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호 교수
장재호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조교수, 종교철학/과학신학)

Ⅳ. 인공지능이 야기할 미래 목회와 신학적 담론

오픈AI의 공동 설립자였던 일론 머스크(Elon Musk)는 2023년 2월 15일 세계정부정상회의에 화상으로 참가해 인공지능이 “문명에 가장 큰 위험이 될 수 있다”고 말했고, 또한 “규제에서 벗어난 AI 개발은 핵폭탄보다 더 위험하다”라고 경고했다. 3월 28일에는 미국의 비영리단체인 ‘삶의 미래 연구소’가 “모든 AI 연구소에 GPT-4보다 강력한 AI 개발을 최소 6개월간 중단할 것을 요청한다”는 내용의 공개서한을 발표했다. 이 서한에는 애플 공동 창업자인 스피븐 워즈니악(Stephen Gary Wozniak), 테슬라 최고 경영자 일론 머스크, 「사피엔스」와 「호모데우스」 등을 저술한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등이 이름을 올렸다.

또한 ChatGPT 같은 생성형 AI에 대한 개인 정보 침해의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탈리아는 개인 정보 유출 우려로 인해 ChatGPT 접속을 잠정 차단하기로 했으며, 영국, 아일랜드, 프랑스 등도 규제 여부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인공지능 개발이 생각보다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반면, 이에 대한 법적 규제가 정립되지 않아 혼란 가운데 있는 상황이다.

물론 우려의 목소리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인공지능 기술을 개척해 컴퓨터 과학 분야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튜링상을 수상한 얀 르쾽(Yann LeCun)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AI를 중단하자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며, 유용하고 유익한 기술의 위험성을 조작해 사람들을 두렵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Bill Gates)와 딥러링 AI창립자인 앤드류 응(Andrew Ng)은 AI 개발을 6개월간 유예하자는 의견에 반대하며, 이 기술에 큰 이점이 있음을 말했다.

이처럼 인공지능의 개발이 초래할 미래에 대해 현재 과학계를 포함한 사회 곳곳에서 긍정과 부정이 팽팽하게 나뉘는 상황이다. 그렇다면 신학적 차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의 개발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동시에 어떤 노력을 해 나가야 할까?

첫째로, 과학 기술의 방향성에 대한 신학적·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과학 기술, 유전자 편집 기술 등이 발전하면서 생명 연장의 꿈은 이제 현실로 다가왔다. 심지어 인공지능을 통해 구원을 추구하는 포스트휴머니즘,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한 논의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이런 논의들은 그 기저에 인간 중심적인 사고가 내재되어 있다. 전철과 이경민은 포스트휴먼 시대에 제기되는 인간 중심적인 사고를 극복하기 위해 다음과 같이 제안한다.

겸손의 어원은 흙(humus)이다. 아담, 그리고 인간은 흙에서 왔으며(창 3:23) 흙으로 돌아간다. 우리가 인간임을 벗어날 수는 없지만, 스스로를 중심에 두는 태도를 극복하면 ‘인간중심주의’, 더 나아가 ‘인간우월주의’(human supremism)를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수억 년 전에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았지만, 현재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원소들은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우주 공간에 존재했다. 우리가 죽으면 우리 몸을 구성했던 원소들을 우리는 다시 우주 공간에 환원해 다른 물질/생명의 재료가 될 것이다. 창세기 2장 7절에 보면, 인간은 “땅의 흙”으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인간만이 흙으로 창조된 것이 아니다. 2장 19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라고 기록되어 있다. 새와 동물도 인간과 같은 흙으로 창조된 것이다.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 기술의 발전이 인간우월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이에 대한 신학적 담론을 이어가야 한다.

둘째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성경적 가르침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창 1:27) 존엄한 존재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의 모양을 체화하며, 영혼을 지닌 존재이며, 미래적 잠재성을 지니고, 다른 유기체와는 구별된 특별한 존재로서 문화 위임을 수행할 책임적 존재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대부분의 부분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일 경우, 인간이 하던 일을 상당수 인공지능이 대체하게 될 것이며, 따라서 인간은 소위 ‘잉여 인간’으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과학은 학문적 특성상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어떤 논리적 주장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 부분은 기독교계에서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

셋째로, 앞으로의 시대는 영적인 것에 대한 관심이 지금보다 높아질 수 있다. 물론 과학 기술의 발전이 종교의 쇠퇴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이는 종교계가 앞으로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달려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을 기계가 대체하게 되면, 인간에게는 시간적 여유가 많아질 것이고, 이는 인간의 본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다. 우리는 누구이며,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죽음 이후에는 어떻게 되는지 등에 관심도는 지금보다 증가할 것이고, 이에 대한 대답을 제공하는 종교에 관심을 보일 수 있다. 또한 메타버스를 통한 초월적 경험이 현실화되는 시대가 되면,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초월적 역사를 받아들이는 것도 지금보다 수월해질 수 있다. 다만 이렇게 되기 위해서는 기독교계가 인공지능을 포함한 과학 기술의 발전에 관심을 기울이며, 사회와 함께 호흡해 나가야 한다.

