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증을 전하는 윤형주 장로.
“서대문 형무소에서 절망감과 수치심, 배신감의 깊은 나락에 빠져 있던 저에게 찾아온 친구가 있었습니다. 그분은 제가 당한 고통과 수치심, 그리고 배신감을 다 알고 계셨습니다. 저보다 더 큰 고통을 체험한 친구였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제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가 하는 것을 알려주셨고, 지금껏 제 인생의 동반자가 되셨습니다. 그분이 이 집회의 주인이십니다. 감방에서 만난 그 친구를 여러분에게 소개합니다. 그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세시봉 윤형주 장로가 20일(현지시각) 퀸즈한인교회(담임 이규섭 목사) 예배당에서 아름다운 기타선율과 목소리로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찬양을 열창했다. 그가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70년대, 내용물이 뭔지도 모르고 후배 가수에게 받은 선물이 대마초였고, 그는 마약 소지죄로 서대문 형무소에 수감돼 인생의 나락을 경험했었다. 윤 장로는 퀸즈한인교회 금요철야기도회에 참석, 바로 그 때 자신에게 다가온 예수님의 사랑을 간증했다.

억울하게 수감돼 인생의 좌절을 맛본 그에게 서대문 형무소는 인생의 마지막 자리였고 삶을 포기하는 자리였다. 그러나 윤형주 장로는 이날 “제가 끝이라고 생각한 그 자리가 그분에게는 시작인 자리였다. 내가 볼 때는 저주의 자리였지만 그분에게는 그곳이 축복의 자리였다”고 강조했다.

윤형주 장로는 이날 자신이 친구로 소개한 예수님에 대해 “진정한 평안을 가져다 주는 분”이라고 간증했다. 세상의 명성과 돈을 얻은 연예인들에게, 공허함은 미치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윤형주 장로는 “예수님은 이런 세상의 돈이 주지 못하는 평안을 주셨다. 묶인 나에게 자유를 주시고 갇힌 나에게 해방을 주셨다”며 간증을 이어나갔다.

형식적으로 가정예배를 드리며 커 왔지만 마음 안에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던 그였다. 의학공부가 싫어 음악을 하던 그는, 70년대 세상의 부귀와 명예를 모두 얻었던 인물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불행한 사건에 휘말려 인생의 바닥을 경험하고, 세상을 향한 원망과 분노로 영혼은 더욱 황폐해져 가고 있었다. 어머니가 성경책을 교도소에 주고 갔지만, 처음에는 보기도 싫다며 교도소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걷어차 낱장이 널부러진 채로 방치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낱장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성경의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인 것을 느낀 것이다. 그날로 성경을 정독했다. 읽고 또 읽으며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인생의 밑바닥 좌절과 절망을 경험하던 그 자리는 평안이 임하는 자리로 바뀌었다.

“그 경험이 제 인생을 180도 바꾸게 합니다. 그리고 저의 교도소 전도사역이 시작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전에는 제 목소리가 제 것인줄 알았습니다. 내 몸에서 나오는 것이니까 나의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목소리를 태어날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세계의 내로라 하는 성악가들의 목소리도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감방에서 내 목소리의 주인은 비로소 하나님 것임을 알게 됐고, 교도소 수감자를 대상으로 찬양으로 하며 제가 만난 예수님에 대해 증거했습니다. 교도소가 눈물 바닥이 되면서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저는 인기와 영광 꼭대기에 있다가 가장 처참한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됐고 길을 찾았습니다.”

윤형주 장로는 이날 다양한 찬양을 선보이면서 참석한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심었다. 2003년 카네기홀 무대에 섰을 때의 감동과 감사의 마음도 함께 전했다.

윤형주 장로는 “카네기 홀에 서는 것은 제 꿈이었고 하나님은 그 꿈을 결국 이뤄주셨다. 꿈이 없는 자녀는 죽은 자녀이고 꿈이 없는 교회는 죽은 교회다.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는 위대한 꿈을 먹고 살았다. 잘났든 못났든, 배웠든 못배웠든 그들에게 하나님이 찾아와 주시고 그들에게 꿈을 이루게 하신 것을 볼 수 있다”며 “2012년 만만하지 않은 시기다. 꿈을 붙들고 사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란다”고 전했다.

윤형주 장로는 94세가 된 지금은 뉴저지에 거주하고 있는 노모에 대해서도 증거했다. 윤형주 장로는 “사실 이번 뉴욕 방문은 94번째 생신을 맞으시는 어머니를 보고, 함께 누워 어린 날로부터 기억하는 어머니에 대한 추억을 말씀드리고 업어드리기 위해 온 것”이라며 “자녀 6명을 낳고 기르시며 온갖 힘든 일을 겪고 헌신하시며 인생길에 지치고 쓰러질 때마다 찬송을 부르시며 위로를 얻으셨는데, 그런 찬송의 위로가 동일하게 지금의 자녀들에게도 임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간증했다.

윤형주 장로는 이날 사촌형 윤동주 시인을 추모하며, 아버지가 들려준 윤 시인의 삶에 대해서도 전했다. 윤동주 시인은 후쿠오카 감옥에서 그렇게 보고자 했던 조국의 광복을 6개월 남겨둔 채 의문의 주사를 맞고 돌연사한다. 윤형주 장로는 “윤동주 시인은 광복이 온다는 것을 성경적으로 믿었던 사람이다. 윤동주 시인이 지은 시가 애국시라고 하지만 우리 가족이 보기에는 신앙시”라고 말했다.

유족 대표로 윤동주 시인의 시신을 한국으로 인계해온, 윤형주 장로의 아버지는 일본에서 유명 대학을 나왔지만 이후 한평생 일본말을 입 밖에 내지도 않았다고 한다. 윤형주 장로는 “윤동주 시인은 죽었으나 그의 신앙시는 지금도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고 있다. 이것이 신앙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또 윤형주 장로는 미당 서정주 시인, 서진규 박사가 예수를 영접하게 된 이야기를 전했으며, 달변으로 집회를 이끌었다. 은혜로운 찬양을 선보이며 성도들의 마음을 감동시키기도 했으며, 인기 CM송을 불러 흥을 돋구기도 했다. 세시봉 시절의 히트곡도 선보였다.

윤형주 장로는 “이 자리에 있는 성도들의 찬송이 자녀들에게 유산처럼 전해지고 귀한 포석이 되기 기대한다”며 “2012년 한인사회의 소망이 되는 퀸즈한인교회가 되길 바란다”고 집회를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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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형주 #세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