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온누리교회 양재 성전에서 2014 일터사명컨퍼런스 '토크콘서트'가 진행됐다.   ©이지희 기자

[이지희 기독일보·선교신문 기자] "왜 사막이 생기냐면, 햇빛만 계속 비치기 때문입니다. 저도 형통한 것만 좋아하고 소망하면서 살았는데 사막을 보면서 햇빛만 있는 것이 결코 축복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지난 7일 온누리교회 양재 성전에서 열린 2014 일터사명컨퍼런스 '토크콘서트'에서는 두 명의 크리스천 직장인이 하나님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한 경험담을 솔직하게 털어놓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토크콘서트는 문화연구원 '소금향' 박정관 원장의 진행으로 리비아 대사를 지낸 외교부 조대식 기획조정실장과 YPP코퍼레이션 백종만 회장이 각각 전쟁 가운데 외교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다했던 경험과 사업가로서 신뢰했던 이들의 배신에도 용서하고 품어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된 경험 등을 말했다. 이 둘은 모두 "어려움을 이겨낸 당시에는 '내가 해냈다'는 착각 속에 빠져 있었지만, 시간이 흘러 뒤돌아보니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였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했다.

오만, 리비아 등 7개 나라에서 근무한 조대식 실장은 2011년 리비아 대사로 부임한 지 2주 만에 내전이 발발하면서 전쟁 한복판에서 사는 독특한 경험을 했다. 조 실장은 당시 한국 교민 1천여 명과 기업이 고용하고 있던 직원 1만 4천여 명 등 1만 5천여 명의 탈출을 지휘했다. 그는 "내전 중 리비아에서 1백만 명이 탈출했는데, 내전 발발 직후 1주일 새 40~50만 명이 일시에 탈출하면서 규모가 작은 트리폴리 공항은 아수라장이었다"고 회상했다. "몇 시간 대기하다 공항에 겨우 뚫고 들어갔지만, 비행기는 부족하고 치안을 유지하던 리비아 군의 말을 안 들어 사상자도 많이 나온 상황이라 어려웠다"고 말했다.

그는 또 "3개월간 9천 번 정도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이 공습하는 비상상황에서 자체적으로 물, 식량, 기름 등을 조달해야 했다"며 "내전이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나서도 리비아 공사 현장을 떠나지 않던 3~4백 명의 한국인을 대량학살이 일어나기 하루 전 탈출시키는 아슬아슬한 상황도 있었다"고 말했다.

▲박정관 목사(왼쪽)와 조대식 전 리비아 대사(오른쪽)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지희 기자

조 실장은 "가장 어려웠던 일은 자꾸 이탈하려는 대사관의 현지인 직원들을 추슬러서 3개월간 탈출 지휘 사령부가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며 "처음에는 제 리더십이 탁월한 줄 알고 착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제가 현장에 남은 것이 직원들의 동요를 수습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음이 불안하지 않았냐는 질문에 "9천 번의 포격, 무정부 상태에서 살면서도 한 번도 불안함을 느끼지 않아 저도 의아했다"며 "제가 떠날 때 신실한 무슬림 신자들이 '저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분인가,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나'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나중에 들었다"고 말했다.

조 실장은 "리비아에서 1년 반 동안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나중에 서울에 와서 묵상하는 가운데 사막에서 제 평생 가장 깊게, 가장 가깝게 하나님을 만난 것을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20여 년 전 캐나다에서 세례를 받고 이틀 후 아라비아 사막 오만으로 가서 하나님을 깊게 만났다. 이후 20여 년 만에 다시 사하라 사막 리비아에서 10번 정도 생명의 문턱을 오가며 하나님과 깊이 만났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평소에는 하나님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데, 너무 위급하면 하나님의 등에 아예 업혀 가는 것을 알게 됐다"며 "리비아에서 내가 한 것은 하나도 없고, 완전히 하나님 등에 업혀서 간 것을 알았다"고 고백했다. 이어 "선진국이나 살기 좋은 나라에 아무리 가봤자 하나님과 내가 관계가 깊지 않다면 가장 어려운 곳이다"며 "가장 어려운 전쟁터일지라도 그곳에서 하나님과 내가 가깝다면 좋은 곳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조대식 실장은 또 "햇볕만 내리쬐면 사막이 생긴다"며 "내 삶에 형통한 것만 있어도, 그것이 결코 축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또 사막에 살면서 삶의 우선순위가 확실히 정리됐다며 "다른 사람의 시각에서 자유로워져서 하나님의 눈으로 볼 때 필요한 것은 행하고, 아닌 것은 행하지 않더라도 불안해하지 않게 됐다"고 말했다.

▲박정관 목사(왼쪽)와 백종만 회장(오른쪽).   ©이지희 기자

한편, 백종만 회장은 이날 산골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농부가 될 뻔하다가 선생님의 도움으로 미션스쿨에 진학하고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일, 미국종합무역상사의 한국 지사에서 일하다 국제컨퍼런스에서 당시 GE 부회장을 만나 사업자금까지 지원받은 일, 사업 투자금을 갖고 도망갔던 지인을 우연히 뉴욕의 작은 한식당에서 만나 용서했던 일 등을 말했다.

또 그는 1983년 대한항공 007편 여객기에 예약까지 하고 못 탔는데, 그가 타려던 비행기가 사할린 부근에서 피격당한 일도 말했다. 백 회장은 "하나님께서 그때 저를 살려주신 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잘 살겠습니다'라고 기도했는데 이후 까마득히 잊고 살았다"며 "15년 후 뉴욕에서 서울로 오는 비행기에서 83년 대한항공 여객기 피격으로 동생을 잃은 누이를 만났다"고 말했다. 공교롭게 그 동생의 영어 이니셜과 나이가 그와 똑같았고 하던 일도 비슷했다. 그는 죄스러움을 느끼고 하나님께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백종만 회장은 가장 아끼고 신뢰했던 부하 직원이 IMF 때 회사의 핵심기술과 사업아이디어를 빼돌리고 떠나 힘들었던 순간도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이러다 죽을 것 같아서 2년 동안 새벽마다 한 시간 이상 울면서 조깅했다"며 "그래도 그 친구를 축복하며 달렸는데,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나자고 했다"고 말했다. 한 여름에 겨울 파카를 입고 나타난 그 직원은 '죽을 죄를 지었다'며 용서를 빌었다. 백 회장은 그 직원의 가족부터 회사의 다른 직원들을 일일이 설득해 다시 회사로 불렀고, 빚까지 갚아주었다. 나중에 이 사연을 당사자에게서 직접 들은 한 대기업의 부부가 백 회장을 좋게 보면서 회사 비즈니스가 크게 일어나기도 했다.

백종만 회장은 "하나님께서 좋은 만남을 주셨다고 느꼈을 때, 또 하나님이 나를 살리신 것을 깨달았을 때 항상 바로 교회에 달려가 감사기도를 드렸었다"며 "나는 용서할 수 없던 이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긍휼의 마음을 주셨고 용서하게 하신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토크콘서트에서는 송정미 사모(CCM 아티스트)와 종트리오의 심삼종 섹소포니스트, 김명종 영화음악가, 김종완 기타리스트가 찬양과 연주로 찬양하고 기독 직장인들을 격려하는 멋진 무대를 선사하기도 했다.

▲김종완(사진 왼쪽부터) 기타리스트, 송정미 사모, 심삼종 섹소포니스트, 김명종 영화음악가가 공연을 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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