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교수
채영삼 교수(백석대)

8년 전, '상급'에 관해 쓴 글이다. 혹시, 하나님 나라에 '상급'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은혜와 영광을 이 땅에서 얼마나 자신의 것으로 소유했는지에 따라, 그가 그분의 나라에서 '해 같이' 빛날 때 그 빛나는 영광의 정도가 다를 수 있는, 그런 정도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각 성도가 '다른 영광과 빛'의 크기로 빛난다 해도, 그것은 오직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영광'을 반영하는 정도이기에, 거기에는 도무지 '자랑할 것이 없는' 그런 상급일 것이다. 그 나라는 더 많이 가진 사람이 더 많이 베풀고 섬기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천상의 존재이신 '인자'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목숨을 많은 사람들을 위해 내어주심으로써, 그분의 나라에서는 권력이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설정해주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권력을 '그 나라의 왕이신 그분'이 사용하신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용하는 자들은 그 나라에서 살기 어려울 것이다. 애초에 들어갈 수 없을지도 모른다.

2015년 5월 12일 채영삼 교수 글

상급으로 '후리지' 말라. 종종 하늘에서 받는 상급을 강조하며 헌신을 독려하는 경우를 본다. 더 많이 헌금하고 더 많이 봉사해야 하늘에서 더 큰 상급을 받는다는 논리다. 듣는 성도들은 자극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경쟁심리를 자극하고 어떤 경우에는 시기심이나 우월감 열등감 자괴감까지 느끼게 만든다.

과연 그럴까. 신약에서 차등 상급을 조건으로 헌신을 독려하는 부분은 드믈다. 아예 상급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도 성립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혹시 다른 상급들이 있다해도 그것이 이 세상에서처럼 행위에 따른 차별적 보상이거나, 경쟁심리를 자극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에 따른 비참함 같은 감정을 불러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천국에서 더 많이 가진 사람이, 혹시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남보다 우월감을 갖는 일은 상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거기는 높은 자가 낮은 자를 섬기는 곳이며, 강한 자가 약한 자의 짐을 담당하는, 세상과는 전혀 다른 질서가 통치하는 영역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상급론으로 성도들을 '후려'서는 안 될 것이다. 성도들도 인간의 시기와 욕심을 자극하는 상급론에 휘둘릴 필요가 없다. 헌신은 상급이 동기가 아니다. 어느 어머니가 자식에게 덕보려고 자식을 기르는가.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다. 오직 자유케 하는 복음과 참된 사랑에서 나오는 수고의 기쁨을 가르치라. "오직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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