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3. 경이감의 상실

최더함 박사
최더함 박사

우리에게 베푸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말로 표현할 길이 없습니다. 정말로 사도 요한의 권면처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셨는지를 보고 살아야”합니다. 우리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였고 세상에 속한 자였으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대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를 잡은 자를 따았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가 가운데서 우ㅠ리 육체의 욕심을 짜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더니”(엡 2:1~3)

이런 우리를 하나님이 입양하여 아들로 삼아 하늘에 속한 모든 축복을 받고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보다 더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이 어디 있습니까?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에 있다는 말입니까? 그저 놀라울 따름입니다. 에베소서 다음 구절을 계속해서 읽어봅니다.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2:4~6)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에 놀라워하고 살아야 합니다. 바닷물을 잠재우신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제자들은 놀라워하였습니다. “저이가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하고 놀라워했습니다. 그러나 진짜 놀라워해야 할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옥에 가야 할 우리를 천국으로 자리를 옮겨주신 것입니다. 지옥 불 속에서 영원히 고통을 당하고 살아야 할 우리를 낙원으로 거처를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지옥 같은 이야기는 단지 겁을 주기 위해 꾸며낸 것으로 치부합니다. 그들은 성경의 이야기가 마치 소설 같은 것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이 재미 삼아 장난친 것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은 이들을 지켜봅니다. 이들의 말로가 무엇인지 하나님도 알고 주님도 알고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도 알고 있습니다. 노아 시대에 홍수가 나기 하루 전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무슨 일이 벌어질지 상상조차 하지 못한 채 살고 있었습니다. 몇 해 전에 쓰나미가 동남아시아를 덮쳤습니다. 산더미 같은 바닷물이 해안을 덮칠 때까지 사람들은 낌새도 차리지 못하고 놀다가 다 쓸려 죽음을 맞았습니다. 불신자들의 삶은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고 맙니다.

그런데 더더욱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이러한 경이감을 잃고 산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사실에도 별로 놀라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말을 쉽게, 또 자주 들어온 까닭에 우리 자신이 본질상 하나님의 자녀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우리 속담에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잊고 산다”는 말처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기 전에 우리의 정체를 까마득하게 잊어버린 듯합니다.

성경적으로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만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참된 아들이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양자가 되어야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당연한 듯 여기지만 초대교회의 신자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양자의 개념은 그들에게 참으로 혁신적인 생각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들을 자녀로 받아들이셨다는 사실에 경탄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계속)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최더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