준수하고 그분과 계약을 맺었다. 그는 자기 살에 그 계약의 표시를 새기고 시련을 당할 때도 그의 충실함이 증명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맹세로서 약속하시기를 그의 자손을 통하여 모든 민족을 축복하고 땅의 먼지처럼 전성하게 하여 그의 자손을 별과 같이 높여주고 그들을 이 바다에서 저 바다까지, 이집트 강에서 땅 끝까지를 유산으로 주겠다고 맹세하셨다”(44:19-21).

완전한 인물로 소개된 아브라함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율법을 철저히 지킬 뿐만 아니라 할례를 통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자신의 몸에 새긴 인물이다. 그는 무엇보다도 토라(모세오경)의 요구를 완전하게 행하여 도덕적으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곧 토라에 대한 순종임을 강조하여 그를 유대교의 대표적인 인물로 부각시켰다. (계속)

권혁승 박사(전 서울신학대학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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