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욱 교수
신성욱 교수

나는 캐나다에서 미국으로 내려와서 보조 출연자로 무명 배우생활을 하다가 성공했던 짐 캐리(Jim Carry)를 무지 좋아한다. 그는 한 때 가난해서 방을 구할 돈도 없이 폐차장에 버려진 차에서 잠을 자고, 맥도날드 햄버거 한 개로 하루 끼니를 때우는 등 매우 어렵고 힘든 생활을 했다. 하지만 그 생활을 벗어나려 죽을 힘을 다한 결과 마침내 코미디 분야에서 할리우드의 주연급 간판 배우로 성공하게 된다.

우선 나는 그가 자신의 꿈을 이룬 사람이기에 좋아한다. 하지만 내가 그를 좋아하는 더 큰 이유는 그가 언급한 다음 한 마디 때문이었다. 그는 이런 명언을 남겼다.

“I think everybody should get rich and famous and do everything they ever dreamed of so they can see that it’s not the answer.” ~ Jim Carrey

무슨 뜻일까? “나는 모든 사람이 부자가 되어 유명해지고, 자신이 꿈꿔온 것을 모두 이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그것이 자신이 바라던 정답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멋있는 말이다. 물론 자신이 꿈꿔온 바를 성취하지 못한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다. 그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취를 다 이룬 유명인이 되었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는 만족할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살아오면서 우린 이런 얘기를 많이 들어왔다. 어릴 때 자신의 우상인 복싱 세계챔피언을 마음에 품고 그처럼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하다가 마침내 당시 챔피언으로 승승장구하던 바로 그 우상과 시합해서 통쾌하게 그를 K.O 시키고 새로운 챔피언이 된 한 외국 선수가 기억난다. 자신의 우상을 꺾고 챔피언이 된 그에게 기자가 소감을 물었다. 그의 대답이 지금도 잊히질 않는다.

“허탈합니다. 내가 챔피언이 되면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지금 나는 너무 허탈합니다.”

당시 나는 그의 말을 겸손하고도 사치스런 언행으로 받아들였다. 그 말을 듣는 이들에게 교훈을 남기기보다는 분노를 자아내게 하는 말로 들렸을 가능성이 컸으리라 생각한다. “자신이 꿈꾸던 자리에 올라가 보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그 대단한 자리에 올랐다고 공자님이나 할 수 있는 저런 말을 하다니 진심으로 하는 말인가? 그저 ‘꿈을 이룬 지금 너무너무 행복해요!’라고 한마디 하면 될 텐데 말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나 역시 어릴 때 내가 꿈꿔오던 것을 조금씩 이루어가고 있는 현시점에서 그가 한 말을 돌아보니, 그건 사치스런 호사가가 내뱉는 말이나 인격을 갖춘 이의 겸손한 말이 아니라, 진심이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사람들은 자신이 생각하던 꿈을 이루면 더없이 행복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자기 소원을 이룬 이의 대부분은 ‘허무함’을 호소한다.

물론 우리 대부분은 그 사실도 모른 채 꿈을 향해 도전하다가 중간에 포기들을 하고 만다. 이유는 꿈을 이루는 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숱한 장애물을 헤쳐나갈 용기와 모진 고난과 난관을 버텨낼 인내가 필요한데, 그걸 뚫고 성공하는 이가 아주 드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 캐리가 한 말을 이해 못하고 세상을 떠날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내가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거나 자신의 꿈과 소원을 이룬 이들이 그 후 남긴 말에 주목해볼 팔요가 있다. 결론은 모두가 한결같이 그게 ‘자신이 찾던 정답’이 아니었다는 고백이다.

그럼 우리 삶에서 진정한 정답은 무엇일까? 자신이 성취하고 난 뒤에도 허탈감을 가지지 않고 지속적으로 만족감을 갖고 기뻐하고 감격해할 우리 생의 진정한 정답은 무엇일까?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에 ‘정답’(The answer)이 나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그렇다. 정답은 따로 있었다(There's another answer for that).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우리가 가야 할 유일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다.

우리 생이 여기서 끝이라면 어떻게 살아도 좋다.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한 맘대로 살아도 좋다. 하지만 우리 생은 죽음 이후 영원히 지속된다.

때문에 우린 영원한 세계를 보고 살아야 한다. 영원한 죽음 같은 고통이냐 영원한 감격의 생명이냐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려고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 그게 그의 꿈과 비전도 아니었다. 그 자리가 주어졌어도 그것으로 만족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사명을 깨닫고 그 일에 최선을 다하다 갔을 뿐이다. 자기가 받은 직분과 권력으로 형제들과 후손들에게 ‘축복을 유통하는 자의 사명’을 다했을 뿐이다.

그리고 애굽 땅에서의 부귀영화에 만족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자기 선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어 가나안 땅에 입성할 것을 내다보며 자기 해골을 메고 떠나라는 유언을 형제들에게 남기고 갔다. 그 가나안 땅은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오늘 우리 역시 마찬가지다.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고 예수 그리스도만 의지하면서 매일 매순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가 추구해야 할 유일한 정답임을 기억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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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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