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죄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자기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힘으로 죄를 이겨내라는 설교를 들었습니다. 의지가 부족하면 뇌과학 인문학 심리학 등을 공부하고 적용해서 의지 박약을 이겨내는 방법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죄를 이기면 나의 의지로 이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 의지를 강하게 해달라는 기도가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는 방법이 되겠지만 오직 기도만 하는 것도 아닐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내 의지로 싸우는 것이고 어디서부터 하나님의 의지 안에서 행하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답변]

박진호 목사
박진호 목사

하나님의 힘으로 죄를 이겨내라는 것은 옳은 말씀이긴 하지만 구체적인 설명이 따르지 않으면 말씀하신대로 어떻게 해야할지 곤혹스럽게 됩니다.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힘으로 이기려고 기도를 해보지만 곧바로 거룩하고 신령해지지 않습니다. 기도한 후 얼마 동안은 정신을 바짝차리고 시험과 유혹을 그런대로 이겨나가지만 금방 다시 흐지부지 되는 일이 반복됩니다. 자신의 믿음이나 의지력 둘 중에 하나가 혹은 둘 다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만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신자라면 누구나 겪는 이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가장 먼저 하나님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어디까지 허용하는지부터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구원받기 전과 후를 비교해 인간의 의지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구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하게는 의지에 힘입어 스스로 싸워이겨야 할 죄의 본질에 대해 올바른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믿기 전과 후의 의지의 변화

하나님은 인간을 당신의 형상을 닮게 지으셨습니다. 여러 뜻이 있지만 이 주제와 연관되는 사항만 살피자면 당신의 도덕적인 성품을 인간에게 심어 주었고 나아가 당신과 교통할 수 있는 영적인 존재로 만드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유의지를 주어서 기꺼이 당신을 따를 때에만 도덕적 성품이 온전히 실현될 수 있게 했습니다. 모든 선한 것은 하나님께로만 오기에 인간더러 당신과 항상 교제하면서 당신께 선하심을 공급받으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그분 뜻대로 따라야만 참된 선을 행할 수 있습니다.

자유의지이므로 당연히 하나님을 거역 대적할 수도 있게 했습니다. 인간을 로봇 같은 기계적 존재로 만들어 자동적으로 선만 행하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알다시피 최초 인간은 사탄의 꾐에 넘어가 자기를 하나님보다 더 높여서 이 땅의 주인이 되려고 그분을 거역 대적했습니다. 아담은 자기 판단과 결정으로 사탄을 따랐는데 그런 성향이 모든 후손에게 태생적 본성으로 굳어버렸습니다. .

하나님과 영적인 교통이 완전히 끊어진 인간은 선악과 금령대로 정녕 죽었습니다. 그 결과 인간세상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롬3:10-12,18) 상태가 되었습니다.

인간이 원죄로 타락했다는 의미는 자유의지가 하나님을 거역하거나 전혀 관계 없는 쪽으로만 작동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사탄의 노예가 된 것입니다. 성령의 간섭으로 새사람으로 거듭났다는 뜻은 그 반대로 사탄쪽으로만 작동하게 된 자유의지가 창조 당시처럼 회복되어 하나님을 스스로 찾고 따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고전2:10-12)

그렇다고 신자가 언제든 하나님만 따를 수 있게 된 것은 아닙니다. 아담 때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자발적 의사에 따라서 하나님을 따를지 말지를 택해 시행할 수 있을 뿐입니다. 사탄의 노예였던 멍에만 풀렸기에 여전히 순전한 믿음과 의지로 기꺼이 하나님을 따라야만 합니다.