넷째로, 인공지능 개발이 야기할 빈부 격차 문제의 해결에 앞장서야 한다. 앞으로는 인공지능을 활용할 수 있는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으로 나뉘어 빈부 격차가 심화될 우려가 있다. 대부분의 직업을 기계가 대신하게 되고 인간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우리는 ‘기본 소득’ 문제를 다시 심도 있게 논의해야 한다. 예수는 “포도원 비유”(마 20장)를 통해 인부들이 포도원에서 일한 시간보다 각자의 필요에 따라 품삯을 지급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셨다. 또한 바울은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갈3:28)라고 말하며, 인간 사이에 차이가 있으면 안 됨을 강조했다. 18세기에 존 웨슬리는 개인의 영적 갱신 운동에만 머물지 않고 사회 변혁에 앞장섰다. 그는 전쟁 반대, 노예 해방, 언론의 자유,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우리들도 빈부 격차 문제를 포함해서 앞으로 직면하게 될 여러 문제들에 대해 성경적 관점에서 대안을 제시하며,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일에 앞장을 서야 한다.

다섯째로,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되면, 전통적으로 신학에서 제기되어 왔던 질문들을 수정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인가?”(창조론), “인공지능은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할까?”(인간론), “인공지능에게 도덕적 책임을 부여해야 하는가?”(신정론), “인공지능도 구원의 대상인가?”(구원론), “인공지능은 인류의 멸망을 초래할까?”(종말론) 등의 질문들이 제기될 수 있다. 이런 질문들은 인공지능이 인간 수준의 지능을 갖게 되는 것을 전제하지만, 튜링 테스트(Turing Test)의 관점에서 보면, 그리고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 인공지능은 인간의 수준에 도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 반대하는 주장들도 있지만, 앞으로 인공지능이 계속해서 발전하게 되면 이와 같은 신학적 질문들은 계속해서 제기될 것이다.

Ⅴ.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ChatGPT를 포함한 인공지능이 제기하는 신학적 담론들을 목회 윤리를 중심으로 고민해 보았다. Ⅱ장에서는 ChatGPT가 목회 현장에 미칠 영향을 살펴보았고, Ⅲ장에서는 ChatGPT가 야기할 윤리 문제를 설교와 신앙 지도의 측면에서 살펴보았다. Ⅳ장에서는 인공지능이 야기할 미래의 목회에 대해 신학적으로 고민해 보았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우리가 두려워하거나 배척한다고 해서 멈춰지지 않는다. 배척하면 할수록 기독교는 사회에서부터 점차 고립될 것이고, 사회를 향한 기독교의 영향력도 점차 감소할 것이다. 황병준과 박도훈이 우려하는 것처럼, “현대 교회가 첨단 기술이 파급하는 부정적인 면으로 인해 소극적 자세로 대한다면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따라가지 못하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고전적인 종교로만 남을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계에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서 신학적·윤리적 가이드라인도 제시해야 하며, 과학 기술이 주는 장점도 선교에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 시대에 맞는 신학적 담론들도 계속해 나가야 한다. 신학대학에서도 미래 시대의 목회를 준비하는 과목들을 늘려가야 한다.

ChatGPT를 포함한 인공지능의 발전이 앞으로 세상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우리는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ChatGPT의 개발사인 오픈AI는 “우리의 연구가 인공 일반 지능(artificial general intelligence), 즉 문제들을 인간 수준에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결국에 도달할 것”으로 믿는다. 앞으로 인공지능은 곧 인간 수준에서 문제를 해결하거나 그 이상의 기능을 보이게 될 때가 올 수도 있다. 분명한 것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보다 세상을 빠르게 변하고 있고, 한국 교회가 이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하면 못할수록 기독교는 사회로부터 점점 고립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바울은 스스로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는 사람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 이유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고전 9:22) 했기 때문이다. 최인식이 지적하듯이, “어떠한 신학이든지 그 신학이 역동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교회가 현장에서 피할 수 없는 전통문화 혹은 현대문화의 제 현실들을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 시대에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해서는 기독교계가 적극적으로 인공지능 담론에 임해야 한다. Ⅳ장에서 언급한 신학적 담론들 외에도 인공지능이 발전함에 따라 계속해서 새로운 신학적 질문들이 제기될 것이다. 인공지능의 수용할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해 복음 전도에 지혜롭게 활용해야 하고, 우려되는 부분은 올바른 방향으로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인 대안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끝)

장재호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 조교수, 종교철학/과학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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