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서대문구의 한 꽃집. 매년 어버이날이 되면 이화여대 학생들과 동네 주민들로 북적이던 이곳은 8일 오전에도 적막감이 감돌았다. 매장 안에는 예약된 꽃다발 몇 개만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있었고, 출입문이 열릴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 꽃집을 운영한 지 6년이 됐다는 박모(62) 씨는 올해 어버이날 풍경에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경기가 너무 안 좋다 보니 손님이 20% 줄었으며 4만원대 상품을 찾았는데, 요즘은 1만~2만원대로 눈높이가 내려갔다”고 전했다. 코로나19 시기에도 버텨냈던 박 씨지만, 올해처럼 썰렁한 어버이날은 처음이라고 한다.
신촌역 근처에서 30년째 꽃집을 운영 중인 황모(50대) 씨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가게 한쪽에 쌓인 카네이션 다발을 가리키며 “작년보다 손님이 반으로 줄었다. 나라 분위기도 뒤숭숭하고 소비심리도 얼어붙은 것 같다. 30년 동안 장사하면서 올해가 제일 힘들다”고 말했다.
고물가와 장기적인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서, 올해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을 포함한 전통적인 선물 대신 실용적인 품목을 찾는 소비자들이 눈에 띄게 늘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운영하는 리서치 플랫폼 ‘라임(Lime)’이 지난달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버이날 받고 싶은 선물로는 ‘용돈’이 70.8%로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이어 의류(25.1%), 여행·관광상품(24.3%), 건강식품(22.1%), 카네이션(16.7%) 순으로 집계됐다. 부모님께 드리고 싶은 선물 역시 ‘용돈’이 83.9%로 가장 많았고, 건강식품(52.1%), 의류(32.5%), 건강가전용품(20.1%), 여행·관광상품(16.9%)이 뒤를 이었다.
선물 예산도 눈에 띄게 줄었다. 라임 조사에 따르면 어버이날 예상 지출 금액은 평균 29만원으로, 지난해보다 약 8만원 가량 감소했다. 연구진은 경기 불황과 고물가의 지속을 그 원인으로 분석했다.
이 같은 흐름은 카네이션 수요에도 반영됐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화훼유통정보에 따르면, 5월 1일부터 7일까지 서울 양재 화훼 경매장에서 거래된 카네이션 절화는 총 63만399단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9.9% 줄었다. 카네이션 거래량은 해마다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직장인 정모(31·서울 영등포구 거주) 씨는 “꽃도 좋지만 요즘 가격이 너무 올라서 같은 값이면 영양제나 현금을 드리는 게 더 실용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올해는 가족끼리 모여 저녁을 먹고 용돈을 드리는 방식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에는 순금 배지나 금 주화를 선물하는 새로운 경향도 나타나고 있다. 일부 금은방이나 편의점에서는 어버이날을 겨냥해 실물 금 상품을 내놓고 있으며, 실용성과 투자 가치까지 동시에 갖춘 선물로 주목받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속되는 불경기 속에서 소비자들의 선물 문화가 가성비 중심으로 재편되고 있다”며 “비용을 최소화하면서도 부모님에게 실질적인 만족을 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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