죄의 본질

신자가 성화를 달성해 나갈 때에 “어디까지가 내 의지로 싸우는 것이고 어디서부터 하나님의 의지안에서 행하는것인지” 질문하셨습니다. 그 답은 처음부터 끝까지 백퍼센트 신자 자신의 회복된 의지로 싸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지가 작동하는 분야는 말씀드린 대로 먼저 한 죄인의 심령에 성령이 역사하여 사탄의 견고한 진을 무너뜨리고 자기 의지를 본인이 원하기만 하면 당신쪽으로 자유롭게 작동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그 후로는 신자가 당신께 기도하면 순전한 마음을 지켜주며. 당신의 뜻을 계시해주고, 주변여건도 그에 합당하게 인도해 주십니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신자가 평생토록 스스로 죄와 싸우도록 평생토록 그의 자유의지에 전적으로 일임했지만 그를 거룩하게 변화 성장시키려는 당신의 광대한 의지와는 결코 모순 상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신자가 되어도 의지는 자유롭게 풀렸지만 죄로 타락했던 본성은 그대로 살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만듭니다. 사람 자체가 죄인이므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들도 여전히 죄의 교묘하고 끈질기고 강력한 힘에 져서 수시로 넘어지게 마련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마15:19-20a) 그렇다고 사람이 항상 그런 악행을 행할 궁리만 하면서 일일이 실행에 옮긴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닮게 지어진 흔적이 비록 불완전하고 상대적이긴 해도 양심의 형태로 남아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죄책감도 느끼고 인간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려는 일반적인 도덕은 믿음과 무관하게 실천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모든 악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의 심령이 이미 죄로 타락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이 그래서 주님이 예를 든 “살인, 간음, 음란, 도독질, 거짓 증언, 비방” 같은 것들이 아닙니다. 그것은 죄가 행동으로 겉으로 드러난 결과입니다. 죄란 사람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뜻과는 반대편으로만 가려는 끈질기고도 강력한 힘입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간이 태생적으로 갖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기에 찾지도 않는 성향입니다.

그런 성향은 인간이 자기를 하나님보다 위에 두려는 욕심과 교만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아담이 에덴동산과 자기인생의 주인이었던 하나님을 몰아내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하려 했던 마음이 굳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과 순전한 교제를 훼방하는 모든 것이 죄인데 그 근본은 바로 자기 자신을 높이는 마음입니다. 모든 이가 자기가 최고가 되려고만 하니까 다른 이보다 더 위에 서려고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고 필연적으로 시기 분쟁이 발생하며 온갖 윤리적 죄들이 파생되는 것입니다.

도덕과 신앙

간혹 신자의 전인격체가 죄의 덩어리이므로 죄를 이기려고 아무리 의지적으로 노력해도 결코 성공할 수 없고 또 그래서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자는 어떤 죄를 지어도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 안에서 용서를 받을 수는 있지만 윤리적 죄를 무시하거나 지어도 된다는 법은 결코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에게 묶여 있던 의지를 풀어서 회복시켜 주었다는 것은 당연히 그리스도를 닮아가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할 수”(롬6:1)는 없습니다.

기독교 신앙이 도덕과 다르다고 해서 도덕과 상충되는 내용을 가르치거나 도덕과 아무 관계가 없다고 이해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도덕적 성품을 닮게 지어졌기에 구원 받은 신자는 그 성품을 회복하고 더욱 갈고 닦아야 합니다. 신앙은 단지 착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교제 동행하며 그분의 뜻대로 살아가는 삶이어야 합니다. 또 그러면 당연히 도덕적인 삶도 가능해집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엡1:4) 하나님이 택한 자에게 그리스도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뜻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을 통해서 더 깊은 도덕적 삶을 가르치면서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5:16)고 분명히 명령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교회 교인들에게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4:8)고 권면합니다. 권면하는 일차적 내용은 이것들을 - 바울이 가르친 십자가 복음의 진리와 은혜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에든지 옳고 정결하고 덕을 세울 때에 즉, 범사에 신자답게 거룩하게 살려고 노력할 때에 그렇게 하라고 했습니다. 당연히 신자는 스스로의 의지로 거룩해지려고 최선을 다해서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가 죄에 이길 수 없다고 포기하고 있는 것을 절대 기뻐할 리도 없고 그대로 두고보실 리도 없습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엄숙한 이 경고도 새겨들어야 합니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 그들은 잠시 자기의 뜻대로 우리를 징계하였거니와 오직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하시느니라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 그러므로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히12;4,10-13)

우선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독려합니다. 그러지 않으면 하나님께 심판이 아니라 징계는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징계는 신자로 거룩하심에 참여하게 할 목적이므로 신자에게 유익이 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징계 중에 피곤해져서 실망하지 말고 다시 의지를 동원해 일어나 곧은 길로 걸어가라고 한 것입니다.

