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죽어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6:6~7)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내 속 곧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하지 아니하는바 악을 행하는 도다”(롬 7:17~19)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1. 문제의 핵심

살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생각합니다. 여기서 핵심이란 단어는 crux인데 이 말은 다른 한편으로는 ‘십자가’라는 뜻이 됩니다. 그렇다면 왜 ‘십자가’라는 뜻을 가진 ‘크럭스’라는 단어가 ‘핵심’ 혹은 ‘중대한 시점’이라는 말과 연관성을 가집니까?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진정으로 모든 것의 중심이요 핵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도 예수님을 기준으로 기원전과 기원후로 나누어집니다.

만일 십자가가 없다면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나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달리신 십자가는 사망의 늪에 빠진 인류에게 생명의 길, 화목의 길, 완전한 공의의 길을 열어준 유일무이한 구원의 사건이자 영원히 살 수 있는 영생으로의 기회를 제공하신 축복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위대한 선물을 인류에게 선사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는 그 참혹한 십자가의 형벌의 고통을 몸소 겪으시고 죽으시어 모든 사망의 권세를 모조리 꺾어버리신 것입니다. 영어권에서 사람들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낄 때 종종 사용하는 표현이 있는데 그것은 ‘익스크루시에팅’(excruciating)이라 합니다. 이것 역시 라틴어에서 유래한 말로 원래 ‘십자가로부터’(out of the cross)라는 뜻입니다. 고통의 원천도 십자가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인류 역사에 있어서 십자가 사건보다 더 중요하고 획기적이고 급진적이며 완전히 다른 차원의 사건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십자가 사건은 인류 사회에 결정적인 영향력과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그런 십자가 사건도 벌써 2천 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빛이 바래지고 현대인들에게 십자가는 교회 첨탑에 세워진 광고물이거나 사람들의 장식품으로 전락했습니다. 지금도 십자가를 통한 영적인 약식은 풍성하게 제공되고 있지만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육적인 양식에 매달린 채 점점 영적인 굶주림에 휩싸여 고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현대인들의 이러한 영적 결핍증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문제의식을 가지고 질타와 해결방안을 제시한 사람이 있었다면 그는 단연 영국의 에이든 윌슨 토저(1897~1963) 목사일 것입니다. 오늘은 그의 대표적 저술 중 하나인 ‘철저한 십자가’의 내용을 여러분에게 소개함으로써 거룩한 삶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논하고자 합니다.

2. 두 방면의 사역

그는 먼저 십자가의 혁명적 능력을 논합니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로마제국이 시행한 십자가 처형을 이야기합니다. 로마제국은 타협이나 양보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오직 승리를 향한 진군뿐이었습니다. 수많은 국가와 민족이 로마제국의 말발굽 아래 무릎을 꿇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마저 희생양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죄수들과 같이 그리스도도 십자가에 매달아 처형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나사렛 출신의 불쌍한 한 청년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것에 허탈해 했습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 물론 주님은 수차례 자신이 다시 살아날 것을 예고하셨지만 - 예수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것으로 드디어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입니다. 새로운 차원의 세계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사건은 그 이전과 이후를 가르는 역사의 분기점이 된 것입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남을 통해 사망의 시대가 마감되고 영생의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이보다 인류사회에 더 좋은 희소식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복음’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주님은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 복음을 온 세상에 실어나를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사도들은 각자에게 주어진 지역으로 나아가 주님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을 한 마디로 말한다면 바로 ‘십자가’입니다. 넓은 세상 그 어느 곳을 가든지 간에 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갔고 그들이 선포하는 현장에서는 동일한 혁명적인 능력이 나타났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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