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박형룡 박사 묘소 이장 감사예배
故 박형룡 박사 묘소 이장 감사예배가 진행되고 있다. ©소강석 목사 페이스북
故 박형룡 박사(1897~1978)의 묘소 이장 감사예배가 최근 경기도 파주시 청암동산에서 드려졌다. 고인은 국내 대표적 1세대 개혁주의 장로교 신학자로 알려져 있다.

청암동산에 있던 고인의 묘는 주변 환경 변화 등으로 인해 청암교회 설립자이자 예장 합동 측 총회장을 지난 故 이환수 목사의 묘 옆으로 이장됐다. 故 박형룡 박사는 청암교회 공동설립자이기도 하다.

이장예배에서는 소강석 목사(새에덴교회 담임, 예장 합동 증경총회장)가 ‘떠난 후에도 말하는 사람’(히 11:4)이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소 목사는 “박형룡 박사님께서는 1933년에 한국교회 최초로 조직신학 박사학위를 취득하셨다. 44년간 조직신학을 강의하신 대표적인 보수주의와 개혁주의의 장로교 신학자”라고 했다.

이어 “특별히 그분은 조선신학교의 몇몇 교수들이 자유주의 신학의 노선에 섰을 때 성경의 절대 영감과 무오설을 주장하셨다”며 “이는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메이첸 박사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었고, 미국 남침례신학교에서 기독교 변증학을 전공하는 데서 확고한 신학적 신념을 갖게 되신 것”이라고 했다.

소 목사는 “특별히 그의 첫 저서인 ‘기독교 근대신학 난제 선평’에서 그는 축자영감설과 성경 무오설을 주장했다”며 “그래서 당시 만연되어 있던 자유주의 신학적 사상을 한 방에 날려버리셨다”고 했다.

그는 “특별히 박형룡 박사님께서는 조직신학의 서론부터 종말론까지 전집을 다 쓰셨다. 우리 한국 기독교 신학의 기본 틀을 세워주셨다”며 “그래서 우리 교단의 강도사 고시의 조직신학은 대부분 박형룡 박사의 전집에서 문제를 출제했다”고 했다.

소 목사는 “그러므로 박형룡 박사님은 우리 교단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사의 황금서판에 불멸의 기록으로 기록될 분”이라며 “그런데 상대적으로 그분의 애국운동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는 위대한 신학자였고 위대한 애국자였다. 그분은 숭실전문대학 졸업반 시절 3.1 만세운동에 동참해 경찰에 연행이 되었다”고 했다.

그는 “또한 1920년 숭실대 졸업반 전도 여행시 목포에서 전한 전도 설교 ‘하늘의 검’이 반일 감정을 부추기고 민심을 요동시킨다는 이유로 재판을 받고 목포 감옥에서 10개월간의 수감생활을 겪으셨다. 이처럼 그분은 위대한 애국자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소 목사는 “그는 한국교회를 떠나신지가 오래되셨지만 아벨처럼 믿음으로써 말씀을 하고 계신다. 그의 믿음, 그의 신학적 사상과 신념, 그리고 그의 저서를 통해 그분은 지금도 계속해서 말씀하고 계신다”고 했다.

소 목사는 故 박형룡 박사가 천국에서 한국교회를 향해 “한국교회여, 신학이 좌경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학이 자유주의화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세상에 사는 동안 왜 목숨을 걸고 보수신학을 지키려고 한줄 아십니까? 그것만이 교회가 사는 길이고 교회가 세워지는 길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외치고 있을 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분은 믿음으로써 말씀을 하시고 우리 역시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해서 故 박 박사님의 가르침을 기리며 그 공로를 길이길이 기념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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