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랭브르 형제가 그린 '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 중 7월(맥추절)의 그림.

중세 채식필사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작품을 꼽으라면 대부분 '베리공의 기도서'를 들 것이다. 이 기도서는 그 이름도 '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LES TRE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이다. 글자 그대로 '매우 화려한(very rich)' 필사본이다.

프랑스에서는 역사적·문화적 중요성으로 볼 때 채식필사본의 제왕이라는 칭호와 함께 모나리자와 대등한 프랑스 미술의 정상에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필자는 지난 35년 동안 중세 성서화 자료와 개화기 한국학 관련 고서를 찾아 유럽과 미국 전역을 여러번 순회하였는데 2009년 여름에는 프랑스 콩테박물관(Conde Museum)을 두 번째로 방문하였다.

파리에서 약 40km 북쪽에 있는 샹티성(Castle Chantilly)안에 있는 콩테박물관에는 약 1,000점의 회화와 많은 드로잉(2,500여점), 판화(2,500여점)가 있는 미술관뿐만 아니라 약 3만권의 희귀도서를 소장한 도서실이 함께 있다.

이 중에서도 '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를 비롯한 1,500여점의 채식필사본이 있어 프랑스에서도 루브르박물관 다음가는 소장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작품전시가 연대순이 아니라 작품 성격에 따라 자연스럽게 겹겹이 걸어두는 19세기 박물관 전시공간으로 꾸며져 있어 전시실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사방의 작품을 감상하노라면 세상 근심을 털어낼 수 있는 좋은 여행지라 할만하다.

이 기도서는 플랑드르의 미니아튀르(Miniature, 세밀화) 화가인 랭브르(Limbourg) 3형제인 헤르만(Herman), 폴(Pol), 얀(Jan)이 1413~1416년 베리공을 위해 이 기도서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1416년 당시의 유행병으로 모두 죽고 기도서의 끝마무리는 69년 후 쟝 콜롬베(Jean Colombe)가 완성했다.

프랑스왕 샤를 5세의 동생이었던 베리공은 진기하고 아름다운 물건을 수집했던 소장가와 미술후원자(Patron)였다. 그의 주요 필사본 수집목록만 보더라도 성경(Bible) 14권, 시편집(Psalter) 16권, 성무일과서(Breviary) 18권, 그리고 15권의 기도서(Book of Hours)가 있다.

기도서(Book of Hours)에는 교회 절기가 표시된 캘린더와 기도문, 시편 찬송, 그리고 성자들의 축일 등 행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일반적으로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 또는 시도서(時禱書)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하루에 여러번 시간에 맞추어 드리는 기도와 축일 기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중세로부터 전해오는 로마카톨릭 사제들이 사용하던 '브레비아리(Breviary)'를 성무일과서로 번역하는 것과 구별하기 위해서 일반적으로는 기도서라 부른다.

베리공의 기도서는 416페이지의 세밀화(213×292mm)로 3,000개 이상의 아름다운 두문자와 130장의 채식화(이중 6장은 전면도판)로 구성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12개월의 캘린더 그림이 중심이 되고 있다.

1월에는 베리공 저택에서의 새해 축제, 2월에는 눈 덮인 농가 풍경 등 매월 행해지는 귀족들의 행사와 농민들의 노동을 특수물감을 사용하여 그렸다. 꽃과 광석에서 채취한 울트라마린의 파랑색 광채는 오늘날까지도 그 빛을 발하고 있다.

매월의 달력 그림 사이에는 수태고지, 에덴동산, 동방박사와 목자들의 경배, 십자가 강가, 지옥과 타락한 천사 등 여러 장의 성서화가 포함되어 있다.

에덴동산이라는 주제는 일반적으로 기도서에 나타나지 않는다. 베리공의 기도서에는 '수태고지' 그림 바로 뒤에 전면도판으로 그려져 있는데 당초 이 기도서 구상에는 없었으나 뒤에 삽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중세 신앙에서 아담의 타락으로 인해 인간구원을 위해 메시아가 새로운 아담으로 세상에 오신 것을 믿는 신앙조류와 관계가 있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 '베리공의 매우 화려한 기도서'의 에덴동산

에덴동산 그림은 한 도판에 4개 장면을 그리고 있다. 왼쪽에는 금단의 나무를 휘감고 상반신은 여인의 몸으로 변신하여 유혹하고 있는 뱀의 손으로부터 이브(하와)가 사과를 받고 있다. 다음은 꽃이 핀 초원에 한쪽 다리를 꿇고서 몸을 돌려 사랑스런 모습으로 이브를 바라보는 아담에게 이브가 사과를 건네주고 있다.

세 번째 장면은 이 사과를 먹은 그들이 눈이 밝아져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게 되었고, 푸른 옷을 입은 하나님 앞에서 불순종에 대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 책망을 듣고 있다.

오른편의 마지막 장면은 붉은 날개에 광휘(光輝)가 빛나는 대천사가 에덴동산으로부터 아담과 이브를 쫓아내는 실낙원을 그렸다.

그리고 그림 가운데의 성전을 상징하는 금빛의 고틱 조각품과 같은 구도의 동쪽문은 에덴동산의 죄가 없고 평안하며 자유로운 느낌을 랭부르 형제가 천부적 영감으로 시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브는 당시의 여성 패션과는 다르게 풍만한 가슴, 날씬한 허리 그리고 약간 튀어나온 아랫배 등으로 우아하게 그려졌다. 그녀의 우아하고 날씬한 모습은 이미 몇 년 전에 랭브르 형제가 '아름다운 기도서(Belles Heures)'에서 성 카타리나(St. Catherine)를 그릴 때 보다 더욱 호리호리하게 그렸다.

'베리공의 기도서' 중 에덴동산 도판은 국제 고틱양식 중 최고의 것으로 마치 조미료를 치지 않은 담백한 음식같이 중세 성서화의 아름다움을 긴 여운으로 우리에게 전하고 있다.

■ 강정훈 교수는…

강정훈 신성대학교 교수
강정훈 교수는 1969년 제7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 뉴욕 총영사관 영사(1985~1989)를 거쳐 조달청 외자국장, 시설국장(1989~1994), 조달청 차장(1994~1997) 등을 지내고 1997~1999년까지 조달청장으로 일했다.
행정학박사(연세대·서울대 행정대학원·성균관대학원)로 성균관대학교 행정대학원 겸임교수(2004~2005), 2003년부터 현재까지는 신성대학교 초빙교수를 맡고 있다. 또 (사)세계기업경영개발원 회장(2003~2008)을 역임하기도 했다.

미암교회(예장 통합) 장로이기도 한 강 교수는 1992년 성서화전시회를 개최했으며 1994년에는 기독교잡지 '새가정'에 1년 2개월간 성서화를 소개하는 글을 연재했다.

그는 35년간 중세의 성서화 자료와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의 저서를 모으고 있다. 그 중 한국학 및 한국 근대 초기 해외선교사 저서 및 자료 675점은 숭실대 학국기독교박물관에 2011년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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