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 구스의 노래
도서 「검은 땅, 구스의 노래」

남수단은 2011년 2월 수단 공화국 남부의 독립 여부를 묻는 주민 투표에서 98.83%가 독립에 찬성, 동년 7월 9일에 공식적으로 수단 공화국에서 독립한 국가이다. 수단 공화국이 남과 북으로 갈라진 이유는 종교, 언어, 자원 등의 이유로 갈라서게 됐다. 종교만 놓고 보면 남수단은 기독교 및 전통 종교가 많지만 북수단은 이슬람교가 대다수이다. 뿐만 아니라 군벌 갈등과 내전으로 인해 2020년에 이르기까지 유혈사태가 발생했지만 동년 2월 22일 기해 반군의 지도가 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내전이 끝났다. 그러나 지금까지도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여전히 갈등의 도화선이 남아있는 그 곳에서 신요셉 선교사(남수단선교연합 대표, 저자)는 우간다 북부의 아고조 난민촌에서 약 40여 명의 난민 고아들과 함께 생활하며 남수단 여러 부족의 난민들을 섬기는 사역을 하고 있다. 본 도서는 아프리카 중에서도 가장 열악한 환경, 내전으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오가는 남수단과 우간다 북부에 위치한 난민수용소에서 펼친 난민 선교사역의 드라마틱하고 생생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가 난민 캠프에서 사역을 시작한 이야기 눈길을 이끈다.

저자는 책 속에서 “2016년 8월 11일 나는 거의 파김치가 된 지친 몸을 이끌과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곤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앞으로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사람들과 의견을 나눴지만, 대답은 한결같이 좀 쉬면서 몸을 추스르라는 말뿐이었다. 귀국하고 나서 세 가지를 두고 기도하기 시작했다. 첫째, 남수단 선교를 포기하는 방법, 둘째, 난민촌에서 난민사역을 하는 방법, 셋째, 다시 평화가 올 때까지 기다리는 방법이었다”라고 했다.

그는 “그런데 어떤 결정도 쉽게 나오지 않았다. 한참을 고민하다가 당시 내가 공부한 횃불트리니티 신학대학원대학교의 이정숙 총장님께서 학교 목요 채플시간에 내게 선교보고를 할 기회를 주셨다. 나는 그간의 남수단 선교 진행 과정, 내전으로 인한 피해 상황, 긴급 탈출 과정 등을 담담하게 설명하고 함께 기도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 뒤 성령의 감동을 받은 많은 분들이 적극적인 반응을 보여 난민 사역을 위한 구체적인 기도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남수단 난민들, 가난한 고아와 과부들의 울부짖음과 고통을 들으시고 우리 모두를 불러 사용하셨다. 이제부터 일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이어 “난민사역은 많은 재정과 인력, 그리고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어서 개인적으로는 쉽게 시도할 수 없고, 또 일반 개인들의 난민촌 활동에는 여러 가지 제약이 많지만, 월드비전, 세이브더칠드런 등 대형 NGO 단체들이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 지원, 긴급 의료 구호활동 등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문제는 영적 구호활동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이런 활동은 우리 선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실상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적인 돌봄이다. 결국 나와 내 와이프는 귀국한지 2달 만에 난민촌이 있는 우간다로 돌아왔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난민촌에서는 우선 여러 난민촌을 돌아다니며 흩어진 마을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을 위로하고 상담하는 게 첫 번째 과제였다. 그리고 나는 교회개척이 필요한 난민촌 지역들을 답사했고, 난민들의 필요와 일의 우선순위를 정했다. 어떤 집은 아이들이 비좁은 텐트 움막에 무려 7~8여 명이 엉켜서 살고 있었으며 이들의 환경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돌아와 며칠을 고민한 끝에 고아들을 돌보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고아원을 운영할 만한 별다른 재정이 없이 시작하는 만큼 우선 아고조 난민촌에 아이들이 거처할 숙소를 임시로 지었다”라고 했다.

저자는 이어 “고아웍 사역은 그리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입을 것을 주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종족 간의 갈등은 여기에도 존재했다. 야생마같이 거칠게 자란 아이들을 순한 양처럼 만드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와 사랑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라며 “우리 고아원 아이들은 매우 특별하게 영적 훈련을 받는다. 매일 아침 6시에 모두 모여서 새벽예배를 드리고 저녁에도 8시부터 9시까지 저녁예배를 드려야 한다. 그러자 야생마 같던 아이들이 하나둘 변하기 시작했다”라고 했다.

그는 “이 지역의 사역에서 가장 큰 어려움은 구호와 나눔 사역인데 뭔가 좀 나누어 주려면 그땐 서로 하나라도 더 얻기 위해 목숨을 건 치열한 싸움을 벌인다. 마치 먹을 것을 놓고 다투는 동물의 세계가 이곳에서 펼쳐지는 것 같다. 이런 험악한 곳에 유아교육기관을 세운 것은 그 자체로서 하나님의 큰 은혜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2015년 남수단 독립 이후 최초로 남수단 로아에 신학교를 설립했지만, 내전으로 1년 만에 문을 닫게 되었다. 솔직히 우간다 난민촌으로 와서는 신학교를 다시 할 엄두를 내지 못했지만, 어느 날 여러 난민촌에 흩어졌던 신학생들이 공부를 계속하겠다고 나를 찾아왔다. 나는 이들의 요구를 거잘할 수 없었다. 기도하던 중 하나님께서는 인근의 빈 학교 건물을 임차하여 기적적으로 학교 문을 다시 열 수 있도록 축복하셨다”라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난민 선교지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 역시 소중한 선교사역 중 하나이다. 하지만 사정상 안타까운 지원 요청들을 다 들어주지 못하는 아쉬움이 항상 남는다. 구제사역은 밑 빠진 독에 물을 붓는 것처럼 한도 끝도 없지만 그래도 계속해야 한다. 그동안 선한 사마리아인의 직무를 감당하며 이름 없이 여러 도움을 준 많은 분께 감사하다는 글을 남기며 한국교회의 성도들이 더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라고 했다.

한편, 신요셉 선교사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안정적인 직장(한국감정원), 그리고 15년 동안 섬기던 교회의 장로직(상계제일교회)까지 다 내려놓고 50이 넘은 나이에 뒤늦게 신학을 공부하고 아세아연합신학대학교(ACTS),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TTGU)를 졸업한 후 곧바로 남수단에 들어가 사역하고 있다.

남수단의 내전으로 난민이 되어 현재 우간다 북부 아주마니 남수단 난민촌에서 성경대학, 고아원, 유치원, 교회개척, 난민구호와 구제, 지역개발 등 여러 사역을 하고 있으며, 그 공로로 2021년 제16회 대한민국해외봉사상(국무총리상)을 수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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