성화를 이루는 방안

이제 신자가 성화를 이루고 싶은 소원은 있지만 번번히 실패하는 원인이 밝혀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자유의지는 회복되었지만 죄의 본성이 여전히 살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죄의 본성을 죽이는 것이 성화를 이루는 지름 길이 됩니다. 앞에서 설명드린 대로 성경이 말하는 죄의 본질이 일반적인 도덕이나 종교와 다르기 때문에 성화를 이루는 길도 달라져야 합니다.

다른 모든 종교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기에 죄의 행동을 절제하면 되고 그렇게 착해진 사람이 천국간다고 가르집니다. 예컨대 과부가 자기 허벅지를 바늘로 찔러 음욕을 죽이는 것 같이 악행을 억제하려듭니다. 재물의 유혹을 없애려고 무소유의 삶도 실천합니다. 개별적인 말이나 행동을 항상 의롭게 하려고 자기 의지로 노력합니다.

반면에 기독교가 말하는 죄의 본질은 하나님과 반대 편에 서는 것이고 그 이전에 자기를 그분 위에 두는 것입니다. 그럼 자기 의지를 동원해 평생동안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할 내용은 바로 하나님과 멀어지려는 습성과 자기를 높이려는 본성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항상 말씀을 통해 우리 죄를 완벽하게 대속하신 예수님의 십자가 진리를 깨우치고 자기 마음에 확고히 심어서 죄의 본성을 죽여 나가야 합니다. 그와 동시에 여전히 의지는 약한데 죄의 본성이 강하니까 자기 안에 내주하신 성령님의 보호와 인도를 구하면서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없애야 합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따르려는 제자들더러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명하신 이유입니다.

바울이 신자는 무엇에나 경건하고 의로워야 한다고 권면하면서 이것들을 생각하라고 말한 다음에 어떻게 덧붙였습니까?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4:9) 십자가 복음을 생각하고 그 복음대로 행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신자의 마음을 지켜준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기자도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권하면서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12:3)고 합니다. 복음으로 죄를 이기라는 것입니다.

복음으로 성화를 이룬다는 것은 실제적으로 세 가지 방안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는 죄가 만들어내는 결과가 얼마나 추악하며 자신을 파괴시키는 죽음뿐이라는 사실을 철두철미 절감해야 합니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 은혜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선하고 좋은지도 철두철미 절감해야 합니다. 어떤 것이 싫어야만 멀리 할 수 있고 어떤 것이 좋아야만 가까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은 억제만 하려해선 제대로 이겨낼 수 없고 선으로만 이길 수 있습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악은 어떤 모양이라도 버리라.”(살전5:21,22)

그런데 아무리 말씀과 기도에 집중해도 그 본성은 수시로 발동합니다. 성화의 가장 좋은 길은 주님이 주신 소명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맡기신 거룩한 일에 자기 전부를 바쳐 헌신하고 있다면 아무래도 죄와 가까이 할 기회는 줄어들고 성령님이 죄악과 사탄이 곁에 오지 못하게 막아주십니다.

문제는 바울과 베드로같은 사도들도 소명에 열심히 충성하는데도 연약하고 어리석어서 가끔 죄에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결국 죄를 이기려면 자기 마음에 주님의 뜻으로만 채워지도록 의지를 동원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선은 오직 하나님께로만 옵니다. 그분을 잠시 잊거나 멀리하면 심지어 그분을 생각하는 중에도 우리의 본성은 되살아납니다. 신앙생활이란 그래서 평생토록 의지적으로 말씀과 기도에 집중하고, 의지적으로 자신의 본성을 죽여나가면서, 의지적으로 맡은바 소명의 실현에 모든 것을 거는 것입니다. .

2021/7/16

* 이 글은 미국 남침례교단 소속 박진호 목사(멤피스커비우즈한인교회 담임)가 그의 웹페이지(www.whyjesusonly.com)에 올린 것을 필자의 허락을 받아 게재한 것입니다. 맨 아래 숫자는 글이 박 목사의 웹페이지에 공개된 날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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